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죽음에 ‘한기호 연루’ 가짜뉴스, 3시간만에 퍼졌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의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한 초등교사에게 갑질을 했다’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여성이 21일 한 의원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이 전날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한 의원에게 직접 선처를 호소한 것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맘 카페에 ‘한 의원 연루설’을 썼다는 한 중년 여성이 국회 의원회관을 방문해 한 의원에게 ‘용서해달라’며 선처를 구했다”고 했다. 이 여성은 한 의원에게 “나는 인터넷 여기저기에 있는 글을 짜깁기해서 썼는데, 내가 쓴 글이 이렇게 확산할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성은 한 의원에게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라고 자기를 소개했고, 그 밖의 신상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한 의원은 “나는 정치 생명이 끝날 정도로 치명타를 입었는데,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용서해달라고 용서되는 일이 아니다”라며 “당신은 재미 삼아 썼겠지만 맘 카페에서 그 글을 직접 본 사람만 3만명(조회 수)이다. 3만명이 그걸 보고 퍼 나르니까 전국으로 확산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내가 선처해주면 나중에 이 정도 거짓말과 가짜 뉴스는 용인된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그냥 묵과하면 결국은 부도덕한 사회가 되도록 내가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한 의원은 전날 아침 관련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에도 “인생 똑바로 살아라”는 내용의 ‘문자 폭탄’이 이어졌고, 여든이 넘은 장모와 미국 뉴욕에 있는 누나로부터 안부 전화도 받았다고 한다.
한 의원에 대한 가짜 뉴스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데는 채 3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구글·유튜브 검색 빈도와 접속량 등을 측정해 점수화(100점 만점)한 구글 트렌드를 보면 한 의원에 대한 점수는 지난 일주일 동안 0~1점 사이를 오갔다. 그런데 ‘초등 교사 극단 선택’ 사건이 보도된 지난 19일 오후 9시 2점으로 오르더니, 3시간 뒤인 자정에 최고점인 100점으로 치솟았다. 그만큼 이용자들이 한 의원과 관련된 검색어를 구글에서 많이 검색했다는 의미다. 한 의원에 대한 검색량은 다음 날 출근시간대인 오전 7~9시에도 60~70점에 달했다.
한 의원에 대한 루머가 최초로 퍼진 커뮤니티는 불확실하지만, 지난 19일 저녁을 기점으로 국내 자동차 커뮤니티인 보배드림, 네이버 대형 맘카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현재 대부분의 글은 삭제된 상태지만, 삭제한 웹 게시글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사이트를 통해 보면 보배드림 커뮤니티에선 오후 10시~자정을 기점으로 ‘국민의힘 한기호’ ‘국민의힘 한기호 손녀가 서이초 다니나요?’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해당 글마다 수십 개의 악성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 각종 카페와 카카오 오픈채팅(단톡방)을 통해서도 한 의원 관련 가짜 뉴스는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네이버·카카오는 사행성 게임, 불법 약물, 성매매 등과 같이 불법적인 내용을 포함하거나 욕설·비방 관련 콘텐츠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걸러내고 있지만, 가짜 뉴스는 사전에 차단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허위 정보는 AI가 사실의 진위를 즉각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단톡방의 프로필 사진, 채팅방 제목, 핵심 키워드, 이용자 닉네임 등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불법·명예훼손성 채팅방과 이용자를 제재하고 있다. 그러나 단톡방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 내용 자체는 개인 정보 보호 이슈 때문에 확인할 수 없다. 동네 주민이 모인 채팅방에서 한 의원을 언급해도 이를 카카오가 확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로 카페·블로그에 올라온 글에 욕설·비방·불법행위와 관련된 단어가 올라가면 AI가 글과 이용자를 제재한다. 그러나 허위 정보는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없다. 네이버 관계자는 “가짜 뉴스와 같은 허위 정보는 다른 이용자의 신고를 기반으로, 네이버 관리자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에 허위 게시물 심의 과정을 거쳐 처리하고 있다”며 “뉴스의 가짜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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