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약자 만든 학생인권조례… 교권침해 年 3035건
교내에서 극단 선택을 한 초등학교 교사에 대한 애도 열기가 21일에도 이어졌다. 그 배경에는 일선 교사들이 학교에서 당한 폭력과 갑질, 불공정이 장작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교사에게 수십 대의 주먹질을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20일 ‘전학’ 처분을 받았다. 최대 조치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선생님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얻어맞지 않을 근본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과거 우리 학교에서 교사의 학생 체벌 문제가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사가 체벌은커녕 제자에게 구타를 당하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교단을 떠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교사에 대한 교육 활동 침해 행위는 2020년 1197건에서 2021년 2269건, 2022년 3035건으로 증가 추세다. 폭언, 모욕, 수업 방해 등이다.
이처럼 교권이 바닥까지 추락한 핵심 계기로 교육계는 2010년 도입된 ‘학생 인권 조례’를 꼽는다. 진보·좌파 성향 교육감들이 추진한 정책이다. 교사에 대한 신고·조사 요구권, 복장·두발 자유, 휴대전화 강제 수거 금지 등을 담고 있다. 학생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느끼면 교육청에 신고하고 교육청은 인권 옹호관을 파견해 해당 교사를 조사한다. 전국 17곳 교육청 가운데 2010년 경기, 2012년 서울 등 6곳이 도입했다.
학생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 인권 조례 도입 후 학교 현장 분위기가 급변했다. 2011년 경기도 한 고교 교사는 수업 중에 휴대전화로 영상 통화하는 학생을 훈계했다. 학생 태도가 불량해 4~5초간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런데 경기교육청은 이 교사가 학생 인권을 침해했다며 징계했다. 이후 교사가 학생 잘못을 지적하는 것까지 “인권침해”로 몰고 가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체벌 대신 교사가 사용하던 ‘상·벌점제’도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면서 대부분 지역에서 폐지됐다.
이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이 붕괴됐다”며 “시도 교육감들과 함께 학생 인권 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조례가 처음 도입된 경기교육청의 임태희 교육감도 “학생 인권 조례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2014년 아동학대 처벌법이 제정된 이후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다 ‘학대’ 혐의로 신고당하는 경우도 빈발하고 있다. 전국 시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 학대로 고소·고발당해 수사가 시작된 사건은 1252건이었다. 이 중 경찰이 종결 또는 불기소한 사례가 53.9%(676건)였다. 한국교총 김동석 교권본부장은 “학생 인권은 강조하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하는 제도는 없으니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이라고 했다.
같은 시기, 저출산 여파로 한 명의 자녀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가정 분위기도 강해졌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자녀가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피해 보는 걸 견디지 못하고 항의하는 부모들이 급속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교사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금쪽이’와 자기 자녀만 귀한 줄 아는 부모들이 동시에 증가했다는 것이다. 학생 인권만 강조하고, 학부모는 극성인데 교사들은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이날 한 교사 커뮤니티에 “진상 학부모 사례를 공유해보자”는 제안이 뜨자 고발이 쏟아졌다. 한 교사는 “‘너 지금 내 아들 방임한 거야’ ‘이 학교에 발전 기금을 얼마나 냈는데 이 따위로 애를 관리해’ 같은 막말을 들었다”고 썼다. “미세 먼지로 현장 학습 안 간다고 해서 방과 후 교사와 함께 수업하도록 했더니 자기 애 혼자 있게 했다고 30분 동안 따지더라” “학교에 녹음기 들려 보낸 학부모도 있다”는 글도 올라왔다. 학생과 학부모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도 적지 않다.
과거 서울 강남 지역은 학생 지도가 비교적 편하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발령을 선호했지만 이젠 ‘기피 1순위 지역’이 됐다. 극성 학부모의 민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교사들은 스쿨 폴리스(학교 내 경찰) 배치 같은 특단의 조치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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