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國서 64명…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6·25 영웅 모신다

양지혜 기자 2023. 7.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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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주년 맞아 24일 방한

임진강 북단 해발 200m 남짓한 능선 고지는 6·25전쟁 통틀어 손꼽히게 처절했던 전투가 치러진 곳이다. 지형이 쇠고리 모양을 닮아 ‘후크(hook) 고지’로 불리는 이 곳에서 1952년부터 이듬해 휴전 직전까지 미군과 영연방군 젊은이들이 중공군에 맞서 피 흘렸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경기도 연천군 일부가 대한민국 영토로 귀속됐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이나 장진호 전투처럼 참상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6·25전쟁 후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로널드 워커(89·호주) 옹은 정전 70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는다. /국가보훈부

빈센트 R. 코트니(89) 옹은 후크 고지전에서 살아남은 캐나다 노병이다.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다 군복을 입고 한반도로 건너온 열여섯 소년은 상상도 못 했던 참상과 맞닥뜨렸다. 그는 지축을 뒤흔드는 폭탄의 굉음을 견디며 케이크처럼 켜켜이 쌓인 시체 더미 사이를 뱀처럼 기어다닌 끝에 총탄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전우들은 신음과 절망 속에서 죽어갔다. 그와 전우들이 지켜낸 폐허에서 한국인들은 자유와 번영이라는 꽃을 피워냈다. 로널드 워커(89), 렉스 매콜(92), 버나드 휴즈(92), 마이클 제프리스(90·이상 호주), 피터 마시(90·영국) 옹도 후크 고지전에서 피 흘린 유엔 참전용사다.

국가보훈부는 오는 2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해 유엔 참전용사에게 정부 차원의 예우와 감사를 전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웅들을 모십니다’를 주제로 재방한 행사를 연다. 코트니 옹을 비롯한 미국·영국·호주·에티오피아·필리핀 등 21국의 유엔 참전용사 64명이 참여하며, 동반 가족까지 포함하면 총 200명이 한국 땅을 밟는다. 이들은 24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5박6일간 서울 전쟁기념관·부산 유엔기념공원·판문점 등 곳곳을 둘러볼 예정이다. 한국 입국 순간부터 전용 출입국 통로를 이용하는 등 최고 예우를 받는다.

6·25에 참전한 캐나다의 '로티 4형제'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서 로티(왼쪽에서 둘째) 옹도 이번에 방한한다. /국가보훈부

아서 로티(91·캐나다) 옹도 ‘로티 4형제’를 대표해 한국을 찾는다. 레이먼드·아서·모리스·프레더릭 로티 4형제는 캐나다 왕립 22연대 소속으로 6·25 전쟁에 파병돼 임진각 서부전선에서 중공군과 싸웠다. 이들은 적군과 1㎞도 떨어지지 않은 진지 속에서 지내다 야밤엔 강물을 헤쳐 적군을 기습했고 목숨을 건 순찰로 식량을 가까스로 구해가며 고지를 사수했다. 장남 레이먼드는 포탄 파편을 맞아 두 번이나 중상을 입기도 했다. 로티 4형제는 휴전 후 캐나다로 무사히 돌아갔지만 현재는 둘째인 아서 옹만 생존해 있다. 다른 세 형제는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이번에 형 대신 아들의 손을 잡고 온다.

유엔군을 통솔했던 장성들의 후손도 이번 방한단에 포함됐다. 전쟁 발발 초기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월턴 워커 장군의 손자(샘 워커 2세)와 후임 미 8군 사령관을 맡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외손자(조지프 매크리스천 주니어)가 대표적이다. 워커 장군은 북한의 기습적 남침으로 국군이 밀려날 때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킨다. 결사항전(Stand or Die)하라”고 공언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밴플리트 장군은 인해전술을 쓰는 중공군을 겨냥한 대규모 포격전을 성공시켜 전선을 38도선 위로 올려 대한민국의 자유를 사수했다. 그의 외아들도 미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폭격기를 몰다가 전사했다.

윌리엄 워드(91·미국) 옹이 전쟁 때 만났던 12세 소년 장(Chang)의 모습. /국가보훈부

전쟁 중에 스쳐간 인연을 그리워하는 참전용사들도 있다. 휴전 후 처음으로 방한하는 윌리엄 워드(91·미국) 옹은 부산 캠프에서 매일 자신의 빨래를 해주겠다던 12세 소년 ‘장(Chang)’을 찾고 있고, 에드워드 버커너(91·캐나다) 옹은 초소 청소를 했던 ‘Cho Chock Song’이란 이름의 한국 소년을 수소문하고 있다. 이들은 애틋한 재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당시 찍었던 흑백사진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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