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외력으로 출산율 높일 수 없어... 그런 나라 지켜질 필요 있을까” 英인구학자의 일침

김지수 작가 2023. 7.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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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구 소멸 심각, 자식에게 과한 투자 멈추라
아이 낳아 기르는 기쁨, 자연스럽게 스며야
남자가 육아 많이 할수록 가족 숫자 늘어
소득 늘면 출산율 떨어져, 종교가 유일한 변수
한국은 부자나라, 북한 옵션 고민해야
미국은 출생률 무관심, 중국은 이민자 유입 못해
젊은 인구 줄이는 최악의 방법은 전쟁
▲세계적인 인구학 권위자인 ‘인구의 힘(The Human Tide)’의 저자 폴 몰런드(Paul Morland), 런던 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의 연구원./사진=채승우

‘셀 수 있는 것보다 셀 수 없는 것이 더 강하다.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라고 영국의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경과 한국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인간을 자원으로 취급하고 목숨을 숫자로만 카운트하면, 한 명의 생명, 한 명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그게 홀로코스트의 교훈이고,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메시지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코로나19 동안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 뉴스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바이러스와의 사투 이면에 팽창하는 노인 인구를 조절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음모론도 퍼졌다. 출생률 저하로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 국가가 이민과 고용 서비스로 국민을 모객하는 시대…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탄생의 숫자’는 중요하다. 숫자 안에 인류사의 파란만장과 사회 조직의 역동이 다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한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이 된 까닭도 모두 인구 폭발 덕분이었다. 일본이 25년간 장기 침체를 겪은 것도 급격한 출생률 감소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합계 출산율 0.78로 매해 세계 최저 수치를 갱신 중이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2050년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 2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회의 평균 연령이 계속 높아지면서 학교는 텅 비어가고 요양원은 꽉 차게 될 것이다.

심각한 인구 소멸의 추이를 지켜보며 어떻게 문제에 접근해야 할지, 영국의 인구학자 폴 몰런드를 만나 지혜를 구했다. 이데일리 전략 포럼을 위한 내한한 폴 몰런드는 ‘인구의 힘’이라는 명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숫자에 이야기를 입힌 인문서 ‘인구의 힘’에서 그는 20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인구 혁명의 이야기는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된 여성의 이야기이며, 평생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고 아파트에서 고독사하는 일본 노인의 이야기이며, 기회를 찾아 지중해를 건너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이야기’라고 했다.

인터뷰 자리에 나온 폴 몰런드는 목소리를 높이는 법 없이 평온한 눈으로 숫자와 삶을 연결했다. 인구학의 구루가 전하는 한국 인구 문제의 인사이트는 매우 날카롭고 혁신적이었다.

시차로 밤새 잠들지 못했지만, 곧 거리로 나가 한국의 도시 풍경을 ‘직관’할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노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성과 남성 중 누가 아이를 안고 가는가. 그 모든 것이 인구 폭발과 소멸의 단서들이라고 했다.

“2040년에는 한국인의 중위 연령은 50세에 이를 거예요. 젊은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압력으로 한 나라를 멸종에서 구해야 한다면, 그 나라는 지켜질 필요가 없다”는 직언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정책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폴 몰런드./사진=채승우

-인구는 삶의 시작과 끝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통계적으로 복잡한 숫자의 기록으로 보이지만, 연구할수록 인구 문제는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숫자가 아닌 각자의 인생이지요.”

-인구학자의 눈으로 볼 때 지금 한국은 어떻습니까?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준으로 봤을 때도 모든 면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영아사망률이 낮아지고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단기간에 인구 폭발로 간 건 경이롭지만, 순식간에 한 여성당 합계 출산율이 한 명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앙이라고요?

“네. 한국은 현재 전 세계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저조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재앙입니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귀에 섬뜩하게 다가왔다. 21세기 말에 이르면 세계 인구의 성장 추세가 완전히 멈출 거라고 했다. 일부 국가는 벌써부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고.

-코로나19로 겪은 세계 인구 변화는 어떻습니까?

“코로나로 인한 눈에 띄는 통계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죽은 많은 분은 노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같은 수치로 어린 아이들이 사망했다면 통계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했을 겁니다. 가령 75세 노인 100명이 죽으면 남은 삶을 5년으로 잡아 500년이 사라지지만, 5살 아이 100명이 죽으면 8,500년이 사라집니다. 통계적 격차가 크지요.”

▲늘어난 청년 인구로 촉발된 아랍의 봄.

-한편 중동에서 영아 사망률 하락으로 증가한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하자 근본주의와 폭력에 빠져들었다고 했는데요. 인구 구성에서 젊음과 늙음이 차지하는 비율이 한 사회의 역동과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요?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많은데 고용 시장이 불안해서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면 사회 안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희망 없는 성난 청년은 극단주의와 행동주의에 쉽게 자극받고, 기존 사회의 구조를 뒤흔듭니다. 만약 중동이 일본이나 한국처럼 고령인구가 많았다면 극적 변화가 없을 수도 있었겠지요.”

인종도 인구도 적정 균형을 유지할 때, 한 나라의 평화와 지속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고 폴 몰런드는 나지막이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맞추기 위해 다른 인종, 다른 나라에 폭력적인 위해를 가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고.

-우리 시대에 큰 죄책감으로 다가오는 역사인 노예선과 독가스도 인구학적인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인간이 잔인함, 권력욕조차 ‘숫자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루이 14세 때 군사 공학자였던 보빙은 국왕의 위대함은 백성은 숫자로 표시된다고 했지요. 히틀러는 출생률 하락을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돌리며, 인구에 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1차 대전이 일어난 이유도 프랑스와 독일의 인구 변화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인구보다 독일의 인구가 더 커지자 열등감과 위기감이 고조됐지요. 2차 대전도 인구 폭발을 겪은 일본과 독일이 자국민을 내보낼 영토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일으켰습니다.

노예선과 독가스는 좀 더 복잡한 문제입니다. 유럽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동력 보충을 위해 아랍의 흑인들을 노예선으로 대거 이주시켰습니다. 최초의 이주 노동자라고 할 수 있지요. 인구는 폭증하고 식량 감당은 안 되는 상황에서 프리츠 하버라는 과학자가 질소를 활용해 화학 비료를 만들었어요. 하버는 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 기술로 독가스를 만들어 나치의 인종 청소를 도왔습니다. 그 자신이 유대인이었으니 매우 아이러니하지요.”

▲히틀러는 인구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인구학자로서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의 인구 경주와 국력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1490년부터 시작해서 500년 동안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 돼서 권력을 누렸어요.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인구 폭주에 불안감을 느꼈고, 독일은 러시아의 인구 성장에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했죠. 인구 성장률 격차에 대한 각 나라의 두려움이 1차 대전 직전 서로를 자극했어요.

유럽의 인구가 오르고 내리는 사이클을 보면서, 세계 지배는 인구 폭발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국과 그들의 이주 국가인 미국의 인구 팽창, 영어 문화권의 확대가 지금 세계 질서의 바탕이 됐습니다. 인구와 제조업이 결합해서 시너지를 일으킨 거죠.”

▲세계사의 유의미한 순간들을 인구학적 관점으로 돌파한 폴 몰런드의 ‘인구의 힘’.

-재러드 다이아몬드 선생의 ‘총 균 쇠’와 폴 몰런드 선생의 ‘인구의 힘’을 함께 읽으면 문명사는 곧 전쟁사, 숫자의 싸움이고 전쟁사는 곧 인구의 흥망성쇠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기서 선생이 특히 흥미롭게 보는 것은 무엇인지요?

“인구의 기본 흐름은 같습니다. 인구 성장의 시작은 영아 사망률 감소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소득이 오를수록 출산율은 떨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권과 기독교 국가 등 종교성이 강한 나라는 소득이 오르는 만큼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출산과 생명, 어린아이를 신성하게 여기는 문화 덕이 아닌가 합니다. 타이, 베트남 등 불교 국가도 마찬가지죠. 인구 소멸을 막는 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한국인은 종교성 강한데도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한국인의 저출생 문제는 단시간에 너무 심각해져서 저도 의아해요. 한국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종교가 유일한 답은 아니지만, 소득이 늘면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 원리에 브레이크를 걸 다른 장치를 찾기 힘듭니다.”

-선생의 무자녀세 제안에 많은 한국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알고 있는지요?

“그런 반응은 상상하지 못했어요(웃음). 무자녀세는 제가 영국에서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 중에 처음 나온 이야기입니다. 저출생을 타개할 대안으로 아동 수당을 얘기했는데, 영국 정부가 그럴 예산이 없다더군요. 그래서 ‘마이너스 아동수당’을 자녀가 없는 사람에게 거두면 어떨까, 의견을 냈습니다. ‘무자녀세’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보다 정부 차원에서 더 섬세한 정책이 뒤따라야겠죠.”

▲인종 차별 발언으로 백인 유권자들을 집결시켰던 트럼프.

-현재 패권 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인구 경주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두 정부가 인구 문제를 예민하게 보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매우 다릅니다. 일단 미국 정부는 출생률에 관심이 없습니다. 출생률이 중국보다 높을뿐더러 미국은 얼마든지 이민자를 데려올 수 있어요. 이민자가 융화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지요.

중국은 이민자를 유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언어 장벽도 높죠. 한 자녀 정책을 너무 오래 고집해서 갑자기 ‘많이 낳으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중국 정부도 숫자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텐데 대처법은 전혀 세우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지요?

“한국은 80년대부터 출생률이 떨어졌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하락률이 늦게 온 편입니다. 그래도 좋은 신호는 한국 정부는 돈이 많다는 거죠. 그건 매우 큰 장점입니다. 노동력 부족은 돈이나 로봇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는 중국에 비해 오픈돼 있고 국민들의 기세가 드높습니다. 통제가 심한 중국 사회에서는 어림없지요. 문제를 인식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요. 제 생각에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옵션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생각을 다르게 해보세요. 북한에 2000만 명의 인구가 있지 않습니까. 북한은 한국에게 훌륭한 인구 증가 옵션입니다. 1950년 이후 한국의 중위 연령은 20세에서 40세로 두 배나 높아졌고, 2040년에는 50세에 이를 거예요. 젊은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경우 다른 나라는 극심한 인종 갈등과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이민 정책을 추진합니다. 북한은 같은 인종, 같은 언어를 쓰고 있으니 훌륭한 옵션 아닌가요?”

통일을 군사적 정치적 긴장이 아니라 인구와 노동력의 셈법으로 접근하는 관점이 신선했다. 하지만 북한 인구는 이주가 불가하고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온 탈북민의 정착도 쉽지 않다고 하자, 폴 몰런드는 자신은 발상의 전환을 제시할 뿐이라고 했다.

▲인구학은 삶의 일부이며 어떤 면에서 삶 그자체라고 말하는 폴 몰런드./사진=채승우

-인구 폭발로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인도나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어떻습니까? 인구가 젊고 성장하는 나라는 노동력과 내수 시장을 확보할 수 있어 경제 규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한동안은 비슷한 증가 추세를 보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기반으로 1인당 2~3명의 출산율을 오래 유지했어요. 비슷한 출생이 일정 기간 유지되면서 안정된 상태에서 기반을 마련했지요.

반면 인도는 한동안 인구 증가가 이어졌지만, 하락이 시작될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인도는 무슬림, 힌두 등 여러 종교가 있어요. 하나의 종교가 강력하게 붙잡지 않을 경우, 소득이 높아지면 출산율은 급격하게 추락합니다. 한국 소득 수준의 1/8에만 도달해도 출생률은 한국보다 더 떨어질 수 있어요.”

-이스라엘은 인구 성장을 연구하는 나라에 모범사례가 될 수 있을까요? ‘생육하라 번성하라’는 성경의 메시지가 더 큰 생명의 맥락 속에 자신을 던져놓도록 유대인들을 이끌었다고 보십니까?

“저도 궁금합니다. 종교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제 생각에 이스라엘의 가장 큰 인구증가 동인은 오랫동안 이어진 아랍과의 전쟁입니다. 아랍의 압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힘은 인구를 늘려가는 것이라는 본능이 발동하는 거죠.”

-그렇다면 북한의 위협과 동북아의 외교적 긴장이 농축된 한국의 출산율 저하는 어떻게 설명이 됩니까?

“이스라엘에 아랍은 직면한 위협이지만, 한국인에게 북한은 진짜로 싸우겠다는 의식이 없는 핵을 가진 ‘미친놈’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제 생각에 한국인들이 주변국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건, 부자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부자 나라’에 힌트가 있는 것도 같네요. 고도 경쟁으로 단기간에 ‘부자’가 되고 욕망의 기준이 높아졌지만, 그 경쟁 스트레스로 아이를 안낳게 됐으니까요.

“그 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아이에 대한 과한 투자…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특별해요. 부유해질수록 경쟁은 과열되고, 그 압력을 아이에게 얹는 구조지요. 생태적 악순환입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동시에 맞아 20년간의 침체기를 지나온 일본.

-일본은 어떻습니까? 일본의 인구와 국운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고 이제는 팽창의 시대에서 고령화와 후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한국과 비교하면 두 나라 다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는 중입니다. 다만 한국이 일본보다 20년 늦게 시작됐죠. 한국은 그동안 성장할 시간을 벌었지만, 일본은 20년간 정체 국면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주식 시장 침체와 인구 하락이 맞물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수축했어요. 일본의 국력과 영향력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현재는 세계적인 노령 인구 대국이 돼서 일종의 고령화 연구소 역할을 하고 있지요.

노인을 돕는 로봇 등 배울 건 있지만, 기술은 도와줄 뿐 해결책은 되지 않아요. 정부가 돈을 퍼붓고 있지만 고령화 진행이 너무 빨라서 기계로도 대처가 안 되는 상황이지요. 저는 정책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봐요. 문화적인 각성만이 이 흐름을 바꿀 수 있지요. 출산 휴가나 양육 수당을 주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생활 수준과 소득을 높이려면 아이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페미니즘과 인구학은 어떻게 서로를 긍정적으로 견인할 수 있습니까?

“일단 남자들이 육아를 많이 해야 합니다(웃음). 남자가 육아에 많이 참여할수록 가족의 숫자가 늘어났어요. 저도 딸이 둘입니다. 딸들은 아이를 낳고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어요. 저는 페미니즘 안에서 여자와 남자가 함께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간다는 목표 의식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를 봐야 합니다.”

-왜 정책 변화로는 출생률 저하를 막기 힘들다고 단정하나요?

“벌금을 매겨 교통 규칙을 잘 지키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책이 인간의 가치관을 바꿀 수는 없어요. 인구통계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변화를 보면서 그런 확신이 듭니다. 정신 건강 분야도 그렇죠. 자살과 우울증을 정책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일은 정책이 힘을 못 써요. 그 사회에 널리 퍼진 믿음, 다수의 목소리, 문화가 지배합니다.”

▲백인이 줄어드는 통계를 영화에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디즈니. 흑인 할리 베일리 주연의 ‘인어공주’.

-회색(노인)과 녹색(자연)이 진해지고 흰색(백인)이 줄어들 거라는 미래 인구는 선생이 보기에 희망적인 신호인가요? 서글픈 신호인가요?

“녹색이 진해지는 건 무조건 좋지요. 사람이 줄어들면 자연 생태계가 좀 숨통이 트이잖아요. 회색이 진해지면서 고령화로 인한 부양비 지출의 문제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을 겁니다. 영국은 85세 넘는 인구가 140만 명에 달하고, 2017년 총선도 사회적 돌봄의 대결이었어요. 물론 좋은 점도 있어요. 고령화될수록 사회는 평화로워져요.

흰색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선 각 대륙과 인종의 입장이 다를 겁니다. 유럽의 백인 출생률 하락은 일찍부터 시작됐습니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영국 내 백인 인구는 전체의 60%, 미국은 50% 이하로 떨어질 겁니다. 줄어든 백인의 자리를 어느 지역 사람들이 채우느냐도 관건입니다.”

-흰색이 줄어드는 경향은 흑인 ‘인어공주’, 라틴계 ‘백설공주’ 등 디즈니 만화 주인공의 변화에도 이미 반영이 돼 있습니다. 메인 인종이었던 백인이 소수화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주류 집단이 소수가 되는 건 어떤 식으로든 충격이 됩니다. 편견이 바로 잡히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 예측이 잘 안 돼요. 인종 분포의 변화와 두려움으로 이미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이민자를 얼마나 받아들일지, 인종이 어떻게 충돌 없이 섞여 살지 앞으로 더욱 다양성에 겸허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한국도 돌봄 노동이나 저임금 노동 등에 ‘이주노동자들’에게 빚지고 있지만, 사회 통합이나 인권 문제에서 격동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주’ ‘대이동’ ‘이민’이 인구공학면에서나 개인 인생의 역동성 면에서 미래 인류의 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민이 해답은 아닙니다. 영국도 한국보다 15년 앞서 출산율이 인구 대체 출산율을 밑도는 현상이 시작됐고, 수백만 명의 이민자를 끌어들이고 있지만 인종 변화로 갈등이 계속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도 늙어갑니다. 그리고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도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고 부유해지고 있고 고령화되고 있어요. 이민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 그렇다면 저출생으로 국가 소멸에 이르리라는 두려움과 동시에 ‘아이를 낳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 인권’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요?

“아이를 낳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사회적 압력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어요. 외력으로 한 나라를 멸종에서 구해야 한다면, 그 나라는 지켜질 필요가 없습니다.”

-청년들이 좋아할 발언이로군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행복이 너무 크다… 이런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퍼진다면, 그 어떤 정책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겁니다.”

▲인구학자와 역사학자는 숫자에 담긴 개개인의 희망, 사랑, 두려움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폴 몰런드.

-선생은 자녀를 셋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은 만큼 행복하십니까? 한국에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습니다(웃음).

“처음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 충만감을 알게 됐어요. 이 사진으로 제 마음을 대신하지요(스마트폰 사진 속 젊은 폴 몰런드가 햇빛 속에서 아이와 활짝 웃고 있다). 제 딸들도 두 아이를 낳았어요. 기쁨은 전염되니까요.”

-지구에서 베이비붐은 더 이상 없을까요?

“글쎄요. 어떤 것도 확실치 않습니다. 전후에 베이비 붐이 왔다는 것도 확실치 않죠. 무엇보다 젊은 인구를 줄이는 최악의 방법인 전쟁부터 멈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의 흥망성쇠와 인구의 상관관계를 보면서 깨달은 점을 한국인들에게 나눠주시지요. 세계의 회복을 위해서 여전히 숫자가 중요합니까?

“네. 숫자가 중요합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경제가 위축된다는 말과 같아요. 중국이 그렇지 않습니까. 나라는 곧 인구입니다. 어리고 젊고 건강한 인구가 많을수록 그 나라는 건강합니다. 미래가 있고 경제는 좋아질 일만 남은 거지요.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행위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한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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