[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⑩화투로 소일 할머니들, 묵 쒀팔아 대박

백도인 2023. 7. 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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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할매묵공장, 16명으로 조합 결성하고 평소 솜씨 살려 묵·두부 생산
뛰어난 맛과 품질에 전국서 주문 잇따라…할배목공소와 함께 마을에 활력
연간 1천명 벤치마킹 모범사례…고령화로 조합원 확보 못해 '비상'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할매묵공장과 잘 정비된 마을 도로 [촬영 = 백도인 기자]

(영주=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할매묵공장은 할배목공소와 함께 경북 영주시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오히려 할배목공소보다 앞서 시작돼 할배목공소 출범과 성공에 영감을 준 사업이다. 할매묵공장은 영주시 구성마을 할머니들이 마을 앞 야산에서 흔히 나는 도토리를 주워 묵을 쑤어먹던 데서 시작했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삼삼오오 모여 화투나 치며 소일하던 할머니들 사이에서 평소 솜씨를 살려 묵을 쒀 팔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게 될까' 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내친김에 할머니 16명이 의기투합해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묵과 두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영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2017년 3월 만들어준 묵 공장이 터전이 됐다. 대지 424㎡, 건축면적 122㎡ 규모의 아담한 공장이었다.

당시 사회적협동조합 할매묵공장의 최고령 조합원은 85세, 평균 나이는 78세였다. 그리고 가장 나이가 어린 축이었던 권분자(74) 할머니가 이사장을 맡았다.

"평균 나이 78세…우리나라 최고령 협동조합"

권 이사장은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협동조합 가운데 구성원의 나이가 가장 많은 협동조합이었을 것"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다"면서 웃었다.

할매묵공장 초기 조합원들 [영주시 도시재생센터 제공]

가족들을 먹인다는 마음으로 첨가물 하나 없이 국산 메밀로만 만든 데다 할머니들의 구수하고 깊은 손맛이 배어있어 주문이 잇따랐다. 특히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멀리 서울과 제주도에서도 택배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이 몰릴 때는 5∼8명의 할머니가 한 조를 이뤄 2개 조가 종일 묵과 두부를 생산했다. 당시 두부 한 모에 3천500원, 묵 한 모에 5천원으로 가격도 저렴했다. 그런데도 연간 매출이 1억원을 넘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던 할머니들은 비록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이웃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앉아 매일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평생을 살아온 구상마을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할매묵공장의 주역이라는 자부심도 컸다.

할매묵공장은 매달 수익금의 10%씩을 적립해 주거 취약지역의 집수리와 독거노인의 식사 나눔사업에 지원하는 등 지역사회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할매묵공장 건립 터의 황폐했던 모습 [영주시 도시재생센터 제공]

할매묵공장은 동네 재생사업에도 핵심 역할을 했다. 구성마을은 당시 독거노인 비율이 74%, 30년 넘은 건축물 비중이 전체의 71%에 달하는, 심각한 고령화와 쇠퇴로 어려움을 겪던 도심 외곽의 낙후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할매묵공장과 함께 도시재생사업이 본격화하면서 마을이 완전히 달라졌다. 할매묵공장이 들어선 곳은 오랫동안 방치됐던 폐가 10여채가 있던 곳이었다.

"마을 살려보자" 즐비한 폐가들 헐어내고 묵 공장 건립

이들 폐가를 모두 헐어내 공장을 짓고 공장 옆에는 널찍한 주차장을 만들어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했다. 골목길을 깨끗하게 정비하고 주민 쉼터인 공원도 예쁘게 만들었다. 할매묵공장과 함께 동네 할아버지들의 목공소인 사회적 마을기업 '할배목공소'도 100여m 인근에 문을 열며 더욱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는 동안 할매묵공장은 할배목공소와 함께 마을기업 최우수상, 균형발전 우수 사례, 지방정부 정책대상 우수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일약 도시재생의 선진 모델로 우뚝 섰다. 1년이면 1천명이 넘는 도시재생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멀리 이곳 산골 오지까지 찾아왔다.

묵공장과 함께 도시재생 이끈 인근의 할배목공소 [촬영 = 백도인 기자]

권 이사장은 "한창 주문이 몰릴 때는 새벽부터 나와 자정이 넘도록 묵과 두부를 만들었다. 힘은 들었지만, 여기저기서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주고, '맛있다'며 주문을 해와 참 재미있게 일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지역사회에 무언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게 큰 자부심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나 할매묵공장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묵과 두부라는 식품의 특성상 경쟁이 심해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고, 공장 가동에 필요한 할머니 조합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할매묵공장은 코로나19 엄습으로 주요 공급처였던 행사와 축제가 취소되면서 이미 한 차례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2∼3년 동안은 공장 관리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조합원 월급도 거의 주지 못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민간 식품업체들과의 경쟁까지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올해는 비수기인 7∼8월에 2개월간 공장 문을 닫고 있다.

한달 40만원 월급에 급격한 고령화로 일할 사람 없어

점점 나이가 들며 공장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할머니들이 떠난 자리를 메워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일이 힘든 반면 월급은 넉넉지 않아 조합원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16명이었던 조합원은 이제 5명밖에 남지 않았다. 5명의 할머니도 나이가 78~85세여서 새로운 조합원 확보는 발 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할매묵공장에서 생산한 두부 [영주시 도시재생센터 제공]

묵 공장에서 생산한 묵과 두부를 주요 메뉴로 하는 식당을 공장 바로 옆에 열었다가 운영권을 넘긴 것도 식당에서 일할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었다. 인력 수급의 어려움은 안정적인 자립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라는 점에서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권 이사장은 "요즘 들어 하루 대여섯시간씩 일하는데도, 묵이라는 게 고부가가치 식품이 아니고 수요도 일정치 않다 보니 한 달 월급을 1인당 겨우 40만원 남짓밖에 줄 수가 없다. 나이 80세 안팎의 할머니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기에는 사실 좀 적은 액수"라며 "여기에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면서 일을 못 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는데 그 돈을 받고 일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희현 영주시 도시재생센터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이 평소 솜씨를 활용해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새로운 도시재생 모범 사례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기치 않은 문제에 맞닥뜨렸다"면서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할머니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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