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정약용과 강진 유배지
가족사랑 담은 ‘하피첩’도 탄생
여름 휴가철이면 많은 사람이 여행에 나선다. 필자는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묻어 나오는 여행지로, 남도 답사 1번지라 불리는 전남 강진을 추천하곤 한다. 정약용이 유배길에 오른 후, 유배의 시간을 실학의 완성이라는 성과로 승화시킨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진은 정약용에게 인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고, 정약용은 유배의 시간을 실학 완성의 기회로 만들어 갔다. 초당이 위치한 만덕산의 얕은 야산에서는 차가 많이 생산되어, 호를 ‘다산(茶山)’이라 했다. 정약용은 초당에 인공 폭포와 연못을 만들고 채소도 심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 초당의 바위 절벽에는 ‘정석(丁石)’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자신의 공간임을 확인해 두었다. 앞마당의 바위는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다조(茶?: 차 부뚜막)로 사용했다. 네모진 연못을 파고 그 안에 둥근 섬과 작은 폭포를 만들어 풍취를 더했다. 초당 좌우에는 동암과 서암을 지었는데, 정약용은 주로 동암에 기거하면서, 바다를 보면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가족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편지로 이어 나갔다. 1810년의 어느 날, 아내 풍산 홍씨는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폭을 남편에게 보내왔다. 35년의 세월이 흘러 다홍색의 짙은 색깔도 빛이 바래 황색으로 변했다.
정약용은 ‘하피첩(霞?帖)에 제(題)함’이라는 글을 썼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적에 병이 든 아내가 헌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적에 가져온 훈염(??: 시집갈 때 입는 활옷)으로서, 붉은빛이 담황색으로 바래서 서첩으로 쓰기에 알맞았다. 이를 재단, 조그만 첩을 만들어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전해 준다. 다음날에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부모를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곧 ‘다홍치마’의 전용된 말이다”라고 하피첩을 만든 사연을 기록하고 있다.
정약용은 옛적의 곱던 아내를 떠올리며 그 치마폭에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것이다. 하피첩에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3년 후인 1813년 다시 이 치마폭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시집가는 외동딸을 위해 매화나무에 멧새 두 마리를 그려 넣고 시 한 수를 보탰다. 이 매조도(梅鳥圖)에는, “사뿐사뿐 새가 날아와/우리 뜨락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서 쉬네/… 꽃도 이제 활짝 피었으니/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라는 시를 썼다. 주렁주렁 열린 매실처럼 자식 많이 낳으며 번창한 가정을 꾸리라는 바람을 담았다.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명저를 담은 ‘여유당전서’ 500여책을 완성하였다. 정약용이 실학을 완성한 최고의 학자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에는 유배라는 극한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는 열정과 시간 활용이 큰 몫을 했다. 정약용을 기억하며 강진 여행에 나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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