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핵개발 저지” 과학자·스파이들의 첩보작전

김수미 2023. 7. 2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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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시작 뒤 獨 핵 개발팀 가동
연합국 ‘알소스 부대’ 급파 첩보활동
스파이 영화처럼 서술 ‘흥미진진’
연구 열망·고뇌 등 내면 묘사 세밀

원자 스파이/샘 킨/이충호 옮김/해나무/2만6500원

1930년대 과학계는 원자핵에 있는 제3의 입자를 규명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동안 원자는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음전하를 띤 전자로만 이뤄졌다고 믿어 왔으나 중성자의 존재가 발견되면서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 간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어머니 마리 퀴리에 이어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은 이렌 퀴리, ‘불확정성 원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오펜하이머 등 모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전설적인 과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연구 열정은 곧 무시무시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샘 킨의 신간 ‘원자 스파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막기 위한 과학자와 스파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역사는 핵폭탄 개발에 성공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조명해 왔지만, ‘원자 스파이’는 미국보다 나치가 먼저 핵개발에 성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분투에 초점을 맞췄다.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1935년 연구소에서 일하는 이렌 퀴리와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2주 후 독일 군부는 베를린에서 비밀회의를 열고 오토 한, 쿠르트 디프너 등 독일 최고의 물리학자와 화학자 8명을 불렀다. 당시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나치는 과학자들에게 병역 면제를 거의 해 주지 않았는데 이들에게만 예외를 뒀다. 얼마 후 하이젠베르크까지 가세하며 독일의 핵개발 팀 ‘우라늄 클럽’이 본격 가동됐다.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대부분 과학자들은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서 앞서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독일 화학자와 물리학자들이 핵분열을 먼저 발견한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시설을 갖춰 원자폭탄 제조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원재료를 가공 처리할 능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전쟁을 시작하려는 악마 같은 의지가 있었다. 실제로 우라늄 클럽은 맨해튼 계획보다 2년 먼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 과학자들은 미친듯이 원자폭탄 개발에 매진했고, 미국과 영국 정보 당국은 스파이를 유럽 전역에 급파해 핵개발 저지를 위한 첩보 작전을 펼쳤다.
샘 킨/이충호 옮김/해나무/2만6500원
책은 연합국의 과학자와 군인 등으로 구성된 ‘알소스 부대’의 스파이 활동을 추적하면서 과학이 처음으로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서게 된 과정을 보여 준다.
스파이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특히 미국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의 모 버그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10여개 언어를 구사해 ‘버그 교수’라고 불리던 괴짜였다.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면서 컬럼비아대 법대를 다니고 뉴욕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했다. 그러나 아들이 야구보다 국가에 헌신하길 바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 버그는 알소스 부대에 들어가 독일 최고의 핵과학자인 하이젠베르크 암살 명령을 받는다.
전직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에 10여개 언어를 구사하는 모 버그는 미국 최초의 원자 스파이가 됐다. 해나무 제공
유럽의 과학자들은 동료였던 독일 과학자들이 핵폭탄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유에 나서거나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잡기 위한 미끼로 이용되고,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렌 퀴리와 졸리오 부부는 중수(中水)라는 감속재가 핵분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첩보를 받고 나치를 피해 도망다니면서도 중수가 나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여성교도소에 몸을 숨겼다. 이렌은 방사능에 너무 많이 노출돼 병약해진 몸으로 어머니 마리 퀴리에게 물려받은 1g의 라듐이 들어있는 60㎏짜리 납덩이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가 중성자 증배에 성공하고 소규모이긴 하지만 실제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자, 다급해진 영국은 중수가 있는 노르웨이의 베모르크 발전소 폭파 작전을 펼친다. 두 번의 작전 끝에 폭격에 성공했지만 나치는 수리 후 공장을 재가동해 더 많은 중수를 생산하고 독일로 옮기려고 했다. 결국 연합군은 무고한 노르웨이 시민이 타고 있음에도 중수를 실은 배를 폭파시켜버렸다.
1939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열린 물리학 캠프에 참석한 세계적인 과학자들.
맨해튼 계획의 성공 뒤에는 이처럼 나치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과학자와 스파이들의 처절하고 필사적인 첩보 작전이 있었다.

저자는 마치 한 편의 스파이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 간다. 연구에 대한 열망과 전쟁의 공포 앞에서 갈등하고 하루 아침에 친구에서 적이 된 동료와 경쟁해야 하는 과학자, 위대하지만 위험한 적국의 핵과학자를 제거해야 하는 스파이의 고뇌 등 인물들의 내면 역시 세밀하게 묘사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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