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K-리빙쇼어라인
올여름 '극한호우'란 말이 더 실감 난다. 기후위기가 체감, 불편을 넘어 생사를 위협하고 있다. 침수, 산사태 등으로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까지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장마를 끝으로 본격 피서철이 왔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 폭우 쓰레기로 연안도 항구도 비상인데, 아직 작년 힌남노 피해의 복구가 안 된 곳도 있다고 한다. 이어질 폭염과 태풍은 또 어떻게 대비할지 한숨부터 나온다.
작금의 기후재앙은 무지한 인간의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우리의 경우 도시화와 함께 연안 개발도 크게 한몫했다. 지난 반세기 간척, 연안 매립, 항만 공사 등으로 자연해안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해안선의 절반은 콘크리트와 같은 '회색 구조물'을 가진 인공해안이다. 죽음의 호수로 전락했던 시화호 제방, 기네스북의 주인공 새만금 방조제를 한때 자랑했던 우리나라다.
인공해안이 자연재해에 취약함은 자명하다. 연안의 자연생태계는 서식처 제공, 생물다양성 증진, 물질 순환이란 3대 지지서비스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육상 기인 해양오염물질을 정화해주고, 연안침식을 막아주며, 탄소 흡수에도 기여한다. 즉, 자연해안은 지지서비스를 바탕으로 조절서비스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다. 일례로 갯벌 조절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16조원 이상으로 매우 크다.
미국은 일찍이 1970년대 초부터 허리케인에 취약한 체서피크만을 중심으로 인공제방 철거사업을 진행해왔다. 일명 '리빙 쇼어라인' 사업으로 2000년대부터 NOAA(미국 해양대기청)가 주도하면서 차츰 확대됐다. 현재는 자연해안 조성이 미국 전역에서 시행하는 국가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업의 효과성이 알려지면서 2010년대 이후 호주, 영국, 이스라엘, 홍콩 등으로 퍼져 나갔고, 우리나라도 최근 관련 연구가 시작됐다.
리빙 쇼어라인의 핵심 기술은 자연의 조절서비스 기능을 향상시키는 '생태공법'이다. 인공구조물을 철거하고 식생, 굴밭 등 해양생물의 자연서식지를 조성하여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연안침식을 줄이자는 것이다. 자연서식지 확장은 각종 해양생물의 가입, 정착, 성장을 도와 생태계 구조와 기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그 서비스까지 증진된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NOAA가 최근 발표한 리빙쇼어라인 사업의 효과는 새삼 놀랍다. 연안습지 재해 저감 비용 연간 25조원 절약, 1㎢당 생태계서비스 가치 100억원 상승, 그리고 사업 편익 7배 증가 등으로 나타났다. 최근 연안의 탄소 흡수 기능까지 확인되면서 리빙쇼어라인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에 동시에 대응하는 '토털 솔루션'으로 떠올랐다.
이제 'K-리빙쇼어라인' 전략이 필요한 때다. 우리 현실에 맞는 기술 개발과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 우선 필요한 것은 우리나라 연안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평가다. 삼면에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우리나라 바다를 잘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 새로운 생태공법 개발과 함께 현장 실증에 아낌없는 투자도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생물다양성 증진에도 일조하는 K-리빙쇼어라인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김종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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