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장기주의' 미래를 생각하는 삶

2023. 7. 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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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장기 사고에 무척 약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10년 뒤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즐거움에 비해 우리 관심을 사로잡지 못한다." 인간은 먼 미래에 누릴 즐거움을 눈앞의 쾌락보다 무척 작게 생각한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걸 막지 못하고, 비가 그치면 물이 새는 걸 막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여유가 있으면 지붕을 고치기보다 술을 한잔하는 게 더 낫다." 항상 소를 잃어야 인간이 외양간을 고치는 이유다.

게다가 우리 마음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우리 마음은 '소유 효과'에 휘둘린다. 인간은 일단 손에 들어온 물건의 가치를 앞으로 얻을 물건의 가치보다 훨씬 소중하게 여긴다. 확연한 차이가 없으면 우리는 좀처럼 정든 집을 떠나지 않는다. 이익에 따른 기쁨보다 손실에 따른 슬픔이 거의 2배나 더 크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문제는 오늘만 할인에 익숙해져 살아가면 기후위기 같은 장기적 위험엔 총체적으로 무능해진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인간은 특히 현재 편향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의 비유를 빌리면 선의를 품고 앞날을 걱정하는 이타주의 계획자는 내일을 모르는 체하면서 오직 오늘만 사는 이기주의 행동가에게 자주 압도당한다. 자본주의에는 현재의 쾌락을 자극하고 부추길 뿐 금욕과 절제, 즉 자기통제를 진정한 즐거움으로 느끼게 하는 도덕적 통제 장치가 거의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김영사 펴냄)에서 윌리엄 매캐스킬 옥스퍼드대 교수는 현재보다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는 도덕적 사고방식을 장기주의(longtermism)라고 한다. 장기주의는 기후변화 등에 따른 문명 붕괴를 막고, 인류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현재를 투자하는 태도다. 죽음을 기억하고 불멸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위대함에 이를 수 있다. 일찍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노래했다.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시들지 않으리라." 영원, 즉 장기 미래에 언어를 투자한 사람은 불후의 예술에 젊음을 붙잡아둘 수 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노예 해방을 외치며, 여성 권리를 위해 싸웠던 이들도 영원한 여름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통을 받아들였다. 지금 우리 삶의 위대함은 대부분 선조의 장기 투자가 빚어낸 결과다. 우리도 후손을 위해 단기 이기주의를 버리고 장기적·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의 삶을 바꾸면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를 이룩할 수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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