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 기분 나쁘면 아동학대” 악성 민원에… 떠나가는 교사들 [추락한 교권]

이민경 2023. 7.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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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게 너무 힘듭니다. 교육은 '옳고 그름'을 알려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의 '좋고 싫음'이 중요해진 것 같아요."

9년째 수도권 한 학교에서 교사 일을 하는 A씨는 교사가 학생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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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극단 선택’에 들끓는 교단
9년 차 교사 “학생이 무시하는 건 일상”
울산선 “급식 지도 땐 언성 높다고 민원”
“나, ○○아빠인데, 변호사야” 폭언도
최근 1년간 1만2000명 퇴직 역대 최다
양천구 교사 폭행 학생 형사고발 요청

“아이들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게 너무 힘듭니다. 교육은 ‘옳고 그름’을 알려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의 ‘좋고 싫음’이 중요해진 것 같아요.”

9년째 수도권 한 학교에서 교사 일을 하는 A씨는 교사가 학생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A씨는 “모든 게 즐겁고 좋을 수 없는데 일단 아이들의 기분이 나쁘면 안 된다”며 “아이가 잘못하면 훈육을 해야 하는데 훈육당한 아이가 기분이 나쁘면 아동학대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직에 들어선 지 2년이 채 안 된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외벽에 21일 교사를 추모하는 국화꽃과 추모하는 문구를 적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 교사(23)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사들을 중심으로 무너진 교권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직에 들어선 지 2년도 채 안 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위에 대한 동료 교사들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교사·시민들 추모 발길이 사흘째 이어진 21일 서울 서초구 사망 사건 발생 초등학교 부근에서 만난 교사들은 2년 차 교사의 죽음이 추락할 대로 추락한 교권의 현실을 보여 준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에서 왔다는 한 초등교사 최모(46)씨는 “지금도 많은 교사가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며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참고 견뎠던 게 이번 일을 만든 것 같아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외벽과 담벼락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교사를 죽이면 교육도 죽는다’ ‘가르칠 권리가 없는 나라, 피해는 우리 아이들’과 같이 교권 회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울산의 한 초등교사 남모(27)씨는 “학교가 어느샌가 학부모 민원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며 “급식실에서 뛰지 말라고 했더니 언성이 높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와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회의를 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위에 대한 제보도 잇따랐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이날 2020년대 초반 해당 학교에서 근무했거나 현재도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로부터 받은 제보 내용을 추가 공개했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해당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담당했던 한 교사는 민원과 관련된 대부분의 학부모가 법조인이었으며 “나 ○○ 아빠인데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나 변호사야”라고 폭언한 학부모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급 수업 시간에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학생도 있어 고인이 출근길에 환청을 들을 정도라는 제보도 있었다. 학교 차원에서 ‘함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학생·학부모들의 도를 넘은 폭언과 폭행으로 교직을 떠나는 교사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년 3월∼2023년 4월까지 퇴직한 초·중·고 교원은 1만2000여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특히 경력이 5년 미만인 신입 교사들의 퇴직은 2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초등교사들’ 등 교직 이탈을 준비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도 등장했다.
한편 서울 양천구 6학년 초등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건과 관련해 학교 측은 시교육청에 해당 학생을 형사고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 측은 19일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학생의 행동이 교권 침해 사안이라 판단, 전학조치 처분을 내렸다. 서울시교육청은 피해 교사에 대한 치료비, 심리상담, 법률 자문 등과 함께 향후 소송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민경·윤준호·조성민·이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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