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본, 다른 일본] <93>일본 가부키 배우의 엽기적인 극단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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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유명 가부키 배우의 동반 극단 선택 사건
가부키(歌舞伎, 일본의 전통 연극) 배우가 저지른 엽기적인 사건 때문에 몇 달째 일본 사회가 떠들썩하다. 40대 독신 남성인 그는 함께 생활하는 노부모와 함께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 상태로 매니저에게 발견되었다. 배우는 목숨을 건졌지만, 모친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부친은 병원으로 옮겨진 뒤 사망이 확인되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그는 부모님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털어놓았다. 온 가족이 한날한시에 저 세상으로 가겠다는 동반 극단 선택은 미완성에 그쳤고, 홀로 살아남은 그는 부모의 잘못된 선택을 방조한 혐의로 체포된 상태다.
그는 TV 대하드라마에서 주연을 맡는 등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었다. 그가 노부모와 함께 금지된 선택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그 이유도 엽기적이었다. 한 주간지에서 그가 동료와 무대 스태프에게 갑질과 성희롱을 했다는 내용으로 취재를 해 곧 기사화될 예정이었는데, 그는 이 기사가 잘못된 동반 선택의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사와 관련해 가족회의를 한 끝에 ‘모두 함께 저 세상으로 가자’고 결의했다는 것이었다. 주간지가 고발한 스캔들이 사실이라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심으로 사죄를 해야 마땅할 것이요, 오보라면 정보를 바로잡고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사과를 하든 해명을 하든 사회적으로 소명할 수 있을 만한 일인데, 그 정도의 사소한 사안으로 노부모까지 함께 극단적 행위를 택했다는 것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모두 함께 저 세상으로 가기’로 했다는 설명도 나쁜 선택을 지나치게 낭만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가부키 배우는 각별한 존재다. 애초에 가부키를 사랑하는 팬 층도 두껍지만, 가부키 배우가 TV나 영화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아서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다. 가부키 배우들은 대체로 어린 나이부터 전통 연극의 연기 수련을 시작한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그도 가부키 집안 출신으로, 10세도 되기 전에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초지일관 오로지 전통 연극에만 몰두해 온 인물인 만큼, 자신의 삶까지도 마치 한 편의 비극적인 연극인 양 드라마틱하게 마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동반 극단 선택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한 에도 시대의 ‘신주(心中)’
일본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함께 하는 것이 하나의 ‘풍습’인 양 받아들여졌던 역사적 경위가 있다. 예를 들어, 17세기 에도 시대에는 연인의 동반 극단 선택이 일종의 문화 현상처럼 빈발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게 문화적 관습인 양 자리매김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다만, 일본의 에도 시대에 인간의 암울한 측면을 미화하고 긍정하는 퇴폐적인 정서가 팽배했던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일본어로 동반 극단 선택은 ‘신주(心中)라고 한다. 한자로는 ‘마음(心)의 가운데(中)’를 뜻한다. 극단적인 행위에 이런 낭만적인 이름이 붙은 데에는 나름의 경위가 있다. 에도 시대의 이런 행동은 사랑하는 연인이 흔들리지 않는 연심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손톱을 뽑거나 심지어 손가락을 절단하는 등 고통스러운 자해 행위를 통해 자신의 굳은 연심을 증명한다. 신체의 일부를 훼손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엽기적인 서약 행위를 ‘신주’라고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연인의 동반 선택은 영원한 사랑을 실현시키는 궁극의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자학적인 행위가 생겨난 것은, 당시 일본 사회가 자유로운 연애가 불가능한 엄격한 신분 사회, 규율 사회였기 때문이다. 유곽의 매춘부와의 연애, 당시에는 금기시되었던 동성 간의 연애, 근친상간 등 이루어질 수 없는 불행한 러브 스토리가 ‘신주’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다. 만물에 깃든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 내세를 긍정하는 정서가 극단 선택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작용했다. ‘연인이 함께 목숨을 끊으면 다음 생에서는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신주’를 부채질한 것이다.
이 엽기적인 풍습이 당시 사회 전체에 만연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에도 시대의 막부(幕府, 일본 중세 시대에 통치한 권력 기구의 이름)가 ‘신주’를 범죄로 규정했다는 것을 보면, 실제로 적지 않은 사례가 있었던 것 같다. 금지된 동반 행동에서 살아남은 주모자는 살인죄로 처벌했고, 사망한 경우에는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심심치 않게 회자되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실제로 동반 행동을 묘사한 대중 소설이나 연극(가부키), 인형극 등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막부가 ‘신주’를 비극적인 사랑의 방법론으로 묘사하는 공연을 금지했다는 기록도 있다.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 죽음을 궁극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보는 그로테스크한 해석이 존재했다. 잘못된 동반 행동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를 낭만적으로 미화했다. 앞서 소개한 가부키 배우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은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지만, 에도 시대의 기이한 사생관과는 상통하는 점이 있다. 잘못된 행동을 통해서라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손에 넣겠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낭만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가 지금 일본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지적해 두자. 다만, 이 사례가 동반 자살을 둘러싼 일본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경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현대의 동반 극단 사건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정서는 없지만, 지금도 일본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최근 중병을 앓는 70대 아내를 80대 남편이 바다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실형 판결을 받았다. 40년 동안 몸이 불편한 아내를 정성껏 보살폈지만, 이제 더 이상 헌신할 힘이 없고, 아내와 함께 죽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아내를 보내준 뒤, 스스로도 목숨을 끊을 요량이었다’고는 했지만, 스스로 바닷속으로 몸을 던질 용기가 나지 않았고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에도 시대의 ‘신주’와는 달리, 현대의 비슷한 사건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되고 대부분 결말도 처참하다.
한편,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등을 통해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함께 나쁜 선택을 시도하는 ‘인터넷 신주(ネット心中)’도 늘어나면서 사회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목숨을 함께 끊는 동반자를 찾는 세태도 한탄스럽지만, 절박한 이들을 대상으로 삼은 인터넷 범죄도 늘어난다니 실로 각박한 세상이다. 인터넷이 잘못된 선택의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죽고 싶지만, 혼자 죽고 싶지는 않다”는 우울한 젊은이들이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쉬운 정보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일본을 포함해 모든 OECD 국가 중 관련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만큼, 실제로는 더욱 심각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죽음의 선택 역시 개인의 권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수하게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일본 사회의 잘못된 동반 선택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은, 그런 행위 역시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삶을 스스로 마감하려는 충동이 개인의 우울증으로 인한 것이라고 그저 방치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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