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난에… TSMC, 美 공장 가동 1년 연기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2023. 7. 22.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부족 심화되나
지난달 6일 류더인 TSMC 회장이 주주 대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라인의 가동 시점을 연기하기로 했다. 첨단 반도체 장비를 설치할 전문 인력이 부족해 공기(工期)를 맞추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20일 오후(현지 시각) 류더인 TSMC 회장은 2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콘퍼런스콜(투자자 대상 전화회의)에서 “미 애리조나주의 가동 시기를 기존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재경신보 등 외신들은 “그동안 TSMC의 애리조나 팹(공장) 건설이 인력난으로 늦춰질 것이라는 소문은 많았지만, 회사가 공식 발표한 것은 처음”이라며 “콘퍼런스콜에 참여하는 경우가 드문 류더인 회장이 직접 나서서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이 영향으로 21일 대만 증시에서 TSMC 주가는 전날 대비 3.28% 내린 560대만달러(약 2만3010원)에 마감했다.

◇바이든의 ‘반도체 꿈’ 가로막는 인력난

지난해 12월 6일 열린 TSMC 애리조나 팹 장비 반입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왼쪽) TSMC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로이터

2021년 4월 건설을 시작한 TSMC의 애리조나 팹은 현재 공장 내 최첨단 설비들을 설치하는 중요한 단계에 들어섰지만, 문제에 부닥쳤다.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장비 반입식을 연 지 7개월여 만이다. 류 회장은 “첨단 장비 설치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생겼다”며 “대만에서 경험이 많은 인력을 파견해 현지 근로자들을 교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SMC는 늦어지는 애리조나 팹 건설 진도를 맞추기 위해 대만에서 전문 인력 500명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만 현지에선 “전문성이 떨어지는데 인건비는 수배 비싼 현지 인력을 채용하는 것 보다 대만에서 직원을 파견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텍사스에 신규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 관계자는 “핵심 기술은 보안 문제 때문에 자국에서 인력을 파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전문가들은 “반도체 인력난은 미국 반도체 부흥 계획의 최대 장애물”이라고 지적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재단의 샤리 리스 이사는 뉴욕타임스에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해도 일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SEMI에 따르면 2021년 이후 미국에 새롭게 지어지는 반도체 공장만 18곳이다. 당장 뉴욕주에 신규 팹을 건설하는 마이크론은 공장 가동에 9000명의 직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 중심이 동아시아로 넘어간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 내 이공계 대학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발전했고, 반도체 전공 과정을 개설한 곳도 많지 않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수년 내 미국에서 부족한 반도체 인력 규모는 7만~9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퍼듀대 등이 최근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고 있지만, 당장 1~2년 내에 필요한 반도체 인력을 곧바로 공급하기엔 역부족”이라며 “미국 정부도 해외 전문가 유인을 위해 비자 발급 요건까지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대만·유럽도 ‘반도체 인재난’

지난 5월 18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중간)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수장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사장, 팻 갤싱어 인텔 CEO,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 류더인 TSMC 회장,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 프라부 라자 AMAT 반도체 사업부 수석부사장. /AP 연합뉴스

반도체 인력 부족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수년간 반도체 공급망과 생산 기지 재배치 움직임이 일어나며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60개 이상의 반도체 시설이 새롭게 지어지고 있다. 각국이 보조금을 내걸고 반도체 시설 투자를 유치하고 있지만, 인력 양성은 돈으로 당장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딜로이트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반도체 인력 수요가 100만명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일본은 향후 10년간 숙련 반도체 기술자 3만5000명, 대만은 설계 인력만 2만여 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한국도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 수요는 12만7000명에 달하는 반면, 연간 인력 공급은 5000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8만명에 육박하는 인력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진 각국의 설비 투자에 대한 보조금 경쟁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인재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라며 “반도체 인재 육성은 물론 두뇌 유출 최소화 지원 정책까지 나와야 한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