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콩나물 교실 ②무한 민원 ③'금쪽이' 무대책... 교권 흔드는 교육환경

홍인택 2023. 7. 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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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반에 30명인데 어린이집 수준 케어 원해"
휴대폰 번호 감춰도 "차량 번호 찾아서 연락"
문제 행동해도 지도 수단·보조 인력 부족
교사 폭행 양천구 초교 "당시 보조인력 없었다"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한쪽 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로 가득 차있다. 최주연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교내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학교 현장에서 '교권 침해'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숨진 교사의 사망 경위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동료 교사들은 학생의 문제 행동과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제기가 비극의 원인이 됐을 거라는 증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년차 새내기 교사였던 고인이 맞닥뜨렸던 상황은 비단 서이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현장 전반에서 교사들의 권한과 자율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① "과밀학급에서 어린이집 수준 케어 원해"

2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이초는 학급당 학생 수가 30.3명으로, 교육부 기준으로 과밀학급(학급당 28명 이상)으로 분류된다. 숨진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1학년은 학급당 24~29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이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학급당 학생 수(20.3명)를 훨씬 웃돈다.

서이초의 학생 과밀은 서울 강남권처럼 대단지 아파트와 학원이 밀집한 소위 '학군지'에 흔한 현상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에서 제공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의 과밀학급 비율은 43.9%(2,280학급 중 1,001학급)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과밀학급 수가 가장 많았다. 서이초가 속한 서초구(39.7%), 목동이 있는 양천구(27.6%)도 전국 평균(18.9%)보다 과밀학급 비율이 높았다.

이들 지역은 교사들에겐 '기피 근무지'다. 과밀학급은 맞춤형 학생 지도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은 학부모가 유치원·어린이집 수준의 돌봄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교사들의 고충이 커진다. 서울의 '학군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어린이집은 교사 한 명이 4, 5명을 관리하는 반면 학교는 한 교사가 거의 30명씩 관리하는데 학부모들은 그런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A씨는 "학부모가 근무시간 이후에 전화를 해서 '아이가 운동장에 겉옷을 벗어뒀는데 찾아서 가져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②"번호 알리지도 않았는데…" 휴대폰 민원 빈발

서울교사노조는 세상을 떠난 서이초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렸다는 내용의 제보를 공개했다. 서울교사노조 제공

이날 서울교사노조는 숨진 교사가 담임을 맡은 반에서 학생 간 다툼이 있고 나서 학부모 전화에 시달렸다는 서이초 동료 교사의 제보를 공개했다. 고인이 동료에게 "학부모에게 연락처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 핸드폰으로 엄청나게 전화가 걸려와 소름끼친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교사 개인 휴대폰으로 학부모의 민원성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오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다. 교사들 사이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실종됐다"는 호소가 나오는 이유다. 교사들이 휴대폰 번호를 학부모·학생에게 공개하지 않았지만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교사인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교사 번호를 알려줄 때까지 교무실에 전화를 하거나 심지어 주차된 교사 차량에서 번호를 알아내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 강서구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젊은 교사들은 카카오톡 프로필 등 SNS 노출을 우려해 아예 3G폰을 업무용으로 쓰기도 한다"고 했다.


③문제 행동 보이는 학생에 대처할 수단 없어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서울 양천구 교사의 진단서. 서울교사노조 제공

서울교사노조가 공개한 제보 내용 중엔 숨진 교사의 반 학생이 뒷자리 친구의 이마를 연필로 긋는 일이 있었고 이 사건이 학부모의 압박성 민원으로 이어졌다는 증언이 있다. 자세한 경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인이 학생의 문제 행동을 제지할 여력이 없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반 학급은 통상 교사 1명이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교사가 문제 학생을 제어하면서 수업을 원활히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학교 현장엔 사회복무요원, 특수교육실무사 등 보조인력이 지난해 기준 1만4,318명 배치돼 있지만, 교실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교사가 즉각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서이초 사건에 앞서 지난달 말 양천구 A초등학교 교실에서 6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피해 교사는 적절한 조력을 받지 못했다. 가해 학생은 정서·행동장애로 특수반 수업을 듣는 요주의 학생이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A초교는 양천구에서 보조 인력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폭행 사건 당시엔 다른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B교사는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특수학급은 정원이 있다 보니 일반 교실에서 수업받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 수가 30명에 육박하는 교실에서 이런 애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교사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제도적 방비도 미흡하다. 학생의 수업방해 행위 등에 교장뿐 아니라 교사도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지난해 마련됐지만, 교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지도 행위까지 할 수 있는지를 규정할 교육부 고시는 확정되지 않았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의 교권 침해에 대한 징계는 기록되지 않는 것에도 교단의 불만이 크다.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이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친구끼리 싸우면 전학 보내고 퇴학시키면서, 스승을 짓밟고 때린 학생은 생기부에 적으면 안 되나"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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