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 직원 괘씸하니 대기발령 시켜요"... 이렇게 요구한 입주자대표도 배상 부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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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직원들이 임금 미지급을 항의하자, 입주자대표가 "괘씸하다"며 관리업체에 직원들의 대기발령을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입주자대표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업체는 실제 이 직원들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처럼 입주자대표가 아파트 관리업체의 부당인사에 관여했다면, 입주자대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에 법원은 관리업체의 체불임금 지급 의무는 물론, 입주자대표의 부당행위 가담 책임도 모두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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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대표 "대기발령 시켜달라" 업체에 요구
법원, 부당인사 과정 입주자대표 책임도 인정
아파트 관리직원들이 임금 미지급을 항의하자, 입주자대표가 "괘씸하다"며 관리업체에 직원들의 대기발령을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입주자대표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업체는 실제 이 직원들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처럼 입주자대표가 아파트 관리업체의 부당인사에 관여했다면, 입주자대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아파트 고용계약에서 빈발하는 불법행위 관련 소송에서, 입주자 책임을 인정한 매우 드문 판결이다.
2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72단독 류일건 판사는 아파트 안내 직원 A씨와 B씨가 소속 업체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C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관리업체는 A·B씨에게 각 1,480만 원과 1,500만 원을 퇴직금과 위자료로 지급하되, 이중 각각 400만 원은 C씨와 공동으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입주자대표회의 측 공동 책임을 인정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C씨가 관리업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서 불이익을 조장했다고 볼 수 있다"며 "경험칙상(일반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A·B씨가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을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청 진정 넣자 '대기발령' 보복
A씨와 B씨는 2011년부터 서울 강남구의 한 고급아파트의 로비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일했다. 이들은 매주 평일엔 7시간, 격주마다 토요일에 6시간씩 일했다. 평일 휴게시간은 1시간이었고, 토요일은 휴게시간은 따로 없었다. 아파트 주민들과 위탁계약을 체결한 관리업체는 두 사람에게 매달 각 160만~170만 원대의 기본급을 지급했다.
A씨 등은 "평일 휴게시간에도 업무를 처리하느라 자유롭게 쉴 수 없다"며 2020년 2월부터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휴게시간 근로가 인정될 경우 토요일 근무가 '연장근로'에 해당돼, 추가 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입주자대표회의의 반대로 이런 요청이 묵살되자 A씨 등은 2020년 8월 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을 넣었다.
A씨 등의 진정 사실이 알려지자 입주민들의 보복이 시작됐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C씨는 관리업체에 소속 업체에 "8월 말까지 두 사람을 대기발령 내거나 전환배치 시키라"며 강력히 요구했다. 실제로 관리업체 실장은 A씨와 B씨에게 "회장(C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대기발령을 통보했고, 두 사람은 이튿날 퇴직 후 임금 체불과 보복 행위 등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괘씸죄 차원의 보복" 인정
이번에 법원은 관리업체의 체불임금 지급 의무는 물론, 입주자대표의 부당행위 가담 책임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와 B씨는 안내방송, 민원 해결, 배달물 수거, 영수증 및 등기우편 전달, 주차 민원 확인 등 각종 부가업무를 수행했다"며 "이런 일은 안내데스크를 이탈할 수 있는 휴게시간에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휴게시간에 일을 했으니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C씨가 요구한 불이익은 '괘씸죄' 차원에서 보복적 조치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근로자들의 기본적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민사상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청은 A씨 등의 진정에 따라 이 사건 인사 조치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A씨와 B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그간 입주자대표가 아파트 관리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업무 환경이나 인사 조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럼에도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아니라서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판결이 확정되면 사실상 '원청'의 위치에 있는 이들도 불법행위의 교사자 내지 방조자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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