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안 돋보기] ‘삼성 사태’에 與野 산업기술 유출방지법 봇물…美처럼 솜방망이 처벌 없앨까
입증요건 완화·형량 강화·신고 포상금 상향 등 여야 법안 봇물
미국은 피해액 따라 형량 대폭 확대·대만은 ‘간첩죄’로 처벌
전문가 “산업 기술 유출 예방을 위한 인력 양성도 필요”
최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국가 핵심 산업기술 유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신고 포상금을 늘리는 등의 법안이 최근 발의됐다. 지난 17일 중국 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반도체 초미세 공정 기술을 빼돌린 전직 삼성전자 직원이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
현행법상 국가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 그 외 산업기술을 해외 유출한 경우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 6월 8일 발표한 의견서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총 33건) 중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87.8%에 달한다. 재산형과 유기징역은 각각 2건에 그쳤다.
미국은 연방 양형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하고 형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 유출은 기본적으로 6등급의 범죄에 해당하며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할 수 있다. 36등급의 경우 징역 15년 8개월에서 최대 33년 9개월에 처한다. 또한 연방법 간첩죄 조항에서 ‘외국의 이익을 위해 기밀 정보를 사용하거나 산업스파이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하고 있다. 이 경우 최대 징역 20년, 추징금 최대 500만달러(약 65억5000만원)에 처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지난해 2월 법무부·내무부·국방부가 마련한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양안관계조례 개정안을 동시에 통과시키면서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로 처벌하기로 했다. 기술 유출이 적발되면 간첩죄를 적용해 최대 12년의 징역형, 1억대만달러(약 41억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허가 없이 핵심 기술을 국외에서 이용한 경우도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일본도 ‘부정경쟁방지법’을 통해 영업비밀 기록매체 등을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 또는 보유자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횡령 등에 의해 영업비밀을 가진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엔(약 1억8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와 재발 방지에 힘을 싣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관련 법안인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지난달부터 20일까지 6건이 발의됐다.
국회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일 처벌 대상을 넓히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산업기술의 유출 침해 행위 금지 규정에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기관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알면서도 유출하는 행위’를 삭제하고, 단순히 산업기술을 유출·사용·공개하는 행위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가 핵심기술 등 산업기술의 국외 유출 및 침해행위의 입증요건을 완화하고, 국가 핵심기술 등 산업기술 해외 유출 시 가중처벌의 대상이 되는 침해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도록 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국가 핵심기술을 외국으로 유출하는 경우, 기존 3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5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15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2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그 외 산업기술을 해외 유출한 경우에는 기존 15년 이하 징역에서 20년 이하 징역으로, 15억원 이하 벌금에서 2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하도록 했다.
산자위 소속 윤관석 무소속 의원은 지난 17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현황 등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목적범으로 규정돼 있는 국가 핵심기술 및 산업기술의 유출 범죄를 고의범으로 변경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밖에도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산업기술 유출 신고 포상금을 늘리는 개정안 등이 있다.
해당 법안들은 여야 논의를 거쳐 세부적인 조정이 이뤄지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산자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산업기술 유출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가 없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상황이다. 여러 법안이 올라와 있어 병합 심사를 통해 제일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형량 강화 법안 위주로 발의돼 있는데 좀 더 입체적인 법안 설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산자위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시급한 현안들이 있어 자세한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산업기술 유출 문제는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 여러 부분에서 여야가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며 “시간은 좀 걸려도 여야 양쪽이 (법 개정에) 동의하는 만큼 세부적인 부분만 논의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형량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기술 유출을 사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기술 유출에 대한 통제 장치나 제한 장치를 두면 아직까지는 기술자들의 반감이 있기 때문에 기술자들의 인식 전환도 기술 유출 범죄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비즈니스, IT(정보기술), 법률을 이해할 수 있는 융합적인 산업 보안 인력이 필요한데 관련 학과가 전국에 몇 개 없다. 산업 기술 유출 예방을 위한 인력 양성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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