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집 노리는 도둑 있는데, 남의 집 문단속 하러 간 분단 국가 대통령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키이우행 열차에 올라탄 것은 현지시간으로 14일 금요일 저녁 8시였다. 폴란드에서 8시면, 우크라이나에선 저녁 9시다. 폴란드와 한국 시차는 7시간차, 윤 대통령이 키이우행 열차에 올라탄 것은 한국 시간으로는 15일 토요일 새벽 3시다.
호우특보가 발령된 7월 14일 목요일,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로 출발하기 전 시점이다. 충남 논산 추모공원 납골당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방문객 4명이 매몰돼 2명이 숨졌다. 그날 논산에는 시간당 50㎜ 이상의 비가 쏟아졌다. 기상청을 비롯해 모든 언론은 이 비가 주말에 더 쏟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밤사이 예천군에 231㎜에 달하는 많은 비가 왔다.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새벽은 재해 대비의 골든타임이었다. 오송지하차도 위험성을 처음 인지한 것은 3시간 반 후인 토요일 오전 6시 30분 경. 당시 행복청 직원은 충북도 직원과 세 차례 통화하면서 "미호강 범람 위험이 있고, 이 사실을 청주시·경찰청에도 연락했다"고 말했다. 예천군에 14일 밤 쏟아진 폭우로 약해진 지반은 15일 산사태로 이어졌다. 7명이 숨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원래 15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갑작스럽게 귀국을 미룬 윤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15일 새벽 3시, 열차에 탑승했다. 차량이 흔들려 가끔 마시던 음료가 엎어져 쏟아지는 상황에서 극비리에 우크라이나 영토를 달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안보 수뇌부인 NSC 의장 대통령과 NSC 상임위원장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NSC 사무처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모두 이 불안한 열차에 타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14시간 걸린 극비 호송 작전을 마치고 우크라이나에 도착했고, 그 곳에서 11시간 머물렀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우크라이나 행 결정 이유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몸소 눈으로 현장을 확인할 때, 보다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을 평가할 수 있고 피부로 느끼면서 현지에 뭐가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뭘 협력할지 명확히 식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는데 13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5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로 출발하기 직전, 호우 피해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하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모든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국정이라는 건 선택의 문제라고 치자.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덜 중한지 판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한 일을 제치고 다른 일에 착수했을 때, 최소한 거기에선 유권자들이 납득할만한 국익을 뽑아내야 한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행은 중한 일(호우 대응)을 제치고 다른 선택을 한 행위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슨 이익을 남겼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뉴스 소비자들이 주로 접하는 뉴스는 TV와 인터넷 포털이다.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장(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중대본발로 시시각각 피해 상황이 전해지고 있을 때, 8000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에서 "생즉사 사즉생"을 말하고 있는 뉴스가 어지럽게 섞여 나왔다. 온 국가가 호우 참사로 애도한다는 기사가 뜰 때, 윤 대통령이 외국의 전쟁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는 사진이 걸렸고, 산사태의 끔찍한 보도 사진이 쏟아질 시점에 대통령은 이역만리 전쟁 피해 도시의 폐허를 둘러보고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난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있을 때, 난민 아이의 얼굴을 감싸 쥔 영부인의 사진이 떴다.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한 것을 되돌릴 수 없었다면, 최소한 국내 재난 상황을 의식해 홍보를 미룰 수도 있었다. 호우 피해가 이어질 때는 대통령 홍보 사진을 화상 회의 장면이나 정상회담 위주로 뿌려 의미 부여를 간소화하고, 재난 상황이 수습된 후 우크라이나 일정과 의미를 차분히 브리핑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정무·홍보 담당자들은 한국의 재난 상황에서, 타국의 재난을 마주하는 대통령 부부의 이미지를 담아 홍보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뿌렸다. TV와 뉴스 포털사이트에서 벌어진 건 기이한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다.
우크라이나행이라는 선택이 잘못이었다는 점도 지적해 둔다. 첫째,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이미 한차례 있었다. 지난 5월 G7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히로시마에서 양국 정상은 만났다. 이때 이미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한국 기업의 우크라이나 재건 참여를 요청했다. 그에 앞서 윤 대통령은 특사로 방한한 젤렌스키 대통령 부인 젤렌스카 여사도 만났다. 미국, 일본 등 우리와 밀접한 국가 정상을 제외하고 타국 정상을 두달 간격으로 연쇄 회동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두달 전 만난 대통령을 또 만날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김태효 차장의 말대로 "몸소 눈으로 현장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일이었을까? 결국 이건 '전장에 간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대통령의 욕심으로 보일 뿐이다.
둘째, 심지어 한국은 아직 전쟁 중인 국가다. 북쪽에는 우리의 '주적'이 존재한다. 윤 대통령의 인식대로라면,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종전선언 추진을 비난하던 윤 대통령은 언제 전장이 될 지 모르는 자국을 두고 8000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의 전장에서 '생즉사 사즉생'을 말하고 있다. 유체이탈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만약에 수해가 없었다고 가정하고 (가정은 의미 없는 일이지만)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했다고 치자. 대한민국 안보 수뇌부가 '열차 왕복 27시간 + 체류 11시간' 동안 우리 군의 호위도 없이 이역만리 타국의 열차 안에서 화상 회의를 하고, 타국의 전장을 둘러보며 '재건 사업' 구상을 하고 있을 때 북한이 도발을 감행했다면 어찌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38시간 동안 타국의 전쟁터를 '첩보 작전'하듯 방문한 시점에 한국의 안보 수뇌부는 한국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입만 열면 '북한의 위협'을 언급하는 휴전 국가의 대통령이 타국의 교전지역을 방문해 "70년 전 한국"을 떠올리고 있는 상황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70년 전 우크라이나는 소련 소속으로 북한을 도왔다.
모든 부분에서 '핀트'가 어긋나 있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말들이 버젓이 나온다. 우크라이나에서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 외친 것도 기이하다.
분단국가의 특성상, 휴전 국가의 특성상, 한국의 대통령은 타국의 전장에 직접 방문하는 건 삼가는 게 맞다. 이 간단한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다. 기시다 일본 총리나, 바이든 미국 대통령, 유럽의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를 경쟁적으로 찾아도 '분단국가의 지도자' 윤석열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저 지도자들의 나라는 자신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아니다. 제집 노리는 도둑이 있는데 남의 집 문단속 하러 가는 가장을 어찌 바라봐야 하는가.
휴전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1분 1초도 연락이 끊겨선 안된다. 공군1호기도 아니고, 언제 연락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한 열차를 타고 타국 전장을 누비는 대통령의 모습은 오히려 안보 불안을 키운다. 우크라이나에 가선 안되는 세번째 이유로 언급할 '러시아 자극'은, 앞의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해 언급하기조차 사치스러워진다.
2000조 재건 사업 '잭팟'과 같은 기사들이 등장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2000조 원은 누가 내는 돈인가? 그 돈은 우리의 것인가? 그에 앞서 북한과 교전 중인 국가에서 '우크라이나 드림'을 꿈꾼다는 걸 대놓고 홍보하는 분단국가의 지도자가 세상에 어디 있나. 기이한 일들의 연속이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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