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상대로 장사하는 게 어때서요?[다른 삶]

기자 2023. 7. 2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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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의 ‘경계인’
캐나다 토론토 북쪽 어느 건물에 모여 있는 4개 언어로 된 간판들. 모국 커뮤니티에서 장사하는 것은 비즈니스를 넘어 자국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K문화를 전파하는 첨병인 셈이다. 요즘 토론토 한국 식당에는 한국인보다 외국 손님이 더 많이 찾아온다.

지난달에 쓴 글(6월24일자 ‘한국의 저출생이 문제라고? 캐나다가 하는 대로 배우면 돼!’)에는 오랜만에 댓글 수백개가 달렸다. 평소 독자의 비판은 물론 이른바 ‘악플’도 고맙게 여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다소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다.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사람을 은근히 비하하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섣불리 미국이나 캐나다 가면 평생 영어가 그닥 필요 없는 자영업(세탁소·식품가게·식당·주유소)을 하거나 몸으로 때우는 직업밖에 없습니다. 중학교 정도에 이민 가면 영어와 한국어가 유창해서 주류 사회에 진입이 가능하지만 대학교 넘어서 가면 주류 사회의 진입은 꿈도 못 꾸고 한인 상대의 장사만 해야지요. 한국 사람도 아니고 캐나다 사람도 아닌 어정쩡해집니다. 성우제씨처럼요. 늙으면 무척 외롭거나 다시 한국에 올 생각하는 분이 태반입니다.”(원문 그대로이다)

이 글에서 내가 동의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이민 1세인 나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캐나다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 맞다. 나는 캐나다에서는 ‘코리안’이고, 한국에 가면 어리바리한 캐나다 사람이 된다. 중간자 신세라는 것은 이민자에게 피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그러나 ‘어정쩡’은 정서적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댓글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분이나 직업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댓글을 쓴 이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북미에 살러 가면 ‘주류 사회 진입은 꿈도 못 꾼다’ ‘한인 상대 장사만 해야 한다’고 했다. 주류 사회의 의미가 몸이 아닌 머리로 일을 하는 캐나다 직업 사회를 일컫는 것이라면 이 주장은 이곳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지난 십수년 동안 토론토로 살러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대다수가 이른바 화이트칼라 직종에 종사한다. 댓글 작성자 말대로 과거에는 이민자 하면 자영업 종사자들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회사에 취직해 월급쟁이로 사는 이들이 많다. 젊은 한국인 이민자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토론토에서 내가 아는 사람 대다수가 그러하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통신회사에서 15년 넘게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2000년대 초반 이민 와서 대형 은행 전산실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지인도 두 사람 있다. 그들 모두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다.

자영업에 관한 댓글 내용도 틀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른 직업을 구할 자격을 갖추지 못해 자영업에 종사하는 나 같은 사람도 물론 있지만(한인을 상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한인을 대상으로 장사한다고 해서 저런 식으로 저평가될 이유 또한 없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자영업자로 변신한 이들도 많다. 큰 회사 전산실에서 일하다 스트레스가 많아서 ‘구두 수선점’을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속 편해서 좋다”고 했다.

“이민 섣불리 가면 주류 못 끼고 평생 장사” 잘못된 사실로 은근한 비하
육체노동자 낮춰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학력에 목 매는 경우 드물어
한국서 대기업 다녔어도, 명문대 나왔어도 “속 편해” 자영업자로 변신
자기 일에 만족·모범적으로 살아간다면 누구에게도 ‘꿀릴’ 일 없어

내가 캐나다에 건너온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자영업에 종사하는 한국 이민자 비율이 비교적 높았다. 돌이켜 보면 그 무렵이 한국 이민자들의 노동 형태가 자영업자에서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예전의 한인 자영업자들이 직장에 취직할 능력이 없어서 자영업을 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반대의 경우를 훨씬 많이 접했다. 7월 초 토론토 한인 매체에 올라온 부고에서도 이런 내용이 눈에 띄었다.

‘1967년 캐나다 이민. ○○○○(세계에서 가장 큰 음료 회사)에서 일하다가 편의점 운영’.

말하자면 고인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당시 한국 이민자들이 주로 하던 편의점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토론토 한인 사회에서는 한때 ‘가게’ 하면 ‘편의점’을 의미할 정도로 많은 한국 사람이 편의점업에 종사했었다. 캐나다 CBC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 속 편의점 주인이 한국 이민자라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토론토에서 자영업을 하던 사람 중에는 멀쩡한 직장을 자의로 그만두고 뛰어든 이들이 많았다. 1970년대 초반 유학을 왔다가 캐나다에 그냥 살게 되었다는 A씨는 말했다.

“직장 다니면서 생활은 할 수 있었지만 돈 모으기가 어려웠다. 장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벌고 집도 금방 장만할 수 있었다.”

A씨는 자영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집을 사고 주택담보대출(모기지)까지 모두 갚았다고 했다. 당시 직장인으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1970~1980년대 개인이 하는 자영업 환경이 한창 좋을 때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라면 A씨처럼 대학원 공부까지 한 사람이, 든든한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일부러 자영업자가 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캐나다여서 감행할 수 있는 변신이었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유학 왔다가 이민자가 된 B씨는 회계사였다.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마친 뒤 회계사로 몇년 일을 하다가 그 또한 편의점 업주로 직업을 바꾸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남들처럼 돈 벌고 싶어서.”

예전, 그러니까 1970~1980년대에 캐나다로 온(한국 사람들의 캐나다 이민 역사는 캐나다 이민 문호가 열린 1967년에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한국 이민자들이 주로 자영업에 종사했던 이유는 취직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 가진 돈 없이 건너와(돈이 있다 해도 200달러 이상은 한국에서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 빨리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려고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소 특이한 사례를 접한 적도 있다. 이민 초기에 나는 자영업을 하려 마음먹고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묻고 배웠다. 주로 은퇴를 앞둔 사람들을 찾아갔었다. 운이 좋으면 수십년 운영한 가게를 내가 인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청과상 모임에 나갔다가 만난 C씨가 “과일·채소 가게에 관심이 있으면 와보라”고 했다. 그는 곧 은퇴할 예정이라고 했다. 3개월 동안 여러 번 찾아갔으나 C씨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뭔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이는 “가게를 당신한테 넘길 수가 없겠다”고 통보했다. 이유가 뜻밖이었다. 매출이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처럼 30년 넘게 해온 프로가 한다면야 별문제 없겠지만 당신 같은 초보자로서는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가게의 건물주이기도 하니 건물 주인으로서도 망해 나갈 가능성이 높은 초보자를 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직장에 다니는 아들에게 가게를 맡기겠노라고 했다.

나는 두 가지를 물어보았다. 아들도 초보자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직장 있는 아들보다 직장 없는 나한테 넘기는 것이 낫지 않으냐 하는 게 첫 번째 질문이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가게 일을 도왔고, 아들이 하면 곁에서 도울 수가 있다.”

들어보니 아들의 직장은 꽤 좋은 회사였다. 그런 회사를 왜 굳이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게 하느냐고 물었다.

“가게 매출이 떨어지기는 했어도 월급쟁이보다는 낫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라면 벌이가 조금 낫다 한들 멀쩡한 직장인인 자식에게 작은 가게를 이어받게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명문대학을 갓 졸업한 자식에게 가게를 물려준 부모도 알고 있다.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장사는 나 같은 초보 이민자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여기서 대학까지 나온 자식에게 왜 굳이 가게를 맡기려 하는가? 졸업장이 아깝지 않나?” 그 부모는 “아이가 원하고, 또 지금 가게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자식은 가게를 물려받아 더 발전시켰다. 가정을 꾸린 뒤에는 배우자까지 그 일에 합류했다.

전문직 혹은 사무직이 최고의 직업이고, 자영업은 덜 좋은 일이라 여기는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라면 이런 사례가 생겨나기 어려울 것이다. 육체노동에 종사한다 해도 ‘몸으로 때우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이라며 낮춰 보는 시선은 이곳에 거의 없다. 어떤 직업이 되었든 본인이 선택하고 열심히 일하며 만족한다면 그것이 최선이고, 또 존중을 받는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하다 보니 이른바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학력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일도 별로 없다. 물론 ‘학군’을 중시하고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고자 하는 욕망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욕망도 학벌을 궁극의 가치로 여긴다거나, 좋은 학벌을 갖게 하려고 살벌한 무한경쟁 속으로 자녀를 밀어 넣는 정도로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느냐 하는 것은 이력서를 처음 쓸 때나 적어 넣는 사항이다. 일단 취직을 한 다음에는 졸업장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정도로 의미가 퇴색한다. 명문대 졸업생이라고 해서 두고두고 대접하는 사회가 아닌 것이다. 어느 직장에서 얼마나 일을 잘했는가 하는 것이 자기 몸값을 높이고 이직 가능성을 좌우하는 최상의 ‘스펙’이다. 출신 학교보다 백배는 더 중요한 것이 직장 상사(매니저)의 추천서(레퍼런스)이다.

고교 졸업식에 참석하면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졸업생을 한 사람씩 소개하면서 해당 학생이 졸업 후 무엇을 하는지 사회자가 공표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성우제, 토론토대 입학. 영문학 전공.”

2년제 대학 이름도 나오고, 그냥 여행 떠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어떤 졸업생은 “(고교에서) 1년 더 공부한다”고 발표되기도 한다. 어떻게 소개되든 크게 자랑스러워하거나 창피해할 일이 아니다. 각자 가진 능력과 취향에 맞게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자녀의 명문대학 진학을 최선으로 여기는 사람 눈에는 퍽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캐나다의 입시가 과열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직업에 ‘계급’ 같은 게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전문직에 종사한다 해서 우월한 사람이 아니고, 한인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고 해서 열등한 사람도 아니다. 자기 직업에 만족하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아간다면 속된 말로 누구에게 ‘꿀릴’ 일은 없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속 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문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킬러 문항’ 같은 용어가 생겨날 까닭이 없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7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 등 단행본 6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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