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샌프란시스코에 두고온 내 마음’ 부른 토니 베넷 별세
미국 재즈 거장 토니 베넷(Tony Bennett·96)이 21일(현지 시각) 고향인 미국 뉴욕에서 별세했다.
베넷은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I Left My heart in sanfrancisco)’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58년 영화 ‘선셋 77번가’ 조연으로 배우 활동을 펼쳤고, 1975년 화가로 데뷔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특히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Great American Songbook) 챔피언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미국 대표 고전 재즈곡들을 평생에 걸쳐 전승해 온 베넷의 공로를 20세기 미국을 가장 대표하는 노래를 모아놓은 책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에 비유한 것이다. 베넷의 사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2016년부터 알츠하이머 투병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1926년 뉴욕 퀸스 지역에서 태어난 베넷은 70년간 현역 가수로 활동하며 미국 스탠더드 팝과 재즈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베넷 스스로는 자신을 ‘바리톤처럼 노래하는 테너’로 묘사했다고 전해진다. 그와 함께 동시대를 풍미한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베넷에 대해 1965년 ‘라이프’ 잡지 인터뷰를 통해 “작곡가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는 가수”라며 “그는 나를 흥미롭게 하고 감동시킨다”고 했다.
베넷은 1936년부터 재즈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통산 150회 이상의 음반 녹음, 60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 기록을 세웠다. 1944년 세계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 입대해 육군 악단 가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1951년 첫 번째 히트곡 ‘비커즈 오브 유(Because of you)’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56년 자신의 이름을 건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의 진행자로 나서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부터 시작된 록의 유행도 베넷의 행보를 막진 못 했다. 1963년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로 ‘올해의 레코드상’ 트로피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20개의 그래미상이 베넷의 품에 안겼다. 그 중 17개는 60대 이후에 받은 것이라고 AP는 전했다. 노년까지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했고, 2001년 미국 대중음악계 거장 가수들에게만 주어지는 그래미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베넷은 유행가를 부르라고 종용하는 음반사와 전자음을 애용하는 방송사 무대를 저격하며 평생 자신만의 음악관을 꿋꿋이 관철해 나간 가수이기도 했다. 1994년 100만장 넘게 팔려 나간 ‘MTV언플러그드:토니 베넷’은 특히 그런 행보에 정점을 찍은 음반이었다. 베넷은 콜 포터의 ‘올 포 유’, 바트 하워드의 ‘플라이 미 투 더 문’ 등 20세기 초에 크게 사랑받았지만, 젊은 세대에겐 잊혀진 대표곡들을 전자음을 철저히 배제한 어쿠스틱 반주로만 이 음반에 실어냈다. 당시 60대 후반이었던 베넷이 이 음반으로 젊은 인기 가수들을 제치고 그래미 ‘올해의 음반상’을 거머 쥐었을 때 뉴욕타임스는 “토니 베넷은 세대 차이를 메우는 게 아니라 세대 차이 자체를 없애버렸다”고 평했다.
다만 이런 베넷의 행보는 옛 곡들만 추앙하는 음악적 ‘결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차세대 팝스타들과의 협업에 항상 도전의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아레사 프랭클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쟁쟁한 후배 보컬리스트들과 협업했고, 2011년 협업곡 ‘더 레이디 이즈 어 트램프(The Lady is a Tramp)’로 처음 만난 레이디 가가와는 60년 나이 차를 뛰어넘는 음악적 우정을 이어왔다. 두 사람은 협업 음반 ‘러브 포 세일(Love for sale)’로 함께 지난해 그래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2021년 발매한 이 음반으로 베넷은 전 세계 최고령 현역가수(95세 60일)가 낸 음반 기네스 세계 기록을 보유했다. 그의 마지막 은퇴 음반이기도 했다. 그해 봄 베넷은 레이디 가가와 함께 자신의 생일에 맞춰 이틀 동안 은퇴 공연 ‘원 라스트 타임 언 이브닝’을 열었고, “전설적 가수의 전설적인 작별 무대”라며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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