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외교장관, 입 닫은 정부… 21세기 중국서 벌어진 기묘한 이야기
건강 이상설·간첩설·불륜설 억측 난무
후임 거론되는 데도 中 정부는 ‘모르쇠’
”中 권위주의 고조… 예측 가능성 떨어져”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종적을 감춘 지 한 달 가까이 흘렀다. 정치적 거물의 부재 기간이 이례적으로 길어지자 건강 이상설, 간첩설, 불륜설 등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 정부는 친강의 향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른바 ‘중국의 얼굴’인 외교부장이 하룻밤 새 사라지고, 그 이유를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중국의 폐쇄적·권위주의적 이미지가 한층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중국 외교가에 따르면, 친강은 지난달 25일 베이징에서 스리랑카·베트남 외교장관, 러시아 외교차관과 회담한 뒤 공개 활동을 중단했다. 당초 이달 5일 베이징에서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중국 측이 특별한 사유를 대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하면서 그의 실종 의혹이 본격 불거졌다. 지난 11~14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무장관회의에 이어 오는 24~25일 제13차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고위급 안보 회의에도 친강은 불참한다.
친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발탁해 위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1988년부터 중국 외교부에서 근무한 ‘외교통’으로, 2014~2018년 예빈사 국장(외교부 의전실장 격)을 맡으며 시 주석을 가까이서 보좌한 경험이 있다. 2021년 7월부터 주미 대사를 지내다 불과 7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57세의 나이에 외교부장에 올랐다. 지난 3월엔 국무원 지도부 구성원이자 부총리급 의전을 받는 국무위원이 됐는데, 이는 전례에 비해 3년가량 빠른 것이다. 공세적 전략을 펼치는 중국 ‘전랑(늑대) 외교’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 건강 이상설·간첩설·불륜설에도 中 정부는 ‘모르쇠’
중국 외교부는 친강의 행방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에서 친강의 건강 상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들은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친강이 현재 중국 외교부장이 맞나. 왜 몇 주 동안 나타나지 않나”라는 질문에는 “중국 외교부 사이트를 찾아보라. 제공할 수 있는 소식이 없다”고 답했다. 중국 외교부는 매일 브리핑 내용을 정리해 홈페이지에 올리는데, 친강 관련 부분은 생략돼 있다.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 중 국내에 공개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내용은 문건에서 제외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고위 관료가 한 달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태도도 석연치 않자 각종 의혹이 쏟아졌다. 먼저 건강 이상설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신체적 허약함은 중국에서 정치적 금기”라고 했다. 코로나19 등에 걸렸지만 정치적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비밀리에 투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추측은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힘을 잃었다.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소문, 홍콩의 한 방송국 아나운서와 불륜을 통해 미국 국적 혼외자를 낳아 반부패 당국의 타깃이 됐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혹은 모두 친강의 실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핵심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 베이징 외교가의 시각이다. 시드니 로위 연구소의 동아시아 선임 연구원인 리처드 맥그리거는 “친강의 부재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훨씬 심각한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논란 초기에는 친강이 복귀할 가능성도 거론됐었지만, 이제는 낙마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중국 관료의) 장기 부재는 경력의 끝을 예고한다”고 했다.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 등 친강 후임이 거론되는 것도 친강 복귀 가능성을 낮추는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친강 사태로 중국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이미지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전부터 경제 데이터는 물론, 판례, 학술 논문 등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 투명성이 낮았고, 이는 국가 신뢰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 싱가포르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의 알프레드 우 교수는 “이번 친강의 부재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처는 중국이 점점 더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며 “의심할 여지 없이 중국의 1인 정치에 더 많은 불확실성을 더해 외국 정부와 투자자의 예측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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