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말끔히 잊고 싶어” 직장인 작가들이 권하는 여름 휴가 책 10

2023. 7.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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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통해 진상고객 응징·회사 동료 대신 유령과 친구
‘K직장인’의 여름 휴가는 책 속에서 완성된다

K(한국)를 벗어난다고 ‘K직장인’의 여름휴가가 완성될까. 어디에 있든, ‘직장인’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휴가일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일터에서 끄집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럴 때 회사 메신저가 깔려 있는 휴대폰을 내려두고, 책 속으로 뛰어드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일러스트=김하경

Books는 생업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K직장인’ 저자 다섯 명으로부터 휴가철 일을 잊게 하는 책을 추천받았다. 교수·약사·출판 편집자·고등학교 교사·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직업은 다양하지만, 일을 잊고 싶은 마음만은 하나같다. 그 간절함이 직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을 휴가로 이끌어줄 것이다.

면세구역 | 듀나 소설집 | 북스토리 | 326쪽 | 1만3000원

요망하고 고얀 것들 | 이후남 지음 | 눌와 | 320쪽 | 1만7000원

내 전공은 환경안전공학이다. 강의를 준비하거나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면 현실 문제의 해결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다. 자연을 사랑하자고 외치는 마음만으로 환경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환경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해 보려 고민하기 시작하면 숫자와 도표가 보여 주는 세상 사정은 항상 복잡하게 꼬여 있기만 하다.

이럴 때 잠시 쉬면서 숨을 돌리고 싶다면, 세상을 보는 신선한 관점을 줄 수 있는 부류의 문학을 갈증 해소 음료처럼 찾게 된다. 듀나는 한국 SF가 서서히 성장 국면으로 들어서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서 멋진 소설을 써오며 활발히 활동해 온 작가다. ‘면세구역’은 듀나의 책 중 초기 단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혼자서 마치 20년 후의 미래를 보고 온 것 같은 초월적인 감각을 보여 주는 듀나의 실력을 같은 소설가 입장에서 우러러보게 된다. 한국의 도시, 한국인의 일상과 같은 가까운 소재 사이로 외계인과 첨단 미래 기술 같은 먼 소재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삶과 세계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게 한다.

조금 더 먼 문학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면 고전문학을 연구한 이후남 박사의 ‘요망하고 고얀 것들’도 좋은 선택이다. 한국 고전 소설 속 각종 괴물, 요괴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분석하고 소개하는 교양 서적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한국의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한다. 눈이 네 개고 팔이 여섯 개인 채로 무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히는 ‘은수자’라는 괴물이라든가, 물속에 사는 집채만 한 털뭉치 덩어리인 ‘수귀’ 등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다들 이 책이 소개하는 고전 소설의 중심 소재다. 한국의 옛 문화가 얼마나 더 넓은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며 읽는다면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재미있을 내용이다. 여름철 바다 건너 어느 먼 나라에 가면 이상한 괴물들이 사는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공상해 보는 경쾌한 감각으로 그저 즐기기에도 좋다. /곽재식 소설가·교수

명상 살인 | 카르스텐 두세 소설 |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1만5800원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 이탈로 칼비노 소설 |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340쪽 | 1만6000원

예전에 약국을 운영할 땐 여름휴가 잡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보통 가까운 병의원 여름휴가 날짜와 비슷하게 맞추곤 했는데, 그러자니 원하는 기간에 약국 문을 닫고 휴가를 가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지인들은, “왜? 가고 싶은 날 그냥 닫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했지만, 생각해보라. 인근 의원은 진료를 보는데 우리 약국만 문을 닫고 여행을 가버린다면, 처방전을 들고 온 환자들은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지금은 병원에서 일하기에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엔 획일적인 휴가 문화가 있어 관광지라 할 만한 곳은 항상 붐비고 쉬기 위해 떠난 여행은 짜증과 스트레스로 뒤덮이기 십상이다. 이럴 때, 숙소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인 채 독일 작가 카르스텐 두세의 ‘명상 살인’을 읽는 건 어떨까. 주인공 비요른은 변호사. 주말도 없이 일하느라 가족과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그러던 어느 주말, 모처럼 가족과 휴가를 앞둔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골칫덩어리 고객인 조직폭력배 두목이 또 사고를 쳤다. 평소 같으면 스트레스를 참으며 뒤치다꺼리를 했겠지만, 이번에 비요른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명상 수업 때 들었던 말을 하나씩 떠올리며, 스트레스의 근원이자 원흉인 ‘고객’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명상+살인’ 이라는 조합이 왠지 기묘하지만, 읽다 보면 대리 만족과 카타르시스로 몸과 마음이 상쾌해질 거다.

여행을 가서 ‘명상 살인’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하나 있다. 바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시원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이 무슨 재미없는 발상이란 말인가, 투덜댈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도 책 제목을 들으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여행을 가지 않고도 긴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줄 책은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이다. 제목 그대로, 어느 겨울밤 낯선 역에서 내린 여행자의 발길을 따라가 보자. 잘만 하면, 일생에서 가장 멋진 여름휴가가 책 속에 펼쳐질지도 모르니. /김희선 소설가·약사

나의 친구, 스미스 | 이시다 가호 소설 |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170쪽 | 1만4000원

나중에 | 스티븐 킹 소설 |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348쪽 | 1만4800원

휴가 중 우리가 잠시 중단하는 건 일뿐만이 아니다. 잔소리 많은 팀장, 의뭉스러운 팀원, 자기 할 말만 하는 대표…. 직장 내 인간관계의 일시적 중단이야말로 휴가의 진정한 의미이자 휴가가 보장하는 도덕적 일탈이 아닐까. 지속 가능한 회사 생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단절 가능한 동료 생활이다.

문학 편집자는 직장 동료에 더해 한 겹의 동료가 더 있다. 다름 아닌 저자다. 흔히 편집자에게 사람은 세 부류로 구분된다고들 한다. 저자인 사람, 저자가 될 사람, 저자를 소개해 줄 사람. 나는 휴가철이 되면 직장 동료와 더불어 저자라는 존재의 차단까지 함께 도모하는 편이다. 책 만드는 사람의 정체성을 잊은 채 읽는 것인데, 그럴 때 내 독서는 저자를 생각하지 않는 읽기,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는 읽기다.

돈이 되지 않는 읽기는 돈 대신 우정을 준다. 책을 통해 친구를 얻는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을 때 나는 제법 충전된다. 근래 나를 충전시켜 준 두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여러분의 보편적 친구가 되기에도 손색이 없을 이들이다.

이시아 가호 장편소설 ‘나의 친구, 스미스’의 U노와 스티븐 킹 장편소설 ‘나중에’의 제이미 콘클린.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하게 된 스물아홉 살 일본 여성 U노는 근육의 성장에 몰입하는 순수한 기쁨과 함께, 대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을 수행하며 모욕감도 느낀다. 이러한 모순적인 감정 속에서도 U노는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선택한다. 단련은 언제나 모순 속에서 더 강해진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제이미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여섯 살짜리 소년이다. 유령들은 죄다 진실만을 말한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더 적은 시대. 제이미와 유령들은 ‘친구’야말로 진실이 오가는 희귀한 통로임을 알려준다.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아직 진실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피곤한 법. 책 속 우정에 현기증이 날 때쯤 현실의 관계들이 사뭇 그리워진다. 팀장의 잔소리, 팀원의 석연치 않은 눈빛, 사장님의 ‘라떼’ 스토리…. 성공적인 휴가를 보냈다는 증거다. /박혜진 문학평론가·출판 편집자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 | 지미 리아오 글·그림 | 문현선 옮김 | 168쪽 | 2만원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44쪽 | 1만6700원

일하는 이의 휴가는 언제 찾아오는가. ‘이렇게 일하다가 내가 닳아 없어지고 말지’ 싶을 때 온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꺼내어 쓸 에너지가 없을 때 휴가가 찾아온다. 긴급 처방이 필요한 시간. 일의 세계를 잊을 수 있는 최고의 처방은 아름다운 세계로 달아나는 것 아닐까. 지미 리아오의 그림책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을 권한다. 이 책의 그림은 환상적이고 섬세하다.

주인공 아이는 엄마가 없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할 때마다 아빠는 아이와 함께 영화관에 간다. 영화를 보면서 슬픔을 잠시나마 잊는다. 이후 아이는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영화관에 간다. 그렇게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 젊었을 때는 “영화 속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탄하다가, 나이가 든 후 비로소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읊조린다. 영화는 외로운 아이의 성장을 지켜주었고, 현실이 영화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외로움, 온갖 감정이 삶에 촘촘하게 수놓아진 뒤에야, 사람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것일까.

휴가가 시작되면 모든 것을 잊고 싶다. 솔직한 마음은 아니다. 사실은 이전보다 여유 있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다. 이향규 에세이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저자는 영국인과 결혼해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20여 년 살아왔는데, 남편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 영국으로 아예 거주지를 옮긴다. 영국에서 저자의 생활은 적막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주변에 있는 물건이라 그에 대해 글을 쓰려 했는데, 정작 쓰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저자와 함께, 사물이 불러내는 삶의 시간을 조용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기억을, 사람을 불러내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 그리운 이와 걷던 길의 기억은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한다. 마음이 조금 든든해진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나의 직장인 학교로 돌아갈 용기를 내어 본다. /서현숙 에세이스트·고등학교 교사

삶이라는 직업 | 박정대 시집 | 문학과지성사 | 255쪽 | 9000원

골목안 풍경 | 김기찬 사진집 | 눈빛 | 312쪽 | 6만원

나는 오랫동안 삶은 생계와 생존 이상의 것이어서, 삶 자체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직업이란 특정 고객들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한 대가로 합당한 금전적 혹은 심리적 보상을 받는 상호 작용의 총체라 정의한 지금의 나는, 삶 역시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 삶의 고객은 누군가 하는가다.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내게 직장인으로서의 고객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고 나의 업무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져야 하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나에게는 스스로를 고객으로 살피면서 나만의 아픔과 애환을 다스려야 하는 날도 있다. ‘삶이라는 직업’에서 박정대 시인은 그의 삶의 고객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설정하여, 고독과 자유와 사랑이 다만 자신에게만 머무르는 동시에 어떻게 무한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지, 내가 유일한 나일 뿐이면서 어떻게 당신이 되고 심지어 다른 모든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삶이며 직업이며 동시에 휴가 그 자체인 시와 노래로 고요히 소리 높여 속삭여 준다.

나이가 들며 여행에 대한 욕구가 줄어든 내게도, 문득 훌쩍 떠나고 싶은 순간들은 있다. 김기찬 작가의 사진을 보는 때가 그렇다. 그가 오랜 시간 찍어 완성한 ‘골목 안 풍경’을 살피다 보면, 이유 없이 반바지 차림에 필름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느린 도보로 칠레나 페루로 떠나 영 돌아오지 않고 싶은 기분이 된다. 이렇게나 익숙하고 가까운데, 내가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골목들이 바로 지척이어서 세상의 가장 끝 간 데에 있을 것만 같고, 내가 결코 지어보지 못한 따스한 미소를 가진 사진 속 이웃들이 모두 다 나인 것 같아, 사진 안으로 손을 넣어 어깨를 짚으면 내 얼굴을 한 그들이 뒤돌아 바라보며 웃어줄 듯하다.

하지만 그토록 곁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들은 이제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번 휴가에도 어디로도 떠나지 않을 테지만, 이 무거운 사진집과 함께라면 내 좁은 방 한구석에 머물기만 해도 내가 아직 닿지 못한 익숙하고 아득한 풍경을 찾아 아주 멀리 나가볼 수 있을 듯하다. /채길우 시인·제약회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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