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럽게 주렁주렁 탐라 드림 무럭무럭[주식(酒食)탐구생활 ㉓]

박경은 기자 2023. 7. 2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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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에서 성산까지... 꿈을 키우는 제주 청년 농부 둘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과 성산읍. 동서편 끝에서 저마다의 꿈을 짓는 30대 농부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미래의 희망을 믿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고, 또 한 사람은 남들이 외면하던 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제주 올리브 스탠다드 이정석

제주에서 올리브나무가 자란다. 지중해권에서만 자란다고 생각해온 그 나무 맞다. 10년 전부터 제주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재배 농가만도 10곳을 훌쩍 넘는다. 물론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이다. 이미 바나나, 애플망고는 국산 과일로 바뀌고 있지 않은가.

이정석씨(39)는 대정읍에서 ‘제주 올리브 스탠다드’ 농장을 가꾸고 있다. ‘쉼표’ 있는 삶을 꿈꾸며, 틈날 때마다 산과 나무를 보러 다니던 그는 증권사를 거쳐 대기업 사회공헌팀에서 일하던 회사원이었다. 이렇다 할 연고가 없는 제주에 3년 전 귀농하며 선택한 것은 올리브였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감귤 이후의 제주를 이끌어갈 만한 고부가가치 작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작물에 비해 농사를 짓는 데 손이 덜 가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올리브 열매는 벌레들이 많이 꼬이지 않아 약을 치지 않아도 된다. 감귤과 달리 기계 수확이 가능해 인건비도 적게 든다. 열매는 물론이고 나뭇잎까지 영양이 풍부해 다양한 활용 가능성이 있는 데다 희소성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제주 대정읍 제주 올리브 스탠다드 농장의 이정석씨가 올리브 나무를 다듬고 있다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죠.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올리브나무를 키워 오신 분들은 그런 미래를 꿈꾸는 낭만 농부들이시거든요. 하지만 저 같은 초보 귀농자는 그런 낭만만 갖고 시작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이분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게 제 일이겠다 싶었어요.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수익과 연결시킬 수 있는 시스템, 현실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귀농하면서 그는 약 5000㎡(1500평)를 구입해 올리브나무 150그루를 심었다. 전 세계에 올리브는 400여 품종이 있으며 제주에서 자라는 올리브는 25개 품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심은 품종은 콜레지올라, 프란토이오, 레치노 등으로 주로 이탈리아에서 많이 자라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고 하기에는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울 만큼 보잘것없는 규모다. 올리브 농장을 돌보는 틈틈이 그는 다른 농가들을 찾아다녔다. 제주에 적합한 품종 재배를 확대하고 수확물을 상품화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자는 비전을 나눴다. 10여 농가가 참여한 제주 올리브연구회는 지난해 그렇게 시작됐다.

3년전 대기업 관두고 귀농한 이정석씨 쉼 있는 삶을 위해 올리브 농장 가꿔
지역 농가 10여곳 힘모아 연구회 발족 탄산수, 잼 등 수익모델 발굴에 구슬땀

“수익 모델을 만들고 상업적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이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셈이잖아요.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서 제품을 개발하고 브랜딩, 마케팅을 할 수 없으니 힘을 합쳐 서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로 한 거죠.”

제주농업기술원 등의 지원을 받은 연구회의 첫 결실은 올 초 나왔다. 지난해 10월 제주 지역 농가가 수확한 올리브로 탄산수, 사이다, 잼, 마멀레이드, 비누, 입욕제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올리브 잎으로는 여러 가지 식품에 활용할 수 있는 분말 차를 만들었다. 싱싱한 햇올리브는 생과로 올리브 절임을 만들려는 셰프들에게 순식간에 팔렸다. 다행히 제품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제주의 주요 편집숍이나 고급 펜션, 레스토랑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판매가 이어졌다. 실험적으로 올리브유를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상업적 생산이 가능할 정도의 수확량은 아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제주 올리브 스탠다드는 제주 6차 산업 사업장으로 선정됐으며 예비 사회적기업으로도 지정됐다. 올리브 농사를 짓거나 관심을 갖는 예비 농부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의 문의도 늘어나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막연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쌓아 올리기 시작한 셈이다.

지난해 수확했던 올리브 열매 제주 올리브 스탠다드 인스타그램
올리브를 활용해 만든 제품들

현재 그의 농장 안에 있는 체험관에서는 제품 구입과 시음을 할 수 있으며 올리브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농업을 통한 신체적, 정신적 치유 프로그램은 치유농업사인 그의 부인이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는 올리브 잎을 활용한 반려동물 사료, 올리브 열매를 이용한 전통 엿 등 각종 먹거리 생산 계획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올리브 농업이 자리를 잡으려면 올리브유를 상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은 수확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어떤 지원과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방정부나 농민 모두 감귤 이후의 대체작물에 대한 고민이 많거든요. 제주 올리브. 그중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면 좋겠어요.”

◇허니벨 농장 오재성

성산읍 ‘허니벨’ 농장 오재성씨(34)를 알게 된 것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다. 같은 업종, 분야에서 한두 다리 건너면 다들 연결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특성상 그는 셰프를 비롯해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 푸디(식도락가)들 사이에 꽤 알려져 있었다. 국내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아티초크 생산 때문이었다. 둥글고 소담스럽게 핀 꽃봉오리를 담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며 눈 밝은 사람들은 그의 농장 문을 두드렸다. 서울의 특급 호텔과 유명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셰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한 달간 3t 정도의 아티초크를 인스타그램으로 ‘완판’했다.

감각적인 사진들과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정보, 소비자들과의 실시간 소통으로 채워진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없던 관심도 생길 만했다. 사실 제주에서 아티초크를 재배한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농가에서 이를 생산했으나 판로를 찾지 못해 이어가는 농가가 없었다.

제주 성산읍 허니벨 농장의 오재성씨가 바질 모종을 옮기고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농사일을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이전에는 서울과 제주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했다. 태국음식점을 운영하던 그는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의 1만6000여㎡(5000평) 규모 농사를 물려받아야 했다. 계획 변경이 불가피했으나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간간이 아버지를 도왔던 경험 때문이다. 새 수익 작물로 무화과를 재배했으나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아버지를 대신해 그는 패키징 디자인과 스티커를 개발해 판매에 나섰다. 식당을 운영하며 SNS 활용에는 꽤 익숙했고 소비자들과의 소통도 의욕적으로 했다. 덕분에 큰 인기를 끌면서 판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제 아버지 세대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대체로 겪는 어려움이 유통이잖아요. 새로운 작물을 재배해도 판로를 찾는 게 여의치 않죠. 남들이 잘된다고 하는 작물을 따라 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수익으로 연결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고요. 그래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틈새의 수요를 맞춰보자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3년전 가업 물려받은 토박이 오재성씨 셰프 경험 살려 특수채소 재배 등 힘써
활발한 SNS 활동, 패키징 디자인 실험 5월 아티초크 3톤 완판 등 성공 가도

아티초크 재배를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현장에서 요리할 때의 경험을 살려 바질과 루콜라 재배도 시작했고 최근에는 베르가모트, 핑크레몬 등의 묘목도 들여왔다. 다양한 특수 채소들을 재배하고 있으나 주종은 만감류다. 레드한라봉, 천혜향을 비롯해 그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제품은 홍귤이다. 웅천조생의 돌연변이인 홍귤은 노지 재배 감귤보다 당도가 2배 가까이 높다. 일반 노지 감귤이 9브릭스 정도라면 홍귤은 17브릭스나 된다. 지난해 처음으로 수확한 홍귤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불티나게 팔렸다. 맛과 품질도 좋았지만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더해진 패키징도 한몫했다. 홍귤을 싸는 종이박스와 봉투 디자인에 사용된 그림은 그가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중학교 여학생의 작품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포장박스에 에어쿠션 기능이 있는 완충재를 사용해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물론 맛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는 부족한 경험을 데이터 축적과 공부로 보완하고 있다. 귀동냥 대신 농업기술센터 등 각종 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꼼꼼히 챙기고 책과 각종 자료를 탐독하며 궁금할 때마다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구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농사일을 이어받으며 밭의 배수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한 것도 과실의 당도를 높이기 위한 기초작업이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수익 작물로 블러드오렌지도 심기 시작했다.

허니벨 농장에서 생산한 아티초크. 5월말이면 생산이 끝난다. 오재성씨 인스타그램

예전부터 제주 안에서도 성산 지역의 감귤은 홀대받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당도가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한 편이라고 한다. 그는 “원인을 찾아 극복하고 승부를 겨뤄봐야겠다는 오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는 중”이라며 “소비자들이 성산 허니벨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믿고 사는 농장으로 가꾸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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