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늘 파괴적? 다른 방법도 있다
김위찬·르네 마보안 지음
권영설 옮김
한국경제신문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면, 기존의 것을 반드시 ‘파괴’해야만 하는 걸까.
경쟁 사회 속에서, 특히 치열한 기업 경영의 세계에서는 당연히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페이스북(메타)을 만들 때 마크 저커버그가 내세웠다는 ‘빠르게 움직이고, 모든 것을 부숴라(Move fast, break things)’라는 모토는 이런 사고방식을 대변한다.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고전적 표현 이후 기업 성장과 혁신은 당연히 파괴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기업·문화를 파괴하는 것만이 정말 유일한 방법일까. 누군가 성공하려면 꼭 다른 누군가는 망하고, 일자리를 잃고, 무력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창조와 파괴를 동일시하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 늘 옳은 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21세기 초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블루오션 전략’ 창시자들의 목소리다.
이 책의 두 저자는 경영 전략의 핵심은 경쟁이 아니라 창조에 있다며 제로섬에 갇힌 레드오션을 떠나 블루오션을 찾으라고 주창했던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르네 마보안. ‘비욘드 디스럽션’이란 제목대로 파괴를 넘어선 새로운 창조(비파괴적 창조)에 혁신의 길이 있다는 비전을 담았다.
저자들은 뉴욕의 택시업계를 무너뜨린 우버나 미국의 서점·소매유통을 말 그대로 파괴한 아마존 등 전형적인 ‘파괴적 혁신’의 사례와 달리 3M의 포스트잇, 화이자의 비아그라, 액션캠 고프로 등 큰 성공을 이루면서도 기존의 사업 영역을 무너뜨리지 않는 사례들에 주목하고 그게 가능했던 조건을 탐구한다.
이들은 순진하게 ‘파괴하지 않는 착한 창조’만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파괴하는 창조와 혁신이 사실은 얼마나 드물고 성공하기 어려운지를 얘기한다.
때로는 파괴적인 혁신이 피할 수 없거나 꼭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갈수록 경쟁은 심해지고, 성공은 어려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실에서 어떤 혁신이 더 실현 가능하고 의미가 있겠는지 차분히 설득하는 편에 가깝다. 사례 나열에 그치지 않고, 비파괴적 창조를 위해 어떤 고려가 필요하며 방법론은 무엇인지도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이승녕 기자 lee.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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