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진출-온라인 판매에 실적 급감… 車 딜러 ‘투 잡’ 뛰기도

한재희 기자 2023. 7. 2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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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생존경쟁 내몰린 자동차 딜러들
《설 자리 잃어가는 車 딜러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과 수입차 업계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온라인 판매가 늘며 자동차 업계 판매원(딜러)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최근 본보가 만난 중고차와 수입차 딜러들은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19일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남수원 자동차매매단지’ 주차장에 중고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수원=한재희 기자 hee@donga.com
18일 서울 강서구 가양오토갤러리에서 만난 중고차 판매원(딜러) A 씨는 “요즘 ‘투 잡’을 고민하고 있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4년 전 대형 중고차 단지가 몰려 있는 가양동에 둥지를 틀고 딜러라는 새 직업을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벌이가 시원치 않자 부업으로 병행할 다른 일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중고차 판매 업체가 30여 곳 몰려 있는 가양오토갤러리는 2013년 6월에만 해도 월간 1351대가 팔렸는데 지난해 6월에는 650대만이 새 주인을 찾아갔다. 9년 사이 판매량이 51.9% 줄어든 것이다.

A 씨는 “가뜩이나 상황이 어려운데 앞으로 대기업들이 더 많이 중고차 사업에 뛰어든다니 걱정”이라며 “중소 딜러들은 앞으로 대기업들이 취급하지 않는 특수차종이나 색상이 특이한 비인기 차종 시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딜러들 중에 부업으로 만화방이나 배달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딜러라는 것이 손님이 올 때만 주로 일하는 구조여서 남는 시간을 쪼개 대리기사 같은 ‘투 잡’을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폴스타 이태원점 지점장인 양현석 씨는 신차를 판매하는 딜러 일을 아예 그만둔 사례다. 지난 12년 동안 수입 신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었지만 이제는 수입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서울 용산구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제품을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일종의 ‘차량 도슨트(안내원)’를 지난해부터 하고 있다.

수입차 브랜드 폴스타 이태원점의 지점장인 양현석 씨(오른쪽)가 1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전시장에서 고객에게 전기차인 ‘폴스타2’의 기능과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과거 12년 동안 수입차 딜러를 해왔던 양 씨는 정장을 빼입었던 영업사원 시절과 달리 ‘차량 도슨트(안내원)’ 역할을 하는 현재는 캐주얼 복장으로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딜러는 자기가 신차 계약을 따온 만큼 월급을 가져가지만 차량 도슨트는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차량에 대해 매우 전문적인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딜러 시절 정장에 넥타이와 구두를 착용하고 고객을 찾아 뛰어다녔던 양 지점장은 이제 캐주얼 복장에 스니커즈를 신고 전시장에서 고객을 맞이한다. 과거에는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차량 구매를 강하게 권했다면 이곳에선 고객들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 보조 역할이 중점이 된다.

양 지점장은 “폴스타처럼 100% 온라인으로 판매하면서 오프라인에는 실제 차량을 구경할 수 있도록 전시장만 꾸리는 회사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며 “과거 동료들이 ‘새 직업은 어떠냐’며 많이 묻는다. 업계에 변화가 빨라 기존 딜러들도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 생존 위협받는 신차·중고차 딜러

신차·중고차 판매업 종사자들이 산업의 변화 속에서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몇 년 뒤에는 딜러라는 직업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감지되고 있다. 온라인 차량 판매 등으로 소비자의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딜러의 생존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딜러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변화는 대기업들의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이다. 인증 중고차란 제조사가 직접 정비와 점검을 마친 중고차를 의미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조사가 브랜드 명성을 걸고 확인한 제품이기 때문에 침수차를 잘못 구매하거나, 고장난 차를 속아서 살 가능성이 작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생긴다. 반면 기존 중고차 딜러들은 대기업의 시스템과 자본력에 밀려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다.


이미 20여 곳의 수입차 업체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와중에 올 4월 한국토요타도 뒤늦게 뛰어들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하반기(7∼12월) 진출을 확정했고, KG모빌리티도 하반기 진출을 목표로 준비 작업에 한창 몰두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중고차 딜러 B 씨는 “대기업들이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시장 거래가 좀 더 투명해질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대기업이 여러 시스템을 갖춰서 차량을 검증하고,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하면 결국 중고차 값이 많이 올라갈 것으로 점쳐진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 지역의 딜러 C 씨는 “현대차·기아나 KG모빌리티는 ‘연식 5년 이하, 주행거리 10만 km 이내’의 중고차만 취급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소규모 딜러들 몫으론 오래되고 낡은 차량 위주의 시장만 남게 될 것”이라며 “질이 떨어지는 상품만 팔게 되면 딜러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더욱 커지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 팽창하는 온라인 판매 시장

‘온라인 판매’는 신차·중고차 딜러 모두가 겪고 있는 변화다. 신차 중에서는 폴스타, 테슬라 같은 전기차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100%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다. 다른 완성차 중에서는 일부만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한 뒤 점차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BMW는 ‘iX3’, 폭스바겐은 ‘ID.3’, 현대차는 ‘캐스퍼’, 한국GM은 ‘GMC 시에라 드날리’ 등을 온라인에서 판매 중이다. 또한 스타트업 가운데 ‘직카’는 신차를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리스 중고차도 온라인에서 직접 구매하고 팔 수 있도록 해놓은 플랫폼이다. 하반기에 시작하는 현대차의 인증 중고차도 100% 온라인으로 판매가 이뤄질 예정이다.

갈수록 온라인 판매가 확장되니 불안해하는 딜러들도 생겼다. 코스피에 상장된 ‘케이카’는 중고차를 직접 매입해 품질을 인증하고, 구매 후 3일 안이라면 단순 변심이라도 배송료만 받고 환불해주는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신차 온라인 판매도 현재는 일부만 적용되지만 향후 전 모델을 대상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 딜러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회계·금융·재무 자문 기업인 KPMG가 글로벌 자동차산업 경영진 9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8%는 2030년까지 대부분의 차량이 온라인으로 판매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온라인 판매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수입차 딜러 출신으로 폴스타에서 차량 도슨트 일을 하는 김영진 씨는 “딜러로서 수익을 계속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영업이 점점 어려워져 직업을 바꾸게 됐다”며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개인적 불안감도 있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수익성도 악화됐다는 불만이 딜러들 사이에서 나온다.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요구 때문에 이것저것 차를 손봐야 할 것들은 많아지는데 차량 수리비나 차량 전시장 이용료 등이 꾸준히 올랐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18년째 중고차 딜러를 해 온 임현우 씨는 “10년 전에는 차 한 대를 팔면 30%가량 이득이 남았다면 5년 전에는 20%로 줄고, 최근에는 10%만 남는 식으로 점차 수익성이 안 좋아졌다”며 “중고차 보관비가 오르고, 온라인 플랫폼 수수료도 생기는 등 나갈 돈이 많아서 어떨 때는 차를 팔고도 아예 적자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가양오토갤러리 조중민 대표는 “최근 빚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딜러도 있었다”며 “중고차 매매상사 대표였는데 관리비도 있고, 직원들 월급도 주느라 힘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판매업 종사자들은 매년 조금씩 줄고 있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2월에는 3만7626명이었던 자동차 매매업 종사자가 가장 최근 통계인 2022년 9월에는 3만4715명으로 줄었다. 4년 사이 7.7%가량 업계를 떠난 것이다.

● 온라인 불편한 세대에 딜러는 여전히 중요

하지만 온라인 판매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는 딜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아직 온라인 플랫폼의 편의성이 완숙기에 이르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황은자 한국GM전국대리점협회 수석부회장은 “아직은 소비자 중에 온라인으로만 구매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할 줄 모르겠다’며 대리점에 휴대전화를 들고 와서 딜러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는 것이 어떻게 온라인 구매냐”며 “아직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특정 모델을 온라인으로 100% 팔지 않고 오프라인 판매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 세계에서 딜러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딜러 스스로도 허위 매물을 없애 신뢰성을 회복하며 특성화된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침수차 속여 파는 ‘차팔이’ 오명 벗자”… 자정 목소리

소비자 신뢰 회복 애쓰는 딜러 업계
‘중개사’ 국가 공인 자격증 추진
소비자와 분쟁 줄어들 가능성
“환불 불가 관행 없애야” 지적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3’에는 고규필이 연기한 초롱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인천 지역의 중고차 판매업자(딜러)인 초롱이는 소비자를 속여 침수차를 3000만 원에 판매하려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형사 역할인 마동석이 초롱이를 제지해 결국에는 ‘3000만 원’이 아니라 ‘3000원’에 판매하게 된다. 딜러들이 소비자를 속여 장사하려는 것을 응징하는 속시원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마동석 같은 ‘히어로’가 드물기 때문에 딜러들에게 ‘덤탱이’를 쓸지 모른다는 불신을 가진 소비자가 많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딜러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나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언제까지나 대기업의 인증 중고차가 시장에 진출하고,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는 현실을 불평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자동차중개사협회는 ‘자동차 영업중개사’ 민간 자격증의 국가 공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 영업중개사’가 민간 자격증으로 발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8년이다. 이를 국가에서 공인해 딜러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어야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듯이 자동차 판매 부분에서도 자격증이 있어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향후 목표다.

이미 중고차 단체에서 발급하는 ‘자동차 매매사원 종사원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4∼8시간가량 교육만 들으면 누구나 쉽게 발급받을 수 있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영선 한국자동차중개사협회 이사장은 “교육부 산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국가 공인 신청을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직 민간 자격증이지만 이미 1000여 명의 딜러가 1·2차 검정 시험을 통해 ‘자동차 영업중개사’ 자격증을 받았다. 전문성이 있는 이들이 중개를 하면 소비자들과의 분쟁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고객들을 대하는 딜러들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옛날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요즘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 수원시의 중고차 딜러 김전옥 씨는 “케이카 같은 큰 중고차 플랫폼은 단순 변심이라 하더라도 배송료 정도만 받고 전액 환불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소규모 업체의 딜러들은 단순 변심은 절대 환불해 줄 수 없다고 버티며 소비자들과 대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관행을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질 나쁜 딜러들을 피하기 위해선 소비자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의 중고차 딜러 권혁용 씨는 “보통 시세보다 너무 심하게 싼 매물은 일단 정상적이지 않은 물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며 “자동차 매매사원 종사원증을 제대로 달고 있는 딜러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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