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들어주는 영험한 컨테이너 박스?[책과 삶]
탱크
김희재 지음 | 한겨레출판
280쪽 | 1만5000원
탱크에 불이 붙는다. 이 탱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전투차량이 아니다. 공터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다. 누구나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물탱크, 에어탱크처럼 무언가를 담는다는 의미를 사용해 이곳을 ‘잠재의식 탱크’, 줄여서 탱크라고 부른다. 미국인 루벤이 처음 만들었다.
미심쩍은 마음으로 탱크 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나름대로 변화와 기적을 경험한다. 탱크는 유명해진다. 루벤이 탱크를 통해 부귀영화를 누린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언론을 피해다니며, 착실히 직장에 다닌다. 몇 군데 더 탱크를 만들었을 뿐이다. 탱크에는 신도, 사제도, 교리도 없다. 사람들은 ‘믿고 기도하면 결국 가장 좋은 것이 내게 온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한국에도 탱크가 생긴다.
간절한 바람을 가진 이들이 탱크로 향한다. 도선, 둡둡, 양우 등이다. 도선은 끝내주는 시나리오를 써서 성공한 뒤 캐나다에 있는 딸을 만나고 싶다. 둡둡은 더 안락한 보금자리를 갖는 꿈, 부모님 앞에서 동성 연인을 당당히 소개하고 인정받는 꿈을 가졌다. 양우는 또 다른 이유로 탱크를 찾는다. 탱크가 있는 야산에 불이 붙은 날, 세 사람은 탱크에서 만난다. 사건이 벌어지고, 화재로 인해 탱크가 바깥세상에 알려진다.
사람들은 점점 신을 믿지 않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바란다. 무언가 믿고 실천한다. 소설은 꿈꾸고 믿는 인간들을 이야기한다. 탱크라는 낯선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에도 소설 속 세계가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를 전공하고 10년간 믹싱 엔지니어로 일해온 김희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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