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나의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내 글에 타인이 엮일 가능성에
‘자기 검열’ 거치며 글 써내려가
때론 비밀을 ‘언덕’에 묻기도 해
검사받는 일기장에 내 솔직한 마음을 써 내릴 순 없었다. 학교에 제출하는 숙제용 일기와 별도로 혼자 보는 비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숙제용 일기장엔 개성은 없지만 선생님이 좋아할 만한, 이 나라 꿈나무 역할에 부합하는 형식적인 글들을 썼다. 반면 비밀 일기장에는 온갖 진실의 폭탄을 아낌없이 투하했다. 감추고 싶은 실수들, 나의 열등감과 피해의식, 누군가를 미워하는 뾰족한 마음…. 그 글을 누가 볼까 두려웠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일기장을 자물쇠가 있는 서랍 깊은 곳에 쑤셔 넣곤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여러 질문이 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혜진처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 좋은가. 그러지 못한 명은의 글은 그래서 비겁한가. 어떤 글쓰기 방법이 좋은가. 얼핏 보면 혜진의 솔직한 글쓰기 방식이 더 멋있어 보이긴 한다. 실제로 많은 글쓰기 관련 책이나 강연에서 강조되는 게 ‘솔직함’이다. ‘진솔한 고백이 독자를 감동시킨다’, ‘자기 내면을 드러내는 게 용기다’ 같은. 물론, 이 말의 진짜 숨은 뜻은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남용되면서 그 본래의 뜻이 퇴색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밀의 언덕’의 미덕은 바로 여기, 솔직함이 용기이고 진리라는 빤한 결론에 이르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
고백하자면, 이 지면에 내 경험을 풀어낼 때 나는 여러 번 ‘자기 검열’을 한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서? 없지 않다. 너무 사소해서 시시해 보이지 않을까란 우려 때문에? 역시 있다. 산문식 글을 쓰기엔 아직 경험과 공부가 덜 쌓였다는 의심도 크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그 경험에 얽혀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겪는 결정적인 깨달음은 대개 관계를 통해 오기에 타인이 글에 엮일 확률이 큰데 그랬을 때, 필터 없는 내 글로 인해 그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어떤 마음은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나를 객관화하는 계기가 되지만, 내 안에서 충분히 여물지 않은 어떤 상처는 털어놓음으로써 도리어 덧나기도 한다. 자기 안의 진실을 감당해 내는 능력도 사람마다 다른 만큼, 글 쓰는 방식도 화해 방식도 같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대상을 포기하고 비밀을 언덕에 묻기로 한 명은의 선택을 지지한다. 그것이 최선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언어가 지니는 무게’를 알게 된 자의 선택이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명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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