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빠진 연봉…스타트업 개발자 모시기는 ‘옛말’
인건비 부담에 외국 개발자 채용 움직임도
(시사저널=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미국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을 빗대어 생긴 국내 신조어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는 코로나19 기간 메신저·쇼핑·금융·배달 등 소비자 일상과 밀접한 사업을 주도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단기 속성 교육을 내건 코딩학원이 전국에 우후죽순 생기며 초보 개발자도 대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는 물론 거리마다 '3개월 코딩 배우고 문과생도 개발자 취업' '억대 연봉 보장' 등 학원 광고물이 넘쳐났다.
대·중소·스타트업까지 개발자 채용 축소
올해부터 이 개발자 채용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빅테크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2021년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1100여 명의 개발자를 채용했지만, 지난해에는 절반 이하로 채용 인원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올 상반기 전 직군에 대한 공개채용을 진행했고, 하반기에는 별도 공개채용 대신 필요시 수시채용으로 인원을 늘릴 예정이다. 이는 과거 한성숙 네이버 전 대표가 언급한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 전 대표는 2020년 국회 강연에서 "(한국은) 전공에서 나오는 개발자들의 수가 굉장히 한정적이고 적다"며 "구글이나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의 개발자 수와 우리 개발자 수를 비교하면 '우리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580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 대비 2.4%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1조6871억원으로 전년 대비 18%나 늘었다. 인건비 부담이 실적에 반영된 셈이다. 카카오는 올 초 진행하고 있던 경력 개발자 수시채용에서 남은 전형들을 중단하고 공고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서류전형과 코딩 테스트를 통과하고 면접 전형을 준비하고 있던 지원자들은 모두 탈락을 통보받았다.
스타트업들은 대기업보다도 보수적으로 개발자를 채용하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스타트업들의 투자금 유치가 어려워졌고, 인건비 부담은 곧 전체적인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민관 협력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2023년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 동향'에 따르면 상반기 누적 투자 건수는 584건, 누적 투자금은 약 2조322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투자 건수는 41.5%, 투자금액은 68.3%나 감소한 규모다.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일하는 A씨는 "대기업만 연봉이 좋은 편이지 중소기업은 개발자라고 해서 돈을 더 주거나 하지 않는다"며 "IT업계 대호황은 코로나 덕에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A씨는 이어 "미국 IT 기업에도 칼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국내시장도 개발자들을 챙기기 어려운 상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구글과 메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또 다른 개발자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했는데 개발자들의 대기업 평균 연봉은 6000만원, 중소기업은 3000만원인 곳도 많다"며 "회사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는 연봉 인상률이 코로나 때보다 낮다"고 말했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이 최근 개발자 경력별 평균 연봉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발자 평균 연봉은 6595만원이었다. 경력별로는 신입 개발자보다 경력직의 연봉 상승 폭이 컸다. 즉 경기 불확실성으로 대다수 기업이 채용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신입 개발자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평균 연봉이 가장 크게 상승한 연차는 6~8년 차 개발자로, 전년 대비 9.01% 증가한 6303만원이었다. 12~14년 차 개발자는 1분기 평균 연봉이 8.84% 증가한 7806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0~2년 차 신입 개발자의 평균 연봉은 4073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3% 상승에 그쳤다.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최근 투자 유치가 어려워졌고, 적자인 곳이 대부분이다. 흑자를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은 인건비 부담에 개발자 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중단한 곳도 많다. 스타트업들의 급여 지출액도 1년 사이 크게 늘어났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기업인 당근마켓의 지난해 연결 기준 급여 지출액은 324억원으로 1년 전(130억원)보다 급증했다. 같은 기간 두나무는 1317억원에서 1481억원, 무신사는 491억원에서 975억원, 버킷플레이스는 189억원에서 366억원, 비바리퍼블리카는 795억원에서 1572억원으로 늘어났다.
초보 개발자 대신 경력자 선호
중기부가 최근 SW 인력 채용과 관련해 기업체 187개사, 취업준비생 7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중소기업의 75.4%는 SW 전문인력 채용 및 유지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인력난의 주요 원인으로는 '대기업과의 연봉 격차로 인한 기업군 간 경쟁 심화'가 68.4%였고, 중급 이상 개발자 인력 부족은 64.2%로 그 뒤를 이었다. 일부 기업은 외국인 경력직 개발자 채용에 적극 나서기도 한다. 중기부 조사를 보면 현재 외국 국적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는 중소기업은 27.3%였지만, 향후 채용 의사를 피력한 기업은 54.5%로 나타났다. 국내 전문인력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저렴해서다. 네카라쿠배당토에 해당하는 기업들도 "외국 국적 개발자도 적극 채용 중"이라고 밝혔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숙련 개발자가 필수"라며 "국비 지원으로 취업한 개발자들은 업무 수행에 한계가 있어 경력이 있는 개발자 위주로 채용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자들은 연봉이 높은데, 인건비가 늘어날수록 회사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급격히 (IT·개발자) 산업이 성장하면서 유동성이 많이 풀려 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현재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형태의 구조를 갖게 되면 기업이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이 같은 현상은 경기 불황이 이어짐에 따라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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