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때 북미항공우주방위부 뚫었다... 전설의 해커 미트닉 사망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해커로 이름을 날린 케빈 미트닉이 세상을 떠났다.
미트닉이 근무했던 보안 업체 노비포(KnowBe4)는 20일(현지 시각) “미트닉이 지난 16일 지병인 암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1963년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란 미트닉은 10대 시절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컴퓨터를 해킹했다. 인터넷과 컴퓨터 네트워크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때였다. 20대에는 모토로라와 노키아,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유명 IT(정보기술) 기업들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해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 해커로서 악명을 날리자 미 법무부는 당시 그를 “컴퓨터 테러리스트”라는 신조어로 부를 정도였다. 1995년 당국에 체포돼 5년의 수감 생활을 했다. 체포 당시 그의 컴퓨터에서는 해킹으로 얻은 2만개의 신용카드 번호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개인 정보도 포함돼 있었다. 다만 훔친 정보를 사용한 증거는 없었다. 석방 후에는 약 3년간 정부의 허가 없이 인터넷·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되는 조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오해받는 천재, 개척자’라고 생각했다. 2000년 미 상원에 출석해 해킹 동기에 대해 “지식 탐구, 지적 도전, 스릴 그리고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고 말한 바 있다.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는 “체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이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상대의 왕국을 약탈하거나 재산을 탈취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의 인생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트랙 다운’이 2000년 개봉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해킹 기술보다는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실력에 비해 명성이 과대 포장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스템에 침입하는 것보다는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특정인을 사칭해 정보를 건네받는 것이 그의 주된 수법이었다. 미트닉은 2003년 자신의 이름을 건 미트닉 시큐리티 컨설팅 회사를 세우며 보안 컨설턴트이자 ‘화이트 해커’로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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