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역지사지의 마음(MD칼럼)

2023. 7.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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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또 기타 레슨 중에 박자를 틀렸다. 기타 선생님은 실소를 터트렸다. 최근 몇 주간 선생님으로부터 박자 감각, 리듬 감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동안 박치라는 말 들어본 적 없어요?”

세상에 박치라니. ‘슈퍼스타 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할 성격은 아니지만, 어쩌다 노래방 한번 가면 노래 좀 한다는 소리는 들어온 사람이다. 그런데 박치라는 말이 이렇게 자존심이 상할 수가 없다.

<마흔엔 튜닝>을 쓴 지도 벌써 4개월이 됐다. 기타를 배운 지는 9개월 정도 됐다. 이쯤이면 짜잔, 하고 잘 치는 얘기를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 곡 제대로 연주하기도 요원하다.

짠짠짠짠. 입으로 계속 박자를 센다. 오른손은 피크를 쥔 채 스트로크를 반복한다. 기본적인 스트로크인데도 자꾸만 안 쳐야 하는 데서 치고 쳐야 하는 데서 못 친다. 그러니 리듬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제멋대로 흘러가는 박자와 리듬을 계속 두고 볼 수 없는 선생님은 메트로놈을 켠다. 메트로놈을 켜면 나는 더 긴장해 자세까지 굳어진다.

최근 교사인 친구를 만났다. 내 하소연을 한참 들어주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클라이밍과 스윙댄스를 배워봤는데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혀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가지 못하더라고.

친구와 나는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나온 데다, 성향 또한 매우 비슷하다. 뭔가를 ‘적당히’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지 ‘죽도록’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친구가 이전과 달리 정말 열심히 했지만, 잘 안 되더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친구는 그렇게 클라이밍과 스윙댄스에서 연달아 좌절하고 나니, 열심히 공부해도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학생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갑자기 나는 못된 마음이 발동했다. 기타 선생님이 나보다 못하는 걸 찾아서 시켜보고 싶어졌다. 그럼 지금 재능은 없지만 잘하고 싶고,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는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역지사지. 물론 선생님이 내가 시키는 걸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상상은 자유니까.

맞춤법, 띄어쓰기? 아니다. 선생님은 레슨 시간을 조정하거나 나의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톡으로 답장을 할 때도 맞춤법 띄어쓰기를 거의 틀리지 않는다. 오타도 잘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글쓰기? 역시 아닌 것 같다. 일단 나는 내 글에 그리 자신 있지 않다. 마흔이 넘어서 내가 뭘 잘하는지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줄이야. 이런 고민은 사춘기 때나 하는 줄 알았다.

그럼 선생님 입장에서 역지사지 해보기로 한다. 기타 선생님은 나를 가르치면서 얼마나 답답할까? 지긋지긋하게 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내가 문제인지, 선생님 자신이 문제인지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단순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종종 고뇌에 빠지는 선생님을 목격한다.

매일 좋은 소리를 듣던 그의 귀도 일주일에 한 번 나를 만나 고문당하고 있다. 툭하면 허리가 아프다고(핑계가 아니다. 실제로 허리가 안 좋다) 기타를 잡은 채로 반쯤 늘어지는 제자에게, 기타 그렇게 치는 거 아니라고 자세 똑바로 하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건 또 얼마나 짜증 날까.

돌이켜보니 학창 시절 나는 착한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타를 배우면서 이렇게 또 하나 깨닫는다. 내 허물을 하나씩 깨달으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이나마 넓어졌다. 물론 내가 다 안다는 식의 오만과 아집은 계속 경계해야겠지만.

그런데 정작 기타는? 대체 언제쯤 한 곡을 끝까지, 제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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