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교사도 맞는 건 싫어요”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엔 이른 아침부터 근조 화환을 실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초등 교사 일동’ ‘OO초 학부모’ ‘신규 동료 교사 일동’ 등의 문구가 적힌 화환이 금세 학교 정문 옆으로 길게 늘어섰다. 오후가 되자 550m 길이의 초등학교 담벼락이 1000개가 넘는 조화로 뒤덮였다. 그 어떤 유명 인사의 장례식에서보다 많은 조화를 강남의 초등학교에서 봤다.
이날 교사와 시민 수천 명이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2년 차 신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서이초에 모였다. 오후엔 헌화를 하기 위한 줄이 200m까지 늘어났다. 서울 기온은 33도였다.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에 사람들마저 뒤엉키며 가만히 있어도 땀범벅이 됐다. 학교 내부에 추모 공간이 마련되기까지 3시간 이상을 기다린 교사도 많았다.
추모 행사에서 만난 교사들은 하나같이 “내 얘기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기다림을 설명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비극의 틈을 파고든 가짜 뉴스도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삼복더위에 줄을 섰다. 학교에선 감당하기 어려운 학부모들의 민원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아이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라는 말로 겁을 주고, 수업 중에 교실 문을 벌컥 열며 찾아오는 일도 꽤 흔한 일이라고 했다. 9년 경력의 한 초등 교사는 학부모 민원이 마치 ‘교통사고’ 같다고 표현했다.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리적 위협을 받는 교사도 최근 늘어났다. 지난달 서울 한 초등학교에선 6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넘어뜨리고 수십 대를 때려 전치 3주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생과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는 1133명이다. ‘내 학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에 폭행당한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많다. 이틀 전 한 교사 커뮤니티에선 ‘교사도 맞기 싫어요’라는 글이 인기글에 올랐다. 사회 전반에서 인권 의식이 높아지며 학생은 물론 군대에서도 폭력이 줄어드는데, 왜 교사는 계속 맞아야 하느냐는 울분이었다.
교권 추락 문제는 교육적 차원에서도 심각한 사안이다. 이젠 학생들도 교사가 민원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안다. 하남시의 8년 차 초등 교사는 작년 “국어 수업이 재미없으니, 엄마에게 민원을 넣어 줄여달라고 하겠다”는 말을 학생에게 들었다고 했다. 훈계하는 교사를 아동 학대로 고소하는 일이 많아지자,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작년부터 “생활지도를 최소화하라”는 지침을 내린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교육청과 교육부는 뚜렷한 대책을 못 내놓고 있고, 교사의 교육 활동을 보호하는 법안은 올해도 국회에 잠들어 있다. 교권 대책 없이는 교육의 미래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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