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단서철권
단서철권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처음 만들었다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전한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 서로 잘 지내자는 취지로 후작(侯爵)급 공신에게 하사한 징표였다. 다만 역사 속 단서철권은 대부분 유방의 취지와 정반대로 사용됐다. 당이 망한 뒤 후당의 황제 장종은 재위 중 단서철권을 세 장 하사했다. 두 명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사원(李嗣源)은 반란을 도모했다. 예순에 후당 2대 황제에 즉위한 명종이다. 그는 제위에 앉자마자 단서철권을 꺼내 식은땀을 흘리며 “정말 위험한 물건”이라 외쳤다고 한다. 후당 황제 장종에게 단서철권을 받았던 주우공(朱友恭)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황제의 사신이 가족까지 몰살하려 하자 그의 아내가 철권을 꺼냈다. “여기에 뭐라 쓰여있습니까. 저는 문맹이라 아는 글자가 없습니다.” 철권의 내용을 익히 아는 사신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임무를 수행했다.
단서철권은 시진핑(習近平) 시대 반(反)부패 캠페인을 상징한다. 지난해 6월 30일 자 인민일보 1면에 “누구도 면죄부 ‘단서철권’을 가질 수 없고, 누구도 ‘철모자왕(鐵帽子王·청나라의 특권 세습 귀족)’이 될 수 없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회광의 말처럼 단서철권은 면죄부가 아니었다. 황제는 총애의 표식이 아닌 자신을 두려워 말고 방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징표로 단서철권을 활용하곤 했다. 최근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의 갑작스러운 ‘증발’이 화제다. 5년 만에 국장에서 부총리급 국무위원으로 수직 상승한 인물이어서 파장이 자못 크다. 헛소문을 말하는 중국어 바과(八卦·팔괘)와 현대판 단서철권 사이에 놓여있을 친강의 행방을 지금 세상이 주시하고 있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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