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근 부사장 "막노동 청년 품어준 강원학사…저도 누군가에 도움 돼야죠"

최예린 2023. 7. 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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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어요. 여름방학에는 지금 회현역이 들어선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벽돌과 시멘트를 날랐습니다. 겨울방학엔 울진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했어요. 돈이 부족한 제가 대학을 졸업한 건 살 곳을 해결해준 '강원학사' 덕분이었습니다. 서울로 유학 온 강원도 출신 대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기숙사인데, 적은 돈을 내고도 밥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었죠."

지 부사장은 "어린 시절 고향 어르신들은 당신들도 어려운 처지인데 '책 사거라' '배곯지 말거라'하며 500원, 1000원을 꺼내 줬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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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실천하는 지형근 삼성물산 부사장
건설현장서 학비 벌던 고학생
살 곳 해결해준 덕에 대학 졸업
주변 "습관처럼 기부하는 사람"
강원학사·모교에도 1억 넘게 기부
15명 대가족 어려운 살림에도
이웃 돕던 할머니 이제야 이해

“대학 학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어요. 여름방학에는 지금 회현역이 들어선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벽돌과 시멘트를 날랐습니다. 겨울방학엔 울진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했어요. 돈이 부족한 제가 대학을 졸업한 건 살 곳을 해결해준 ‘강원학사’ 덕분이었습니다. 서울로 유학 온 강원도 출신 대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기숙사인데, 적은 돈을 내고도 밥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었죠.”

지형근 삼성물산 국내사업지원실장(부사장)의 학창 시절 얘기다. 그는 “혼자 잘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고 그만의 기부 철학을 강조했다. 최근 발행된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내 웹진의 ‘어쩌다 인터뷰’ 코너를 통해서다.

그는 사내에서 ‘습관처럼 기부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삼성그룹은 직원들이 사원증을 찍기만 하면 1000원을 기부할 수 있는 ‘나눔 키오스크’를 사옥 곳곳에 설치해놨다. 지 부사장은 출근하는 날이면 하루 열 번 이상 키오스크에 사원증을 찍는다. 1995년 입사한 이후 28년 동안 회사 급여공제 시스템으로도 기부를 지속해오고 있다. 사내에선 그를 보고 따라 기부를 시작한 직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기부가 이어지면서 액수도 커졌다. 2021년엔 1억원 이상 기부해야 가입할 수 있는 고액 기부자 클럽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스클럽’ 회원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봉사정신을 인정받아 대한적십자사에서 금장을 받았다.

지 부사장은 강원 홍천군 내촌면에서 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5명 가족이 좁은 집에 함께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의 할머니는 밥을 지을 때마다 꼭 쌀 한 홉을 덜어 작은 절미항아리에 부어두곤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우리 가족이 더 배불리 먹을 수 있는데 왜 쌀을 덜어놓으시냐”고 대들기도 했단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의 할머니는 집에 찾아오는 가난한 사람과 한센병 환자에게 항아리 속 쌀을 내줬다. 지 부사장은 “가난해도 남에게 나눠줄 것을 남기는 할머니의 큰 뜻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나고 자란 고향 강원도에 애틋한 마음도 갖고 있다. 지 부사장은 “어린 시절 고향 어르신들은 당신들도 어려운 처지인데 ‘책 사거라’ ‘배곯지 말거라’하며 500원, 1000원을 꺼내 줬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그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을 위해 모교와 강원학사에 기부한 금액만 지금까지 1억원이 넘는다.

기부와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다. 그는 1997년 아이 돌잔치 때 선물 받은 금반지 20개와 금팔찌 3개를 북한 어린이들에게 기부했다. 공교롭게도 한 달 뒤 도둑이 들었다. 그는 “가져갈 게 없어 화가 난 도둑이 집 안 술병을 모두 깨고 가버렸다”며 “기부하지 않았다면 도둑이 귀금속을 몽땅 가져갔을 텐데 천만다행이었다”고 회상했다.

지 부사장은 이제 기부가 습관이 됐다고 한다. 끊을 수가 없는 이유다. 그는 “계속 기부할 기회가 생긴다”며 “회사 보너스를 받아 기부할 돈이 생기거나, 뉴스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건 사고를 보면 기회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본지의 대면 인터뷰 요청은 고사했다.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는 이유를 댔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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