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관찰] 가격 규제엔 큰 대가가 따른다
제대로 된 짜장면이 귀해지고
농가는 키우던 소를 줄인다
언젠가 커뮤니티에서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어요.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예요'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이에 크게 공감했다. 돼지고기는 딱히 바라는 것 없이 호의로 사줄 수 있지만 소고기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소고기는 단순히 비싼 고기가 아니다. 우리에겐 매우 특별한 고기다. 돼지고기는 1970년대까지 음식물 찌꺼기와 인변을 먹여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양돈했기 때문에 역한 냄새가 많이 나고 쉽게 변질돼 먹기 힘들었다. 이와 달리 소고기는 냄새도 나지 않고 맛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부터 해방 이후까지 사람들은 소고기를 훨씬 더 선호했고 대부분의 고기 요리에는 소고기가 들어갔다. 오죽했으면 1960년대 신문기사에조차 '우리나라 사람은 원래 돼지고기를 즐겨 먹지 않고 소고기를 먹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의 이 엄청난 소고기 선호가 해방과 한국전쟁 후에 문제가 된다. 소고기에 맛을 들인 사람이 늘어나면서 수요 또한 계속 증가세였는데, 1년에 새끼 한 마리를 배는 소의 특성상 공급을 늘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에 소고기 가격이 급등하는 일이 벌어진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 소고기 가격은 쌀값만큼이나 중요했기 때문에 이는 곧 국가적 문제가 됐고, 당시 정부는 물가와 민심을 모두 잡기 위해 소고기에 대한 가격 통제를 단행한다. 그리고 이 가격 통제가 엄청난 문제로 발전한다.
일순간에 판매 가격을 통제당한 도축업자와 소고기 판매업자는 난관에 부딪혔다. 가격은 오르는데 제값을 받을 수 없으니 이들 입장에서 통제 가격에 팔라는 말은 손해를 보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 가격엔 팔 수 없으니 내장이나 기름 덩어리를 절반 이상 섞는 식으로 판매해 고기의 질이 저하되고, 제대로 된 소고기는 암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됐다. 이러한 여파는 소를 키우던 축산 농가에도 미쳤는데 해방 이후 1963년까지 136만마리로 증가했던 소 사육 마릿수는 소고기 파동을 거치며 1966년 128만9000마리로 3년 만에 7만마리가 감소한다. 팔아도 손해를 보는 입장이니 키우는 소를 줄인 것이다. 이러한 사육 마릿수 감소는 공급 부족을 심화해 소고기 파동이 1970년대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이 소고기 파동은 소고기 대체재로 양돈산업과 양계산업을 육성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고기를 공급하자 풀리게 된다. 가격 통제는 완벽한 실패를 낳았고 수요를 분산하면서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취하자 가격이 안정된 것이다.
가격 통제 실패에서 큰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지만 정부를 달리할 때마다 이러한 일을 반복한다. 서민 음식의 대표로 꼽히던 짜장면도 과거 가격 관리 품목으로 지정하고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통제했다. 그 결과 물가 상승 시기에 가격을 인상할 수 없었던 짜장면은 품질이 점점 열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짜장면을 취급하는 중국집은 많지만 제대로 만든다고 할 만한 곳은 얼마 남지 않게 됐다. 이처럼 가격 통제는 반대급부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최근 들어 정부 주도의 가격 통제를 많이 목격하게 된다. 한전이 지고 있는 막대한 부채의 원인인 낮은 전기료라든가, 라면 회사를 불러 가격 인하를 요청한다든가, 유업체를 소집해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다든가. 물론 이것이 소비자의 물가 인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임을 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오르는 걸 누가 좋아하겠으며 가격이 내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앞서 살펴본 소고기나 짜장면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가격 규제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가격 규제의 비용에 대한 청구서가 발송될 텐데, 당장 그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는다고 마구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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