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영철 지휘로 대남 여론조작... 아이들 폰까지 침투했다
북한이 지난 3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산하에 대외 인터넷 선전을 총괄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등 대남 ‘심리전’ 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21일 파악됐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말 통일전선부장 출신 김영철을 통전부 고문으로 재기용하면서 한국 사회 혼란, 국정 훼방 등 대남 공작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도발뿐 아니라 2009년 디도스 공격, 2011년 농협 전산망 파괴 등을 주도한 인물이다. 우리 정부는 북이 김영철을 사령탑으로 세워 내년 총선 등 한국 정치 일정에 맞춰 대대적인 사이버 심리전을 전개해 사회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한 대비에 나섰다.
심리전은 유리한 상황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 세력의 환경을 계획적·의도적으로 바꾸는 활동을 의미한다. 평·전시 구분 없이 이뤄지며 여론·정보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신설한 조직은 일종의 ‘뉴미디어팀’으로 과거 방송·인쇄 매체 중심의 대남 심리전에서 탈피해 MZ세대 등 각계각층에 대한 선전·선동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과거 같은 체제 선전보다는 국내 정치 교란이 주목적이다.
최근 북한은 인스타그램·틱톡 등 청소년들이 즐겨 사용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선전물을 퍼뜨리고 있다. 북한은 또 국내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뿐 아니라 최근에는 유튜브 콘텐츠에 채팅이나 댓글을 다는 식으로 국내 정치 관련 여론 몰이에도 나서고 있다. 정보 당국은 최근 김여정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란 표현을 쓴 것도 “북한이 ‘국가 대 국가’ 정책으로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려 한다”는 해석의 여지를 줘 한국 사회의 논란과 분열을 유도하는 전술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심리전은 과거 반미(反美), 반일(反日) 선동이나 자신들의 체제 선전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엔 총선,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등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가짜 뉴스에 취약한 국내 여론 환경도 북한의 심리전 강화에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최근 대남 선전매체와 해외에 파견한 공작원 등에게 ‘반정부 분위기 조장’에 공을 들일 것을 지시했다. 지령문엔 국민의힘을 윤석열 대통령의 ‘사당(私黨)’으로 묘사하고, 여권 내 비윤(非尹)계 의원들에 대한 ‘공천 대학살’ 가능성을 거론해 보수 진영 내 갈등을 조장할 것을 지령하는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사이버 심리전의 배경에 북한이 있다는 것을 일반 국민들은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하조직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공소장 등에 따르면, 북한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은 자통 조직원들에게 “보수 유튜브 채널에 위장 가입해 댓글을 달아라”라는 지령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전에는 “윤석열 대망론(大望論)은 보수 진영 난립을 노린 민주당의 술책이란 괴담을 퍼트려 보수 진영의 내부 갈등을 격화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후쿠시마 앞바다 괴물 고기 출현” “방사능에 의한 기형아 출생” 같은 루머를 통해 반일 감정을 고조시키라는 지령도 내렸다.
사이버 심리전의 수단도 다양해지고 있다. 해외 파견 공작원을 통해 중국 웨이보, 미국 트위터 등을 이용, 국내 각종 시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사드 이슈가 한창일 때 웨이보 등에선 ‘사드가 중국·러시아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사드까지 퍼주니 개[犬]한민국이 되었구나’ ‘한미국 공조는 아시아판 나토다. 중국에 해가 된다’ 등의 메시지가 나돌았다. 최근 정치국에 복귀한 김영철이 신설된 뉴미디어팀, 사이버 부대, 공작 부서를 총괄하며 다양한 형태로 한국 국정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보 당국 등에 따르면, 김정은이 지난해 말 당 회의에서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며 ‘대적 투쟁’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이후 네이버·다음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 인터넷 커뮤니티·노조 게시판을 비롯해 주요 국가유공자의 홈페이지에서 북한 소행으로 의심되는 활동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도 내년 우리 총선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보고 대응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종욱 국정원 3차장은 “총선 선거 관리 시스템 보안을 위해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며 “북한의 대남 심리전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직 군 방첩 부서 관계자는 “북한은 그럴싸한 가짜 뉴스를 퍼트릴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대놓고 거짓 정보를 공식 발표해 우리 군 당국과 한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총참모부가 지난해 11월 “울산 앞바다 80㎞ 부근 공해상에 전략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지만 탄도미사일에 비해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순항미사일이 변칙 비행을 해 울산까지 갔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군의 정찰 활동에 혼선을 주고 우리 군의 발표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떨어뜨리려 했던 것이다. 김여정이 지난해 8월 연설에서 “대북 전단이 코로나 유입원”이라는 주장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허위 사실이었다.
북한 선전물과 가짜 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성년 학생들의 휴대폰 등 한국 사회에 무단 유포되며 여론에 영향을 주고 있다. 본지가 직접 확인해보니 국내 일반 인터넷망에서 ‘노스 코리아 걸스(북조선 녀성)’ 등 김정은 우상화, 북 체제 미화 각종 사이트에 손쉽게 접속할 수 있었다.
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등 각종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대내외 심리전을 더 강도 높게 전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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