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야만 난무한 1000년의 암흑? 중세는 혁명 기반 닦은 '빛의 시대'
별 관측하고 대학 설립했고
과학혁명 토대 쌓았다"
모자이크처럼 다채로운 중세
이슬람·기독교 얽히며 공존
바이킹은 전세계 교역망 열어
반권위주의 반란의 역사가
프랑스 혁명도 가능하게 해
중세는 오랫동안 인본주의와 다채로운 예술이 탄생한 르네상스 이전의 폭력과 야만이 난무한 암흑 시대로만 여겨져왔다. 하지만 이 책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아름답고 찬란한 발전이 지속된 빛의 시기였다고 반론을 편다. 이 시대는 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 두려움으로 불태워진 이단자뿐만 아니라 대성당을 수놓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빛과 아름다움, 그것을 만든 이들의 피땀, 기독교의 금빛 유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의 자선과 헌신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1000여 년간 유럽은 갇혀 있지 않았고, 훨씬 더 크고 둥근 지구를 알고 있었다.
매슈 게이브리얼 버지니아공과대 중세학 교수와 데이비드 M 페리 미네소타대 역사학과 수석 지도교수가 공저한 이 책은 중세를 "모든 인간이 그렇듯 중세인 역시 사랑하고 열망하고 증오했다"며 "유럽 과학자는 별을 관측하고, 대학을 설립하고, 과학 혁명이 기여할 토대를 닦았고, 그러면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인류 역사에서 중추적 장소이자 시간이었다"고 정의한다.
이야기의 여정은 430년께 이탈리아 동해안 작은 성당에서 시작한다. 로마 황제의 여동생이자 서고트족 여왕인 갈라 플라키디아는 게르만족이었다. 그의 국제결혼을 두고 저자들은 로마인이 되고자 하는 고트족의 욕망을 드러내는 징후이자 로마 제정의 유산을 통합하기 위해 침략자와 결혼하려는 로마인의 의지로 읽어낸다. 그의 삶은 중세인의 상징적 면모를 보여준다.
이복 오빠인 호노리우스 황제가 밀라노를 버리고 천도하면서 라벤나는 서로마제국 수도가 됐다. 플라키디아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라벤나 예배당을 복원하라고 명령했다. 자신의 무덤으로 삼으려 했던 이곳 천장을 푸른색으로 칠하기 위해 유리 테세라(청금석의 푸른색이 스며든 유리 조각)를 몰타르로 붙였다. 황금색 유리로 반짝이는 별빛을 장식한 이 성당은 양떼 사이에 앉은 선한 목자, 예수를 묘사했다.
1321년 공교롭게도 이 성당에서 중세는 끝이 났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우주 전체를 포괄하는 원대한 상상력의 '신곡'을 쓸 때 이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얻었다. 피렌체 출신 망명객인 그는 라벤나 군주의 궁정에서 눈을 감았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을 통해 교황의 파벌정치와 피렌체의 중세 민주정치에 분노하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이 성당 천장에 장식된 빛나는 하늘을 보며 천국편을 마무리할 영감을 얻었다. 전형적인 중세 서사시지만 이 작품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희망으로 가득하다.
423년부터 12년간 섭정이 되어 로마제국을 다스린 플라키디아 직후 로마 서쪽 제국은 종말을 맞은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476년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는 로마 황제를 폐위했지만 콘스탄티노플의 또 다른 황제의 신하를 자처하기도 했다. 1000년간 유럽이나 지중해에서 최소 1명의 통치자가 로마제국과의 정치적 정통성을 주장하곤 했다. 특히 기독교 영향으로 중세 이민족조차 로마제국 유산에 기대 문화적·사회적 기준을 세웠다.
로마 몰락 이후를 암흑기로 설명하려는 학자에게 이 책은 "로마는 늘 변해왔고, 권력의 중심지는 늘 바뀌었다"고 반박한다. 18세기 대영제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게르만족은 진정한 로마인이 될 수 없다고 썼다. 하지만 이 시기 로마인은 새로운 집단을 문제시하지 않았고 기꺼이 사회에 진입시켰다.
이 책은 대륙을 넘나들며 로마 멸망과 바이킹, 십자군 원정, 흑사병 시대를 돌아보고, 여러 종교가 공존한 이베리아반도, 비잔티움 제국의 발흥까지 살펴본다. 실로 중세는 모자이크처럼 다채로운 시대였다. 7세기 예루살렘에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서로 얽히며 공존했다. 바이킹은 폭력과 약탈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교역망을 열고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미지의 땅을 개척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인은 지난 1000년과의 연관성을 끊어버리기 위해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라는 먼 과거를 활용했다. 18세기 이후 유럽은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럽이라는 허구와 '서양 문명'이라는 꾸며낸 개념을 사용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잘못 쓰인 역사를 뒤집기 위해 유럽에 한정되지 않고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포괄하는 서술의 객관성을 강화한다. 동아시아 몽골제국과 유럽의 만남은 사람과 문물의 광범위한 이동을 가능케 했으며, 유럽 대륙을 영원히 바꿔버릴 흑사병까지 전파했다. 오스만튀르크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난 대초원 지대와 도시 간 상호작용을 통해 출현했다.
심지어 프랑스혁명은 중세인이 민주적 대의제를 실험했고, 반권위주의적 반란의 기나긴 역사를 지나왔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근대 때 발현한 역병, 예술, 통치 체제, 전쟁, 혁명과 번영까지 모두 새롭고도 찬란했던 중세 세계를 통과하며 발아한 것이라고 이 책은 치밀하게 증언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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