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학비 6천만원 내면 빈털터리…“내가 왜 굳이 그 나라에서”
◆ 中근무 포비아 ◆
A씨는 “글로벌 지역본부 회의를 할 때마다 가장 실적이 부진한 중국 법인 주재원들은 왠지 죄인이 된 느낌”이라며 “한국에서 동료들이 요즘 중국 관련 인력들은 승진하기 힘드니 빨리 다른 분야로 보직을 옮기라고 조언한다”고 하소연했다.
현지 근무때는 인맥 네트워킹을 하고 귀국 후엔 사내에서 엘리트 코스가 보장됐던 중국 주재원 위상은 급전직하했다.
중국 주재원들은 조기 귀국을 요구하지만 막상 국내에서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인사 가점까지 주면서 중국행을 독려하고 있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국내 기업인들이 중국행을 기피하게 된 것은 물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갈등에 따른 한국 기업들의 사업 부진에 이어 중국 정부가 제정한 반(反)간첩법까지 주재원들을 옥죄고 있다. 개정된 반간첩법(방첩법)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되면서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 주재원들은 신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중국 본토내 기술개발 인력 중 3분의 1을 본토 밖으로 재배치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코로나19 기간 치솟은 물가도 한 원인이다. 특히 중국 주재원들이 꼽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자녀 교육비다. 일부 대기업과 은행권 등을 제외하면 교육비 제한이 있는데 중국 국제학교 학비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기 때문이다. 연간 30만위안(5400만원)~35만위안(6300만원)이 수준인 국제학교 학비는 큰 부담이다.
중국 국제학교에서 근무하겠다는 외국인 교사가 줄어들다 보니 연봉이 계속 치솟고 다시 ‘학비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자녀를 중국 현지 학교에 보내는 대안도 있지만 이럴 경우 중국 공산당 사상교육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자녀들을 미국계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는 한 주재원은 “높은 국제학교 학비에 비해 회사의 교육비 지원은 턱없이 부족해 결국 빚을 내서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식료품 물가도 부담이다. 전반적인 식료품 가격은 아직 한국보다 저렴한 수준이지만 중국 식재료에 대한 불신이 아직 존재하는 만큼 상당수 한국 주재원들은 한인마트에서 한국산 물품을 주로 구매한다. 이럴 경우 한국 소비자 가격보다 최소 20~30% 높은 가격을 줘야한다. 여기에 더해 인건비도 빠르게 증가하면서 가사도우미, 통역 보조원 등을 고용하는 주재원도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원활한 업무를 위한 행정 시스템 지원이 열악하다는 점도 중국행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계기로 한층 강화된 중국의 통제·감시 시스템도 중국을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중국의 무관용 제로코로나 정책은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크게 확산시켰다. 중국 주재원 B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외국인 대상으로 비자 발급 절차가 더 복잡하고 느려진 게 사실”이라면서 “이 때문에 제때 비자가 연장되지 않아 추방당하는 교민들도 더러 생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중국 기피 현상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 시장 자체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 시장이 위축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중국 시장에 대한 중요도가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겠다고 신고한 건수가 2021년 890건에서 지난해 674건으로 24.2% 줄었다. 투자금액도 67억3000만 달러에서 65억9000만달러로 감소했다.
이 같은 흐름은 취업의 전 단계인 대학 학과 선택에도 반영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어학과 지원자와 입학자 수는 매년 줄어드는 실정이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국내 전체 대학의 중국어학과에 2018년에는 2만2149명이 지원해 4014명이 입학했다. 반면 지난해에는 1만7725명이 지원해 2727명이 입학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대학마다 운영하고 있는 중어중문학과 교양 강의도 매년 폐강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숭실대는 올해 1학기에 중국어 관련 교양 과목 4개가, 고려대는 지난해 2학기에 13개가 폐강됐다.
기업들은 아직 중국에 대한 무역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경제 구조 상황에서 이 같은 악순환을 타파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의 현지 사무소 규모를 축소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이 같은 인력 감축은 남은 주재원들의 업무 부담 가중으로 이어져 더욱 현지 근무 선호도를 떨어트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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