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서 남을 구하는 ‘작은 친절’[그림책]
비틀비틀 아저씨
사사키 마키 글·그림, 황진희 옮김
미래아이 | 32쪽 | 1만3000원
콧수염이 난 아저씨가 먼 곳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기 위해 집을 나선다. 하얀 양복, 노란 넥타이, 중절모로 멋지게 차려입었지만 집을 나서면서부터 어쩐지 운이 없다. 계단에서 공을 밟고 미끄러지지 않나, 2층에서 털다가 떨어진 카펫에 맞지 않나, 활달한 강아지 때문에 봉변을 당하지 않나….
다행히도 다치진 않았지만 눈에 띄는 건 차츰 더러워지는 아저씨의 옷차림이다. 무척이나 아끼던 모자가 자동차 바퀴에 깔려 납작해졌고, 하얀 양복도 어느덧 거무튀튀해졌다. 아저씨의 고난은 차츰 초현실의 수준으로까지 넘어간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돼지몰이 축제’에 마주치는 바람에 돼지 수십마리와 아이들에게 깔리기까지 한다.
아저씨는 가까스로 우체통에 도착해 편지를 넣는다. 그사이 편지는 엉망진창으로 구겨졌지만 일단 목적은 달성했다. 홀가분한 마음에 가까운 공원으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산다. 벤치에 앉아서 먹으려고 이동하던 순간, 아이스크림이 땅에 툭 떨어진다. 종일 이어지던 불운을 묵묵히 참아내던 아저씨도 이번에는 무너진다. 평소 같으면 별일 아니겠지만, 그날의 아이스크림은 불운의 화룡점정이었다. 중년의 신사는 공원 벤치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살면서 누구나 ‘불운하다’고 느끼는 날이 있다. 다치거나 죽을 정도로 큰일은 아니지만, 소소한 불운이 쌓여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저 하루의 불운일 뿐이라고,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멘털이 센’ 사람일 듯하다. 대부분은 주위의 누군가에게 버럭 신경질을 내거나, 그림책 속 아저씨처럼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주 작은 친절이 한 사람을 구한다. 아저씨도 그렇다. 울면서 웅크린 아저씨에게 한 소녀가 다가와 무릎을 톡톡 친다. 아이는 아저씨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건넨다. 아저씨는 기운을 차리고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 인사한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고 더럽혀진 옷이 다시 깨끗해질 리는 없지만, 적어도 아저씨는 오늘의 불운을 잊고 내일의 행운을 기대할 작은 마음을 품을 것이다. 당신의 삶이 불운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다면, 먼저 누군가에게 아이스크림 같은 친절을 건네보자. 언젠가 친절은 돌아와 당신을 구할지도 모른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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