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외쳤다고 형사처벌?···집시법 소음기준 이대로 괜찮나
비와 더위가 종잡을 수 없이 반복되던 한 주를 지나 해가 쨍쨍 내리쬔 21일. 박이현씨는 이른 오전부터 서울중앙지법을 찾았다. 형사재판 첫날이었다. 혐의는 집시법 위반. 지난해 9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모인 집회에서 규제를 어기고 너무 큰 소음을 냈다는 게 재판에 넘겨진 이유다.
2022년 9월24일 박씨가 참여한 기후정의행진은 오후 3시부터 1시간 10분정도 이어졌다. 정부에 기후 위기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로 시청역과 광화문, 남대문 주변에서 열렸다. 주말인데도 3만5000여명이 모였다. 국내에서 열린 환경 집회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9살 어린이도, 가족 단위 참가자도, 반려동물과 함께 온 시민도 있었다.
수사기관이 이 집회에서 문제삼은 건 소음이다. 집시법상 주간 소음기준 75데시벨(dB)을 넘겨 86dB 만큼 소음이 발생했고, 경찰이 확성기 사용 중지 명령 등을 내렸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씨는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해 이날 정식재판이 열렸다.
80dB은 보통 지하철 차내 소음 정도다. 전화벨 소리와 시끄러운 사무실 소음이 70dB 정도 된다고 한다. 3만5000여명이 모인 광화문 일대 집회에서 소음은 어느 수준이어야 적당한 걸까.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박씨의 대리인 박한희 변호사는 “집회와 이에 따른 소음이 발생한 점은 인정하지만 소음규제 기준 자체가 지하철 소음(80dB)보다 낮다”며 “소음규제 기준을 포괄적으로 시행령에 위임한 집시법 제14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집시법 제14조 1항은 ‘집회 또는 시위 주최자는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위반하는 소음을 발생시켜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시행령을 보면 광장 등의 소음기준은 주간 75dB, 야간 65dB 이하다. 2014년 각각 80dB, 70dB이었다가 낮아졌다. 대통령실은 최근 소음기준을 더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최근 소음기준 위반을 이유로 수사기관이 형사 처벌에 나서는 일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집회·시위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박씨뿐 아니라 지난 4월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한 활동가 등도 소음규제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 변호사는 지금처럼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소음 기준은 사실상 집회를 불가능하게 하고, 필연적으로 집회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게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집회 방법을 제한하는 걸 넘어 집회의 시간과 내용, 장소 등 모든 것을 제한하는 위헌적 조항이라는 것이다. 또 형사처벌의 구성 요건이 되는데도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소음 기준을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헌법의 포괄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그러면서 “설령 집회에 과도한 소음이 발생해 누군가 불편함을 겪을 수 있고 조절이 필요하다 해도 최대한 집회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기준 설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집회의 본질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함께 모이고 외치는 것인 만큼, 집회의 ‘메시지’를 소음으로만 봐서 처벌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가 갖는 의미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도 집회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해 소음에 대해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2009년 “집회나 시위는 다수가 공동 목적으로 회합하고 공공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며 “그 회합에 참가한 다수인이나 참가하지 아니한 불특정 다수인에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므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지 아니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박씨 측이 신청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 다음 기일에 판단하겠다고 했다.
이날 박씨와 함께 중앙지법을 찾은 기후정의행진 조직위는 첫 재판 시작에 앞서 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씨는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보면 벌금 50만원을 납부하고 끝내면 굉장히 편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이 당사자의 불편함과 벌금 액수를 넘어 많은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 금지된 사항을 뛰어넘는 한 발짝이라고 생각합니다. 승리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 국가에 의해 탄압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마지막 구호를 외쳤다.
“저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후재난의 현장 한가운데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너무 더워서 빨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후정의 외침은 소음이 아니다! 집회·시위 소음규제는 기본권 침해다!” 이날 낮 서울 최고 기온은 34도였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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