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여신에서...인간 여자된 ‘바비’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3. 7. 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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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바비랜드 비교로 풍자
핑크빛 아끼지 않은 세트 탁월
페미니즘 기조에 대해선 엇갈려
영화 ‘바비’의 스틸 컷.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핑크색으로 가득 찬 바비랜드의 풍광이 눈에 익숙해질 무렵, 바비의 발꿈치가 맨땅에 닿으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을 맡고, 마고 로비가 주연을 맡아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바비’는 미국 여성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익숙한 소재인 인형 바비를 실사로 구현해냈다. 바비가 1959년 마텔사가 처음 선보인 뒤 금발 미녀의 전형성을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고 2016년에서야 다양한 체형으로 나오기 시작한 인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백인 미녀 그 자체인 마고 로비의 바비가 어떤 여정을 겪을지 대충은 감이 온다.

그동안 여성 문제를 직시해왔던 거윅 감독의 바비는 일단 완벽한 세트로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전형적인 바비’로 살아가는 마고 로비의 바비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바비들이 대통령·우주비행사·대법관을 맡아 주도적으로 생활하는 바비랜드는 컬러며 생활이며 모든 면에서 현실과는 180도 다른 공간임에 틀림없다. 자연스레 이곳에서 바비의 남자친구 ‘켄’은 그냥 켄일 뿐이다.

행복하게만 지내던 바비가 갑작스레 우울해지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물론 늘 하이힐에 맞춰 올라가 있던 발이 맨땅으로 내려가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결국 바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짜 인간 세계인 로스앤젤레스로 가기로 결정한 순간, 그가 현실에서 마주할 문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스스로 여성들에게 자신을 가꾸고,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줬다고 자부심을 갖던 바비는 자신이 이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존재, 혹은 성희롱당하기 좋은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바비를 따라 현실로 왔던 켄(라이언 고슬링 분)이 가부장제를 학습한 뒤 바비보다 먼저 돌아가 바비랜드를 남성이 지배하는 켄덤(켄+킹덤)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켄에게 굴종할 수 없던 바비는 자신을 현실로 불러낸 인간 글로리아와 함께 바비랜드 수복에 나서고, 현실에서 마텔사의 비서로 일하며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글로리아의 도움으로 질서를 되돌린다.

영화 ‘바비’의 스틸 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어딜 봐도 넘쳐나는 핑크빛 물건들, 뮤지컬 형식으로 펼쳐지는 음악 이상으로 메시지들이 쏟아진다는 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는 부분들이 마냥 매끄럽지만은 않다. “메시지는 영화가 아닌 우체국에 가서 찾으라”던 미하엘 하네케 감독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페미니즘 기조가 전면에 나서는 부분이 과도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다만 거윅 감독은 바비랜드의 수복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며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남긴다. 다시 행복하게 바비랜드에서 살면서 개과천선한 켄과 키스를 나누는 해피 엔딩 같은 것은 없다. 바비는 과오를 인정하는 켄을 보듬고, 자신은 인간으로, 현실 세계에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만들어진 무언가로 남고 싶지 않다. 의미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인형에게나, 여자에게나, 심지어 남자에게도 다를 바 없이 유효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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