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자치단체’ 아니라 ‘지방정부’다
수도권만 비판하며 ‘정의’ 외쳐
새 정부 핵심은 지역에 ‘자유’
질투·투쟁보다 권한 갖고 자립을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분권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외교 안보 부문을 제외하고 지방에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의지를 자주 보였다. 사용하는 용어도 새로웠다. 건국 이후 중앙집권 구조에서는 도·시·군 등을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중앙정부의 ‘아랫것’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중앙정부와 동격인, 수평적 용어다. 같은 ‘정부’끼리 맞붙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 ‘분권’의 핵심이다. 분권은 ‘정부 간 권력관계’를 명시한다. 예를 들면, 환경 정책 권한을 중앙정부와 강원도 정부 중 어느 쪽이 가지는 것이 나은 방향인가를 정하는 거다. 그래서 분권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논리의 다툼이 항상 존재하는 뜨거운 영역이다.
분권은 좌파 정부가 선점한 정책 이슈였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분권 방향에 대한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윤 정부의 분권 정책은 좌파 정부의 분권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은 분권 정책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좌파 정부의 분권 정책은 ‘투쟁적 분권’이었다. 지방이 못사는 이유가 수도권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분권뿐만이 아니다. 좌파들의 세계관은 항상 집단 간 대립으로 본다. 한 집단이 열악한 이유를 다른 집단 때문으로 규정하고, 미움과 질시, 응징과 투쟁의 구호를 내세운다. 그래서 수도권을 억제하고, 지방은 무조건 많이 주는 것이 사회적 정의였다.
윤 정부 분권 정책의 골격은 ‘자유적 분권’이 되어야 한다. ‘자유적 분권’은 수도권을 질시하거나 투쟁하는 분권이 아니다. 지역에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자유라는 권한을 가지고, 수도권처럼 잘사는 지역으로 스스로 힘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자유적 분권’에는 지역이 잘못해 망하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다짐도 포함된다. 그래서 가난해질 용기가 있는 지역만이 분권을 달라고 해야 한다.
좌파 정부에서는 ‘분권’과 ‘균형’을 같은 정책 목표로 생각했다. 즉 분권하면 균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역이 분권한다고, 항상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분권해서 망한 지역도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 디트로이트시와 일본 유바리시를 들 수 있다. 분권과 균형은 서로 어울릴 수 없고, 같이 갈 수도 없는 정책 목표다. 분권은 다른 말로 ‘자유’다. 자유는 가치이므로, 다른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자유에는 책임이라는 엄중한 무게가 있다. 지역 스스로가 자유라는 분권 구조를 갖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반면 균형은 중앙정부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앙집권적 용어다. 지방정부에서는 균형이라는 개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른 지역과의 균형을 위해 자기 지역의 개발 수준을 조절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지역의 발전만 생각하는 것이 분권의 본질이다. 분권과 무관한 ‘균형’을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매력적인 ‘정치 용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균형, 형평, 평등 등 용어에 감성적으로 끌리는 유전자가 내재해 있다. 그래서 균형을 외치면, 마치 모든 지역이 다 잘살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망하는 균형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가 실험한 역사를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와 열성을 현실화하는 조직인 ‘지방시대위원회’가 10일 출범했다. 지난 정부에서 ‘분권’과 ‘균형’으로 이원화한 조직을 하나로 추진하니, 정책의 일관성과 힘이 더 실릴 듯하다. 그러나 정책의 무게를 ‘분권’에 실어야 한다. 정권은 정치 과정의 산물이므로, ‘균형’이라는 정치 용어를 무시할 순 없지만, 균형 때문에 분권 정책에 혼선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75년 역사를 두 단어로 표현하면, ‘산업화’와 ‘민주화’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공한 위대한 대한민국이 다음 가야 할 시대정신은 ‘분권화’다. ‘분권’은 ‘자유’와 ‘민주’를 지역에서 동시에 이루자는 지역 치환 개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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