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혈액 항응고제는 쥐약에서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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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살리나스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일부 아이들은 여성의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사춘기에 들어서면 남자아이처럼 남성 생식기가 드러나고 목소리가 굵어졌다.
1970년대 한 연구자가 이 아이들이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돌연변이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더 강력한 분자로 전환하는 효소의 양을 줄여 사춘기가 될 때까진 남성의 특징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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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샘비대증 치료제를 개발하던 거대 제약회사 머크는 이 연구를 본 뒤 해당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찾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피나스테리드라는 물질을 찾아냈다. 머크는 이 물질이 탈모를 멈추는 효과도 있다는 걸 발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바로 남성 탈모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약 ‘프로페시아’다. 남성 호르몬 억제와 관련된 이 약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만져서도 안 된다.
미국의 과학 칼럼니스트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약 가운데 15가지를 골라 개발 과정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혈액 항응고제인 와파린은 20세기 초 북미에서 소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데에 기원이 있다. 죽은 소들은 내부 출혈로 고통받았는데, 알고 보니 곰팡이가 핀 건초를 먹인 것이 문제였다. 건초에서 혈액 응고를 방해하는 디쿠마롤이라는 분자가 만들어졌던 것. 연구진은 이와 비슷한 분자인 와파린으로 설치류를 방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와파린은 쥐약으로 상품화됐다. 한데 1951년 한 미국 해군 신병이 6·25전쟁에 파병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자살을 시도하려고 이 쥐약을 먹었다. 병사는 죽지는 않았고, 출혈로 병원에 이송됐다. 이 사건을 접한 연구진은 와파린을 인체 혈전 생성을 막는 약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항생제 페니실린,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 우울증 치료제 이프로니아지드, 보톡스, 비아그라 등 여러 약의 개발 과정에 얽힌 노력과 좌절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제 ‘세상을 뒤흔든 15가지 약의 결정적 순간’.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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