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스웨덴서 ‘저출산’ 답을 찾다
뮈르달 부부 ‘강력한 분배’ 해법 제시
‘아이는 사회가 낳고 기른다’는 전제
출산여성의 노동시간 단축 등 주장
국가정책 채택… 출산율 대반전 이뤄
89년 만에 완역 출간… 인구 해법 기대
인구 위기/알바 뮈르달·군나르 뮈르달/홍재웅·최정애 옮김/문예출판사/2만4000원
인구문제를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의 시각은 안이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작금의 한국처럼. 신맬서스주의자들은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인구 억제 해법을 예찬하거나 자발적 출생 제한을 권장했고, 보수주의자들은 출산하지 않는 건 가족 윤리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피임금지법을 도입하고 낙태를 규제하는 등 도덕적이고 가부장적으로 접근하며 희희낙락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아예 문제의식 자체가 거의 없었다.
“출산은 여성에게 불편함과 위험을 동반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 및 다른 생활의 중단을 가져온다. 일시적이지만 만족스러운 성생활의 제약을 가져오고, 결혼 생활의 신뢰 관계에 위험을 불러일으킨다. 또 가정의 비용 지출 증가를 유발하는 동시에 미래 보육에 대한 모든 걱정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출산장려 운동이나 결혼장려금, 출산 축하금, 부분적인 세제 혜택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뮈르달 부부는 한두 가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경제적 분배의 소규모 조정 정도론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아이들을 낳지 않으려는 복잡한 경제사회적, 심리적 동기를 없애는 방법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봤다.
“자녀를 가짐으로써 드는 비용을 줄여야만 한다. 이는 가족의 지속적인 생활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자녀가 방해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자녀가 방해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간단히 말해서 가족제도의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조직적으로 변경해 그에 따른 구조와 의미를 바꿔야 한다.”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먼저 가정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하되, 출산과 양육의 비용 대부분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기혼 취업 여성들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해 생산 및 노동시장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아울러 보육에 필요한 비용과 부담이 많아지면 출산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육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사회정책을 통해서 보육 부담의 재분배 역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매우 급진적인 분배정책 및 사회정책을 변화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 변화는 기술의 가능성 안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된 급진적인 생산정책의 변화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뮈르달 부부는 1934년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스웨덴 인구 위기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인구 위기의 본질과 대안의 방향성을 제시한 책 ‘인구 위기’를 펴냈다. 책은 큰 화제가 되면서 1930년대 스웨덴에서 인구 위기 논쟁의 지형을 바꿨고, 결정적으로 집권당인 사민당에 의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스웨덴은 1935년 합계출산율이 1.74명이었지만, 1950년 2.43명으로 크게 오르며 출산율 대반전을 이뤄냈다. 뮈르달 부부의 그 책이 최근 89년 만에 국내에서 완역 출간됐다.
국내 독자들의 경우 1930년대 스웨덴의 정치 지형과 사회민주주의적 이념 스펙트럼,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 뮈르달 부부에 대한 편견 등으로 다소 거리감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부의 문제의식과 본질적인 방향성은 충분히 경청하고 검토할 만하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 중이고, “저출생 현상이 지속되면 인구감소로 인해 소멸하는 제1호 국가가 될 것”(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이라는 경고까지 듣는 현실 아닌가. 선구적이고 대담하고 실효적이다. 한 세기 전에 쓰인 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이데올로기 정치 논의의 중심이 될 것이다. 나는 다음 세대에서는 아마도 인구문제가 사회정치적 방향의 전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도 믿는다. 적어도 인구문제는 모든 문제의 주요 의제로 어쩔 수 없이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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