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전날까지 블루베리 땄는데…방 나설 틈 없이 토사 덮쳐
‘듣도 보도 못한 비’로 물 잔뜩 먹은 흙, 끝내 새벽에 마을 덮쳐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경로당에서 약 1㎞ 올라가면, 상백(上白)마을이 나온다. 마을 뒷산의 흰돌 때문에 윗마을을 상백, 아랫마을을 하백으로 부른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버금가 ‘소금강’이라고도 부르는 이 마을 한가운데로 굵은 황토색 선이 그어졌다. 선 영역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뒷산에서 내려온 토사가 덮었다. 집도, 논도, 밭도,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북 북부 지역에 집중된 호우로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지 사흘 뒤인 2023년 7월18일 상백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느티나무와 서낭당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건 황토색 토사뿐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진흙 냄새는 더 짙었고 비렸다. 토사 사이사이 튀어나온 잔재가 이곳에 농장과 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게 했다. 선의 경계선에 걸친 한 집은 채 휩쓸리지 않은 옷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20여 명이 모여사는 이 작은 마을에서 5명이 세상을 떠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023년 7월 발생한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46명이 죽고 4명이 실종됐다(2023년 7월20일 기준). 경북 지역에서만 사망자 24명과 실종자 3명이 발생했다.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된 채수근 해병대 상병은 별도다. <한겨레21>은 7월18~19일 산사태 피해가 집중된 예천군(벌방리, 백석리, 천향리)과 봉화군 학산리 등을 찾아 현장을 살펴보고 주민들을 만났다.
굵은 빗소리에 새벽 2시 인삼밭으로
예천군 감천면 천향2리 이장 이창진(63)씨가 처음 불안을 느낀 때는 2023년 7월14일 오후 5시쯤이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마을에 있는 도랑 일부가 무너졌다. 포클레인으로 무너진 부분을 막고 새로 물길을 내는 작업을 마친 시각이 밤 10시였다. 임시방편으로 막아놓은 탓에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밤부터 빗소리가 굵어지며 불안감은 커졌다. 자정을 넘긴 새벽 2시가 지나 이씨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지중지 키운 인삼밭을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인삼밭은 이미 물바다였다. 밭에 물이 가득 찼는데 위에선 흙탕물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 사람은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밭으로 돌아온 시점이 새벽 3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안부전화가 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집에 휴대전화를 두고 온 탓에 아내가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자는 아내 손을 잡고 마을 밑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번쩍’ 눈앞에서 엄청난 스파크가 튀었다. 순식간에 토사가 흘러내려오면서 전신주가 뽑혔다. 아수라장이었다. 이씨의 집은 눈앞에서 토사의 직격을 맞아 바스러졌다.
천향리에서 약 3㎞ 떨어진 벌방리 이장 박우락(62)씨가 마을 한 곳의 맨홀 뚜껑이 열렸다는 전화를 받고 마을로 들어간 것은 7월15일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는 줄로만 알았다. 밖에 있는 주민들에게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전하고 집에 돌아와 잠깐 소파에 앉았을 때다. 전화가 왔다. 마을 총무였다.
“물이 굉장히 많이 내려와요. 아무래도 이상해요.”
“일단 보고 있지 말고 들어가세요. 다른 분들 누구 있어요?”
“다들 나와 있어요.”
“빨리 뒤로 비키고 거기 있지 마세요.”
이 말 뒤로 박씨는 집에서 나와 마을로 향했다. 벌방리를 지나는 석관천 건너편에 사는 박씨가 다리를 건너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다. 마을 안쪽에서 시커먼 게 확 밀려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뛰어갔다. 다시 돌아와서 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집채만 한 바위와 나무가 쏟아져 내려와
이번 산사태 피해가 집중된 곳인 벌방2길에는 35가구, 100여 명이 산다. 마을 뒤 주마산 자락 계곡을 타고 내려온 토사가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다. 양쪽 계곡에서 시작된 산사태가 중간에 Y자로 합쳐지면서 세를 불렸다. 마을 중턱에 사는 ㄱ씨는 새벽 3시20분쯤 들리는 쿵쾅대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이미 마당엔 물이 허벅지 높이까지 차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집채만 한 바위와 나무가 쏟아져 내려오는 광경이었다. ㄱ씨 집은 산사태 경로에서 약간 비켜나 있던 덕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다른 집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 산사태로 주민 2명이 실종됐다. 그중 한 명이 벌방2길 마을 입구에 사는 김아무개(67)씨다.
김씨는 산사태가 나기 직전 아들과 함께 있었다. 아들 김씨는 새벽에 이상함을 느껴 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다고 한다. 마당에 물이 들어찬데다 빗물이 아니라 흙탕물이 흘러내려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깨우려고 한 것이 아들의 마지막 기억이다. 다시 문을 여는 순간 밀려드는 토사에 휩쓸렸고 정신을 잃었다. 아들 김씨는 약 600m 떨어진 곳에서 구조됐다. 아버지 김씨는 아직 실종 상태다.
백석리 상백마을 주민 이근섭(64)씨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건 새벽 4시가 넘어서였다. 평소처럼 4시쯤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는데 밖에서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음이 났다. 땅을 울리는 소리였다. 4시30분쯤 창문을 여는 순간 마당에 있던 농산물 건조기가 튀어 들어왔고, 산더미 같은 토사가 밀려들었다. 이씨의 집은 산사태 경로에서 조금 비켜나 집 한쪽만 산사태를 맞았지만, 마을의 집 중 제일 앞에서 직격으로 맞은 뒷집은 그대로 매몰돼 집 안에 있던 부부도 숨졌다.
봉화군 학산리에서도 귀농한 50대 부부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집 안에서 숨졌다. 2011년 귀농해 직접 한옥집을 짓고 유기농법으로 블루베리 농사를 하며 살아가던 이들은, 사고 전날에도 블루베리를 따고 일찍 잠들었다고 한다. 바로 뒷산에서 시작한 산사태는 집에 직격으로 들이닥쳤다. 부부는 방문을 나설 틈도 없었다. 형체도 없이 사라진 다른 집들과 달리, 이들 부부가 5년 넘게 걸려 직접 지은 한옥집은 무너지지 않고 산사태를 견뎌냈다. 그 탓에 토사가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부부는 안방에서 발견됐다.
‘역대급’ 6~7월 누적강수량에 이미 물 많이 머금은 흙
경북도에는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4900여 곳이지만, 이번 산사태 피해가 난 예천군이나 봉화군 대부분은 취약 지역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집중호우 기간 다른 지역과 비교해 강수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도 아니다.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설치된 전국 510곳의 2023년 7월14~15일 강수량을 살펴보니 예천군에는 14일과 15일 각각 141㎜, 102㎜의 비가 내렸다. 적은 강수량은 아니지만 예천군보다 강수량이 많은 지역은 전국에 50곳이 넘었다. 다만 <한겨레21>이 만난 주민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평생 살아온 마을에선 이 정도 규모의 강수량은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벌방리에서 대대로 400년 이상 살았다는 유재선(65)씨는 “이렇게 비가 온 적은 없었다. 아버지나 연세가 많은 어른들에게 여쭤봐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며 “사라호 태풍(1959년 경상도에 특히 큰 피해를 남긴 태풍)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천향리도 마찬가지다. 이장 이창진씨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온 적도 처음이고, 큰 산사태가 난 적도 없었다”며 “아흔 넘은 마을 어르신들도 처음 겪는 일이다.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산사태 직전만 비가 많이 내린 것이 아니라 6월부터 계속된 비로 누적강수량이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천향리에서 농사짓는 김도원(69)씨는 이렇게 말했다. “비가 계속 내려서 땅이 물을 먹을 만큼 다 먹었어요. 그 상태에서 (7월15일 새벽) 한두 시간 만에 집중적으로 두들기니까 끝난 거예요. 산에서 물이 워낙 많이 내려왔어요. 계곡을 타고 물이랑 집채만 한 바위랑 나무랑….”
2023년 6월 예천의 누적강수량은 261.5㎜였다. 특히 6월20일 이후부터 225㎜가 집중됐다. 이전 10년(2013~2022년) 6월 평균 강수량은 약 80㎜ 수준이었다. 7월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특히 7월4일부터 열흘 동안 사흘을 빼고 계속 비가 내렸다. 이 기간 누적강수량은 229㎜ 정도다. 이 상태에서 7월14~15일 이틀 동안 243㎜의 비가 더 내렸다. 5명이 숨진 상백마을이 있는 효자면에는 이틀 동안 363㎜의 비가 내렸다. 봉화군에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500㎜ 가까운 누적강수량이 쌓였다. 그 상태에서 7월14~15일 이틀 동안 200㎜ 넘는 비가 추가로 내렸다. 누적강수량이 많을수록 흙이 물을 많이 머금고 있기 때문에 산사태 위험은 더 커진다.
봉화군 학산리에 사는 도분자(63)씨는 “결혼해서 학산리에만 43년 살았는데 이렇게 비가 온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도씨의 집은 학산리 마을에서도 가장 위쪽에 있는데, 새벽 4시쯤부터 토사가 쏟아졌다고 했다. 도씨 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서 물이 넘치더니 이윽고 나무와 돌이 쏟아졌다. 그의 집은 계곡과 조금 떨어져 있어 무사했지만 넘친 토사가 창고까지 들이닥쳐 무릎높이까지 찼다.
“읍면마다 자동기상관측장비 있지만 활용 안 해”
‘듣도 보도 못한 비’가 내린 것은 맞지만, 일부 주민은 마을 뒷산을 개간해 논밭으로 사용한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의심했다. 이창진씨는 “(천향리 뒷산) 꼭대기에 호두나무를 심으면서 중간중간에 길을 다 내놨다”며 “비가 많이 온 영향도 있겠지만 (산 중간에) 길을 내놓은 탓도 있는 듯해서 확인하려 한다”고 말했다.
아직 경북 지역 산사태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아 산사태가 시작된 곳도 있었다. 산사태 피해 직후부터 나흘에 걸쳐 경북 피해 지역을 돌아본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경북 은풍면 금곡리의 경우 산사태 시작점이 양수발전소로 가는 ‘길’이었다”며 “산 위에 있는 도로 관리를 못해서 터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 위원이 제공한 사진을 보면 양수발전소 시설물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길이 붕괴된 지점부터 산사태가 시작됐다.
다만 “금곡리를 제외하고 백석리나 봉화군 학산리 등은 순수한 산림 안에서 터진 것 같다”며 “아직 최초 발생 지점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만 보면 인간의 손길로 인한 발생일 가능성은 커 보이진 않는다”고 서 위원은 말했다.
그렇다고 자연 탓만 할 수는 없다. 서 위원은 “주민들은 처음 겪는 일이라 어쩔 수 없지만, 지자체의 소극적 대처는 뼈아프다”며 “읍면마다 자동기상관측장비가 다 설치됐는데 하나도 활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문자도 ‘산사태 위험 지역에 있는 사람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바란다' 정도로 왔는데, 이건 문자를 보냈다고 변명할 때나 좋은 것”이라며 “어느 마을로 피해야 하는지, 비는 얼마나 내리는지 등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언론과 정부에서 기후위기를 부르짖는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대비 수준은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 정도의 재난문자나 알림으로는 주민들에게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기 어렵다. 이번 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도 주민들이 평소 비가 많이 오는 수준에서만 대비했기 때문이다. 박우락씨는 “예방을 안 한 게 아니고 원래 하던 차원에선 했다”며 “수로가 막혀 있는지 점검하거나 논밭 물길 점검 이런 것을 한 거지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질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이창진씨는 “문자는 수백 개 받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며 “(7월14일) 아침부터 비가 와서 면장도 마을에 오고 연락도 많이 받았는데, 하여간 긴박하니까 (폭우에) 대응을 잘하라는 식으로만 얘기를 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서 위원은 “산사태 방지 시설이 없었던 것도 아쉽지만, 그게 없었더라도 ‘적극적 대피'라는 방법이 있었다”며 “재난문자 보내는 건 아무 소용이 없고, (지자체에서) 왜 적극적으로 대피를 시키지 않았는지, 그게 뼈아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난문자든 개별 연락이든 연락도 많이 했어요. 저도 순찰하면서 만난 주민한테 마을회관에 가 있으라고 했는데 ‘에이, 무슨 그렇게까지 해’라고 말해요. 안 간다는 걸 멱살 잡고 끌고 갈 수도 없잖아요. 지금까지 대비하는 인식이 이 정도였던 거예요.”(박우락씨)
면피를 위한 기후변화여선 안 된다
녹색연합은 7월19일 성명을 내어 “정책 실패 면피를 위해 기후변화를 이야기해선 안 된다”며 “기후위기 대응, 기후재난 예방을 중심으로 정부 조직과 예산을 배치하고, 국민의 생명이 최우선이 되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정책을 정비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천·봉화(경북)=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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