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발견] 화성·평택의 두 얼굴
전국을 답사하고 있는 나에게는 "미래에 어느 지역이 주목받을까요?"라는 질문이 자주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큰 성장이 예상되는 지역은 경기 화성과 평택"이라고 답한다. 이 두 도시는 삼성 반도체 공장을 따라 서울 강남부터 경기 수원·용인·아산까지 뻗어가는 '확장 강남'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화성과 평택이 지닌 이런 가능성을 알지 못하는 타 지역 사람, 특히 서울시 주민에 대해 화성과 평택 시민은 서울 바깥 지역에 무지하고 차별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화성과 평택 시민은 대체로 삼성 반도체 사업장이 있는 동탄 또는 고덕·지제에 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분께 화성에는 공단에 농촌에 염전까지 있고, 평택 서부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농촌이자 대규모 간척지라고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곤 한다.
전혀 다른 성격을 띤 동부와 서부 지역으로 이뤄진 화성과 평택. 동탄과 고덕·지제에 거주하는 시민은 본인이 평택과 화성을 대표하고, 본인이 사는 지역이 강남에 못지않음을 서울 시민이 알지 못한다고 분노한다. 하지만 이들이 화성과 평택을 이야기할 때 화성과 평택의 농산어촌 구석구석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현지에 사는 시민조차도 이렇게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화성과 평택의 동서 지역 차이를 대부분의 대도시 사람, 특히 서울에 사는 사람이 알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정부가 얼마 전 삼성 반도체 평택사업장 근처에 미니 신도시를 만들기로 했는데, 평택에 몇 곳이나 미분양 아파트 단지가 있는 상황에서 과잉 공급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언급한 평택의 주요 미분양 단지는 삼성 반도체 평택사업장과 직선거리로 13㎞가 넘는 평택 서부 거점 '안중읍', 안중읍에서도 좀 더 서쪽으로 가야 나오는 현덕면에 있다.
직선거리 13㎞는 강남과 강북구·도봉구 간 거리와 비슷하다. 서울시 상황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강남과 강북구·도봉구 아파트 단지를 동일 생활권으로 간주하고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도시권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화성의 동쪽 동탄과 서쪽 지역은 평택의 동서 간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다. 화성 서부에는 염전으로 대표되는 어촌뿐만 아니라 소규모 공업단지와 농촌도 넓게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농산어촌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
화성 서부의 중심 지역 가운데 하나인 향남읍. 이곳에서 서남쪽에 자리한 우정읍으로 향하는 H105번 버스를 탄 적이 있다. 이 버스에는 한국계 노인과 외국계 청년들만 타고 있었다.
향남에서 우정으로 향하는 중간에 자리한 팔탄면을 지날 때는 창밖으로 곶감과 두리안을 판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청과상이 보였다. 두리안을 파는 시골 과일 상점이라니.
향남에서 출발한 버스를 함께 탔던 나와 외국인 청년들은 얼마 전 폐업한 우정읍 조암터미널 앞에서 내렸다. 터미널 옆에는 시골 장터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업종인 순댓국집과 동남아시아 노동자를 위한 매장 몇 곳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우정읍사무소가 있는 조암리는 화성 서부의 전통적인 농업·공업 거점으로서 모습을 남기고 있었고,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조암리를 생활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삼성 반도체가 추동하는 확장 강남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화성·평택 동부, 농산어촌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이를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치는 화성·평택 서부.
동서 두 지역이 만들어내는 대조적인 모습은 대도시에 사는 한국 중산층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도시의 현 상황이다. 내가 미래 도시로 화성과 평택을 거론하는 것도 바로 이 극명한 대조가 혼란과 갈등 끝에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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