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재난이 달갑기라도? 인간재해 산실 된 정치권
尹 우크라행 中 뒤이어 비난하다 참사 수단화
던질 뿐인 "추경" 요구…미래세대 착취 반성은?
특별재난지역 치적삼는 與도 "박수 쳐" 기행일색
지자체장, 영부인發 논란 대응도 인간재해급
열흘간 전국에 쏟아진 폭우, 그로 인한 50명대 인명피해, 빗물과 눈물이 마를 틈도 없이 닥친 폭염 속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정치권이 기여한 몫까지 만만찮다. 육성 응답을 받는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여론조사 동향을 보니, '정치혐오의 계절'을 그들이 자초했다.
21일 공표된 한국갤럽 자체 주례여론조사 결과(지난 18~20일·전국 성인 1001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통신 3사 제공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CATI방식·응답률 14.9%·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지지정당 없는 무당층(無黨層)이 "현 정부 출범 후 최대규모"인 것으로 분석됐다.
윤석열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33%)는 지난주 6%포인트 급락에 이어 겨우 1%포인트 반등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33% 동률이고 더불어민주당은 2%포인트 내린 30%, 정의당도 2%포인트 빠진 3%로 내려앉았다. 무당층은 2%포인트 오른 32%이지만, 실제 응답자수 기준(가중값)으론 297명→325명으로 33%에 가깝다.
20일 공표된 NBS(전국지표조사) 7월3주차 결과(17~19일·전국 성인 1001명·통신 3사 제공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CATI방식·응답률 16.9%)는 더욱 극적이다.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34%)이 2주간 4%포인트 빠지고 부정평가(54%)는 3%포인트 올랐다. 국민의힘은 4%포인트 빠진 30%, 민주당은 5%포인트 빠진 23%로 동반 폭락했다.
무당층은 2주 간 7%포인트나 치솟은 38%로 역대급이다. NBS는 4개 업체(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에서 의뢰, 이 중 2곳씩 순회로 실시(이번주는 엠브레인퍼블릭·한국리서치)하는 만큼 자의성이 비교적 적게 작용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 조사에서 "6개월 이내 가장 높은 수준"의 무당층이 집계됐다.
집중호우 기간 여야는 '누가 더 진상인가' 경쟁하듯 했다. 난형난제이지만 20% 초반대까지 꺼진 민주당이 앞섰다고 할까. 17일 김의겸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중국·러시아를 "범람하는 강"으로, 윤 대통령의 유럽순방 막바지 전시(戰時) 우크라이나 방문을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궁평 지하차도'로 밀어 넣는 것"으로 각각 빗댔다.
러시아 침공에 항전하는 우크라이나와 '자유' 가치연대를 표방하고, 전후 재건사업 참여·지원을 약속한 대통령을 중국 관영매체가 비난한 같은 날 가세한 격이었다. 중·로의 심기를 불가항력의 '큰물'처럼 우러르고, 폭우 속 미호강 제방 붕괴로 14명의 목숨을 수마(水魔)가 덮친 참극을 정쟁 '수단' 삼았으니 한층 고약하다.
김의겸 의원은 이내 "참사 유가족께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숙이긴 했다. 추미애 민주당 전 대표는 17일 SNS에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복귀하는 열차에서 국내 수해 대응을 논의하는 모습의 사진을 올리며, '예견된 참사'라는 레토릭과 함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재난 살인'"이라고 퍼부었다.
공무원들에 "면피성 문자날리기", 도지사·장관엔 "사진 찍는 것", 대통령엔 "지시하는 척"…'참사를 기회삼았나' 싶을 정도의, 전직 장관의 어휘력. 2016년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인신공양·투약설 등 괴담 섞인 세월호 참사를 우겨넣고 헌재로부터 "판단 대상이 아니"란 답을 받아든 건 어쩌고 "재난 살인"을 찾는 건가.
그 '극한 호우'를 보고도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며 돌팔매부터 하는 등, '책임전가'에만 도가 튼 구태정치도 동반됐다. 21일 민주당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여당 충북도지사 사퇴 공세를 펴면서 "인재 넘어 관재(官災)"라고 했다. 심기경호성 방중(訪中) 논란이 엊그제같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도의적 책임조차 부정할 태세다.
이재명 당대표는 "민심의 둑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수해를 또 비유수단 삼았다. 마치 '김의겸 닮은꼴'이다. 재난복구지원에 예비비를 쓰겠다는 정부여당에, '재정건전화' 기조를 뻔히 알면서도 "초(超)부자들에게는 퍼주고 국민은 쥐어짜는 정책"이라 공격하며 "빨리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나서라"고 요구한 게 골간이었다.
못해도 조 단위 혈세를 쓰란 얘긴데 구체적인 용처 제시가 없다. 재난 책임은 '관'에만 있다면서 집행기구마냥 추경을 외친다. 큰돈을 주무르자면 '쪽지예산' 등 구태도 필연일 것이다. 직접 걷어가기 민망하면 빚을 지는 눈속임을 할 것이다. 집권기 5년간 국가채무가 400조원대 급증해 1000조원을 뚫은 '미래세대 착취'엔 말이 없다.
여권은 또 어떤가. 17일 충남 청양군 수해현장에 국민의힘 현직·전직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박수 한번 쳐 주세요" 유도 발언이 두번이나 나왔다. 김기현 당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건의해 특별재난지역 선포 검토 지시를 받았다고 밝히자, 공주·부여·청양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이 반기며 보인 반응이다.
충청권에서도 최악 수해에 연일 시름에 잠겼던 그라고 해도,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반가웠어도, 전국민의 시선 앞에 보일 태도가 아니다. 재해가 닥치면 그 지역구 의원이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외치고, 지자체 복구·지원 부담액의 80% '국비지원' 등을 끌어낸 뒤 '치적' 삼는 패턴도 정치적 이해(利害)와 무관하다고 보기만도 어렵다.
옛 친이(親이명박계) 중심으로 곧장 MB정부 4대강 정비사업을 재평가하며 문재인 정권을 때리자 지도부가 반복한 것도 '태도'의 문제다. 대통령은 "이권·부패 카르텔의 '정치 보조금'을 전부 삭감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하라 공언해놓고, 여당은 '재난 정쟁' 시비에 시의성없는 말이라며 발을 뺀 것까지.
국민눈높이에서 등돌리는 태도, 정점엔 대통령실이 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 인원 16명을 대동한 채 명품 브랜드 지점 5곳을 들르고, 쇼핑까지 해갔다는 '고마움 섞인' 현지 매체 보도가 나왔는데 "호객행위 때문"이었다느니 "물건은 사지않았다"는 익명 핵심관계자 해명이 나왔다.
여당은 국내에서 대면한 기자들에겐 '모르쇠'로 넘기더니, 라디오에서 '사고'를 쳤다. 18일 당 수석대변인의 "외교적 행보"란 주장도 과포장으로 들렸는데, 윤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으로 얼굴을 알렸던 친윤(親윤석열)계 초선의원은 19일 리투아니아의 섬유·패션 산업을 들어 "문화 탐방의 한 일환"이라고 했다. 아첨이 공감능력을 앞질렀다.
자기검열 없던 김 여사 측의 침묵은 무책임해보일 정도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영향권의 필지 논란에 입닫다가 국토교통부 장관의 '백지화 정치쇼'를 보게했지 않나. '수해 골프'를 걸린 전직 대권주자의 "대구시만 책임진다"는 억지, 재난현장 조기복귀론에 "달라질 게 없다"고 입밖에 내는 용산 관계자와 충북지사 릴레이는 민심 불감증이다.
정치 기득권이야말로 '인재(인간재해)의 산실'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17일 국회 앞에서 열린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장기표)' 집회에서 84세 정치원로 박찬종 전 의원은 '9대 국회 말엽까지 지금의 의사당조차 없더니, 국회의원 특권이 21대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지적했다. 1인당 4년간 특권비용만 50억원에 이른다고도 했다.
추경이든 재난지역 선포든 국고 손대기를 능사로 아는 그들 '권한'까지 생각하면 특권은 끝이없다. 하지만 내려놓는 건 없고, 일반국민 아닌 엉뚱한 주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태도다. 박찬종 전 의원은 특권폐지뿐 아니라 "민주당은 '이재명', 국민의힘은 '당 실세' 눈치보게 하는 정당공천제도를 폐지하라"고 했다. 흘려듣다 흘러가는 수가 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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