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농수산잇템]⑬ “기후변화에 대응하라”…내고온성 강화한 인삼 ‘진원’ ‘진명’
장기간 재배 특성으로 병균 감염 취약
농진청, 병과 열에 강한 新 ‘고려인삼’ 개발
인삼 재배 후 장기 휴경 막을 ‘토양 회복 방안’도 연구
초복과 중복, 말복 이렇게 삼복은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을 말한다. 예로부터 여름철 복날이 되면 보양식을 먹어 더위를 이겨냈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했던 시기, 복날이라도 보양식을 먹어 영양을 보충하라던 문화는 이제 ‘이번 복날에는 뭘 먹을까?’ 하는 ‘식도락’의 요소가 됐다.
민어, 장어, 전복 등 복날 보양식 메뉴도 다양해졌지만, ‘대표 음식’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삼계탕’이다.
삼계탕의 ‘삼’(蔘)은 인삼을 말한다. 동의보감은 인삼의 효능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가 부족한 데 쓰며, 정신을 안정시키고, 눈을 밝게 한다. 심규(마음 속)를 열어주고, 기억력을 좋게 한다.” 여름철 허해진 기력을 채우기에 인삼만 한 게 없다는 얘기다.
‘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을 쓴 이철성 건양대 교수에 따르면 원래 삼은 산삼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에 삼이 사라져 절종 위기에 처하자 17세기 중엽부터 인삼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전국 곳곳에서 인삼 재배가 이뤄졌고, 정조대왕 때에는 인삼을 쪄서 만든 ‘홍삼’이 조선의 공식 무역상품이 되기도 했다. 반도체와 자동차로 이어지는 케이(K)-수출품의 시초가 인삼이었던 셈이다.
◇ 병에 약한 인삼…선발육종으로 병·고온·염류저항성 강화
인삼은 키우기 어려운 작목 중 하나다. 생육 기간이 길어 병해충이 많고, 외부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햇볕에 타는 것을 막기 위한 가림막을 필수로 하고, 바람이 잘 통해야 한다. 다만 지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아 비료나 퇴비 등은 따로 주지 않아도 된다.
업계에선 6년근 인삼을 최고로 친다. 6년이 지나면 뿌리 부분인 인삼이 나무처럼 되는 ‘목질화’가 진행돼 오히려 상품성이 떨어지게 된다. 한 땅에서 6년을 키우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병균이 침투해 ‘뿌리썩음병’ 등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농가에서는 4년근 정도만 돼도 상품성이 있다고 보고 출하하는 경우가 많다.
인삼은 가공 방법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 갓 수확한 인삼은 ‘수삼’, 껍질을 제거한 후 건조한 인삼은 ‘백삼’, 쪄서 건조하면 ‘홍삼’, 3번 이상 찌고 말리면 ‘흑삼’이다. 최근 들어선 인삼의 생장 초기 단계에 수확하는 ‘새싹인삼’ 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인삼과 관련해 품종 개량과 연작 효율화 기술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품종 개량은 고려 시대 때부터 한반도에서 자라온 고려인삼의 품질을 올리고, 수확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농진청이 개발한 인삼 품종으로는 천량과 고원, 천명, 진원, 진명 등이 있다.
2011년 개발한 천량은 염류 저항성을 강화한 품종이다. ‘천량’은 순우리말로 재산·재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삼을 재배하는 땅의 염류 농도가 높을 경우 인삼의 생육이 부진하게 된다. 염류 농도가 심하게 진하면 인삼이 말라 죽기도 한다. 농진청은 이러한 피해를 막고자 전국 각지에서 인삼 유전 자원을 수집해 우량 계통을 선발하는 ‘선발 육종 방식’으로 천량을 개발했다.
2013년 개발한 고원은 인삼 특유의 병인 ‘점무늬병’에 대한 저항성을 키운 품종이다. ‘고원’이라는 이름은 ‘고려인삼 중 으뜸’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 이 품종은 기존 품종 대비 수확량이 22% 이상 많고, 인삼의 지상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점무늬병에 강한 게 특징이다. 점무늬병은 인삼의 잎 부분에 검은색 점이 퍼지는 병이다. 최근처럼 장마철 고온다습한 시기에 많이 확산한다.
2015년 개발한 ‘천명’은 인삼이 빨갛게 변하는 ‘적변’ 저항성을 강화한 품종이다.
최근 들어선 기후변화에 대비해 고온 저항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품종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2019년 개발한 진원과 2022년 개발한 진명이 이들이다. 인삼에 고온은 치명적이다. 인삼밭에 해가림막을 설치하는 것도 이 같은 고온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농진청은 최근 이중 차광 시설을 갖춘 비닐하우스 형태의 가림막을 개발해 시범적으로 운영 중이다.
◇ 타작물보다 어려운 인삼 개량…토지 회복·설비 개선도 함께 추진
인삼 육종 개발 과정은 다른 작목보다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세대의 재배 기간이 4~6년이 걸리는 장기 재배 작물이기 때문이다.
충북 음성에 소재한 농진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 김장욱 농업연구사는 “선발 육종한 종자의 씨앗을 확보하는 ‘채종’은 3년근부터 가능하다”라며 “다른 작목은 1년이면 다음 세대 육종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인삼은 다른 작목보다 3~4배는 더 걸린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인삼의 연작장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한번 인삼을 재배하고 수확을 하면 10년은 동일한 땅에서 인삼을 재배할 수 없다. ‘지력을 많이 빨아들여, 지력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라는 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인삼 재배 과정에서 뿌리썩음병 인자가 땅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삼 재배 농가를 운영하는 농민 입장에선 인삼 수확 후 차기 재배지를 찾는 게 상당한 부담이다.
현재 농진청에서는 뿌리썩음병 방제를 위한 미생물 활용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와 함께 녹비작물(천연비료로 쓰기 위한 식물)을 토양과 갈아엎은 뒤 태양열과 훈증 방식으로 소독하는 종합 방제 체계 구축도 추진 중이다.
김장욱 연구사는 “해당 기술의 개발을 완료하면 인삼 재배지의 재작 기간을 기존 10년 이상에서 2년 이하로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재작 기간을 줄임으로써 농가의 비용을 감소하고, 양질의 품종을 개발해서 농가의 소득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최근 중부 지방 등 주요 인삼 재배 지역에 호우가 내린 것과 관련해 “빠른 시일 내에 시설을 복구해 인삼이 강한 빛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고, 병해도 방제해야 한다”면서 “침수로 인한 인삼 뿌리 부패가 우려되는 지역의 인삼은 일찍 수확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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