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시간 잠자도 24시간 주기 ‘일주리듬’과 맞추면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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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적은 시간 자더라도 자는 시간대가 맞으면 피로가 풀린다. 양질의 수면이란 시간대와 관련된다. 이러저러한 일로 새벽에 잠들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을 맛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힘든 건 오래 자더라도 여전히 피곤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늦게 일어난 날은 잠들기가 또 어렵다는 것이다. 잠자리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아, 불면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불면증도 조심해야 할 때다. 밤새도록 놀 수 있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는 십대라면 모를까, 잠을 못 자면 손발이 저리고 속이 거북하다. 그러다 보니 일찍 잠들어 상쾌한 날을 맞이하는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한다.
# 일주리듬과 피리어드 유전자
1910년 정신과 의사이자 곤충행동연구가인 오거스트 포렐은 벌의 생체리듬에 대해 생생한 관찰을 했다. 테라스에서 아침을 먹던 중 벌들이 몰려들어 곤욕을 치른 후 자리를 옮겼지만 벌들은 이후에도 식사 시간만 되면 줄곧 그곳에 출현했다. 그는 벌을 비롯한 곤충도 생체리듬을 지녔다는 주장을 펼쳤다.
생명체들의 생체리듬이란, 태양이 뜨고 지는 일주리듬(Circadian rhythm)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Circadian’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주기(circle)’를 뜻하는 ‘키르카(circa)’와 ‘하루(일)’를 뜻하는 ‘디에스(dies)’가 결합된 단어다. 대략 24시간의 주기를 말한다. 생명체의 일주리듬 메커니즘은 1971년에 밝혀졌다. 미국의 시모어 벤저 교수와 제자 로널 코놉카는 수많은 실험을 거쳐 일주리듬을 잃어버린 초파리를 발견하게 된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상태였다. 연구자들은 이 유전자에 ‘피리어드’(Period, 줄여서 PER)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훗날 일주리듬의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 단서가 되었다.
2017년 피리어드 유전자의 메커니즘이 드디어 그 베일을 벗었다.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은 이 유전자가 밤에 발현하여 특정 단백질을 모으고 낮에는 그 단백질을 분해시켜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우리 몸은 그 단백질의 양에 따라 수면과 각성을 오가는 사이클부터 음식물 섭취, 호르몬과 멜라토닌 분비까지 다양한 생리적 리듬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일주리듬을 갖게 된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피리어드 유전자의 작용으로 하루 주기를 갖는 생체시계를 가진다.
그렇다면 피리어드 유전자는 일주리듬을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이 유전자는 생물체 내에서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과 협력하여 빛에 반응한다. 시교차상핵은 우리 왼쪽 눈에 있는 좌신경과 오른쪽 눈의 우신경이 교차하는 지점 바로 윗부분에 위치한다. 독일 과학자 룻거 베버와 위르겐 아샤프는 시교차상핵이 지배하는 주기 실험을 진행했는데, 두 사람의 목표는 빛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었다. 지하 벙커를 만들어 날씨와 밤낮의 변화를 알 수 없게 하고, 피실험자들은 스스로 수면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점점 더 늦게 잠자리에 드는 경향을 보이더니 빛 없이도 약 25시간 주기로 생활하게 되었다.
빛이 없는 공간에서 수면 주기가 25시간에 맞춰진 이유는 체온 때문이라고(월리스 B. 멘델슨, 『잠의 과학』) 한다. 체온은 25시간 주기로 바뀌는데 우리 몸에서 수면 주기와 체온 주기가 맞을 때 ‘내적 동화’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위의 실험에서 피실험자가 지하 벙커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면 수면 주기가 12시간 주기로 짧아지거나, 60시간 이상의 긴 주기로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수면과 체온의 주기가 더 이상 맞지 않는 ‘내적 비동화’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로 숙면을 취할 수 없다. 그렇다.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최종적으로 시교차상핵은 빛에 반응하여 일주리듬이 24.18시간에 맞춰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24시간의 주기, 즉 일주리듬이 인간의 내재된 생체리듬에 최적으로 동화된 상태다. 시교차상핵이 빛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비로소 그때 우리 몸 안의 생체시계들과 동화된다. 우리 몸은 체온을 비롯해 각막·뇌하수체·간·폐 등 다양한 조직에서 저마다 생체시계를 갖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몸 안에서도 작은 생물학적 시계들이 돌아가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 시계들은 시교차상핵의 일주리듬과 동화되어 마치 우리가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일정한 사이클을 유지한다. 그런데 만약 시교차상핵이 손상되어 일주리듬이 깨져버린다면 그것은 시계가 망가진 것과 같다. 우리 몸은 잠자고 깨는 시간대가 불규칙하게 되면서 건강을 잃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태아의 시교차상핵 조직 이식으로 그 기능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고 한다.
하루 6시간 자는 사람과 하루 9시간 자는 사람 중 누가 더 심장마비에 잘 걸릴까? 올해 3월 세계심장학회(WCC)의 연례 발표에 따르면, 하루 수면 양이 9시간인 사람이 6시간인 사람보다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 수면 시간이 5시간 이하인 사람은 6시간인 사람보다 심장마비의 위험이 1.38배, 7~8시간인 사람보다는 1.5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위험도가 9시간 이상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루 5시간 이하로 잠을 너무 적게 자거나 9시간 이상 너무 많이 자는 것 모두 심장에 해롭다.
# 수면의 양인가, 수면의 질인가?
수면 장애를 겪은 날이면 그 인생은 참 고달프다. 눈을 뜨기도 힘들고, 몸이 쉬고만 싶어진다. 이런 피로감을 수면 압력이라고 한다. 수면 욕구로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한다고 하여 ‘항상성의 수면 압력’이라 이름 붙였다. 수면 압력은 인간의 수면 패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깨어 있는 동안에 증가하다가 자고 있는 동안 점점 감소한다. 이러한 수면 압력은 충분한 수면을 취한 다음에 낮아지며, 이는 우리가 다시 새로운 하루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면 압력은 우리의 뇌에서 발생하는 아데노신이라는 화학물질에 좌우된다. 아데노신이 수면 압력을 증가시키면 자고 싶어진다. 일을 오래 하거나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을 보면, 아데노신이 증가해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 아데노신을 줄이는 방법으로 카페인을 섭취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밤에 숙면을 취하여 일주리듬을 회복하는 게 훨씬 낫다. 그래서 수면 압력을 줄이려면 밤에는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적당한 시간만 자도 개운한 상태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피곤하다. 이 차이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수면 압력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온다. 수면 패턴을 파악하고 최적의 수면을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다양한 시도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모델은 ‘2요인 모델’이다. 이 모델을 보면 일주리듬과 수면 압력이라는 두 요인을 분석해야 자신의 수면 시간대를 찾을 수 있다. 적당한 수면 시간대는 일주리듬과 수면 압력 주기가 서로 교차되는 지점이다. 그 시간에 자는 것이 숙면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동안 왜 잠을 자는 시간대가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잠을 자는 시간대에 따라 내 몸이 일주리듬과 수면 압력에 다르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잠을 충분히 못 잔다면 그건 우리 몸의 피로가 일주리듬을 타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수면 욕구가 리듬을 타야 한다. 우리 몸도 결국에는 24시간이라는 하루의 리듬에 맞출 때 가장 건강하게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저녁에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밤에 자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화원·의사·간호사·경찰관·소방관 등 밤에도 일하는 분들이 밤낮없이 애써주고 있다. 아마도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불면에 시달릴 것이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는 밤에 잠을 청할 수 있고 편안한 꿈을 꿀 수 있다. 밤잠에 빠질 때마다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무엇보다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친절히 대하자. 그러면 인생의 리듬을 타는 것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수면이 그렇듯 인생 또한 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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