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어온 '수신료 위탁징수' 사회적 합의… 시행령 개정 한 번으로 파괴"
권력기관을 동원해 압박하던 방식이 성에 차지 않았던지, 윤석열 정부는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KBS·EBS·TBS·YTN·MBC 등 5개 방송사 노조위원장 연속 기고를 통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협하는 권력의 움직임과 그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11일 TV수신료 분리 고지가 가능한 대통령 시행령이 제정 공포됐습니다. 6월5일 대통령실 권고안이 나온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상임위원 5명 중 2명이 공백인 상태에서 입법 예고기간을 40일에서 10일로 당기는 등 그야말로 졸속이고 폭력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30년 지속해 온 사회적 합의가 불과 한 달여 만에 행정부의 시행령 개정 하나만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방통위는 시행령 개정 과정 중 입법예고 기간 관련 부처의 특이의견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된 이후 현장은 난리가 났습니다. 가장 혼란스러운 곳이 아파트단지입니다. 법률상 관리사무소가 TV수신료를 수납 대행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TV수신료는 전기료에 통합 고지됐지만, 분리 고지를 위해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TV수신료 수납을 대행할 법적인 근거가 필요합니다. 해당 부처가 방송법 개정안을 검토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것을 몰랐던 것일까요? 아니면 알고도 애써 외면했기 때문일까요? 졸속이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TV수신료 분리 고지가 가능한지에 대한 방안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 불편과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논의도 검토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시행령의 허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시행령을 통해 공영방송의 존속과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헌법정신 위배” “현재 수신료 위탁징수 방식의 변경은 주주 권리 침해나 배임 등 법적 문제 야기” “당연 규정인 시행령 개정을 위해서는 상위법률의 위임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아 위법” “민·형사상 소송은 물론 국가를 대상으로 손배소송까지 가능”.
제 개인의 주장이 아닙니다. 다수의 헌법학자, 법률전문가, 언론학자들의 얘기입니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한 여론수렴 과정부터 공포까지 절차와 방식이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음은 물론 법률적으로도 따져봐야 할 사안이며, 헌법 가치에도 반한다는 겁니다.
우리 헌법 제21조 3항은 방송의 시설기준·기능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률의 목적과 위임 범위를 벗어난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방송법의 근거 없이 시행령만으로 공영방송 재원에 심각한 영향을 주려는 행정부의 시도는 그래서 반헌법적 행위입니다. 또한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면 징수 비용의 증가로 공익사업에 사용될 재원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공영방송이 제공하는 사회적 편익 축소로 귀결될 우려가 큽니다.
졸속 추진을 중단할 가장 실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법률적 대응 특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있습니다. 언론단체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헌재에 ‘TV수신료 분리 고지 대통령 시행령 중지’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탄원서를 접수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미 2만명 넘는 시민들이 동참했습니다. 앞으로 5만, 10만명의 탄원서로 이어져 공영방송 나아가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힘이 되어주십시오.
윤석열 정부가 TV 수신료 분리징수를 법과 절차, 사회적 논의도 무시한 채 졸속으로 추진하면서 오히려 국민 불편과 사회적 혼란만 더 가중되고 있습니다. 졸속으로 점철된 속도전 행정은 이쯤에서 멈춰야 합니다. 시민사회가 국민 피해와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헌재가 신속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주십사 호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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