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감소에도 난 황제株 '당좌비율' 보면 이해될걸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싱크홀'(땅 꺼짐) 위로 걸어다니는 것과 같다. 특히 성장성이 없는데 빚을 갚는 데 급급한 회사는 설상가상이다.
최근처럼 고금리와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치는 상황에서는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당좌비율'이 투자의 가늠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당좌비율은 한마디로 기업이 1년 내 돌아올 빚을 곧바로 갚을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구체적으로는 유동자산에서 재고자산을 빼고 난 즉시 현금화 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값이다.
예를 들어 신용평가사들은 CJ CGV처럼 당좌비율이 50%대로 낮으면 외부 자금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본다. 이 비율이 80%는 넘어야 재무 리스크는 넘긴 것으로 판단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좌비율이 너무 높아도 기업의 공격적 투자 성향이 약해 성장이 멈춘 기업으로 취급받는다. 이 때문에 주식투자 시 당좌비율과 성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감한 투자로 미래 성장성을 담보로 할 경우 당좌비율이 80%만 넘으면 주가 고공행진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달 SK이노베이션과 CJ CGV는 각각 1조1800억원, 5700억원의 유상증자(유증) 공시를 내놔 주식시장에 충격을 줬다. 유증은 폭우에 물이 불어나듯 주식 수가 급증해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급락한다. 이들의 유증 계획을 미리 예상한 곳이 있었다. 바로 신용평가사다. 회사채를 평가해야 하는 신용평가기관은 주로 당좌비율, 부채비율 등 기업의 재무건전성에 집중한다. 올 들어 경기 침체 영향으로 재고자산의 현금화가 어려워졌다. SK이노베이션과 CGV의 당좌비율은 유증 직전인 지난 3월 말 기준 각각 72.6%, 52.2%였다.
두 기업 부채비율은 각각 193.4%, 912%에 달해 회사채 시장에서도 외면받는 상황이라 유증 없인 생존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유상증자로 재무 리스크 낮춘 에코프로
유증의 목적에 따라 주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설비투자를 위한 유증이었는데 CGV는 주로 빚을 갚기 위한 용도였다. 에코프로그룹 역시 SK이노베이션처럼 배터리 소재(양극재) 등 신사업 투자를 위한 것이었고 올 들어 주가가 급등하며 '핫한 주식' 반열에 올랐다.
주력 회사 에코프로비엠은 작년 4월 5000억원 규모 유증을 단행했다. 같은 해 3월 말 당좌비율이 5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5000억원 중 4700억원을 양극재 투자에 썼고, 이는 그 이상의 이익으로 돌아왔다. 작년 2분기 이후 3개 분기 당좌비율은 각각 97.7%, 85.1%, 91.6%로 모두 80% 이상이다. 투자자들은 대규모 투자 이후 에코프로비엠이 곧바로 재무 리스크를 낮추는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주가도 대폭 상승했다.
2차전지 핵심 소재 수산화리튬을 만드는 에코프로이노베이션도 최근 유증에 나섰다.
이처럼 계열사들의 자금 조달에도 이들 회사 재무를 연결한 지주사 에코프로의 당좌비율은 87.7%다.
올 2분기 에코프로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2분기 역성장에도 배터리 시장의 높은 성장성과 절묘한 당좌비율이 최근 주가 급등의 이유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CGV 역시 현재 50%대인 당좌비율을 80% 이상으로 높일 경우 주가 턴어라운드를 기대할 수 있다.
재무안정성에 이익 32% 성장 현대오토에버
에프앤가이드와 함께 지난 14일 기준 국내 시가총액 3조원 이상의 시총 상위 88곳을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에선 현대오토에버의 당좌비율이 가장 높았다. 자동차 업종의 경쟁 심화 속에서도 작년 말 191%에서 214.9%로 되레 상승했다.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75.8%에서 63.3%로 낮아져 재무안정성이 돋보이고 있다. 2분기 영업이익은 379억원으로 추정돼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2%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적인 이익 증가와 재무 리스크 감소의 이유로는 현대차그룹의 사업 철학과 지배구조 개편 등 중장기 계획과 관련이 깊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전 세계 판매 차량을 모두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바꿀 예정이다. SDV 전략의 핵심은 당연히 그룹 내 정보기술(IT) 자회사 현대오토에버다. 2021년 4월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오트론 등과의 합병을 통해 IT 역량을 집중했다. 주주환원에서도 나쁘지 않다. 향후 실적에 따라 25~35% 수준의 배당성향 계획도 내놨다. 순이익의 최대 35%를 주주 배당으로 지불하겠다는 뜻이다. 주가도 올 들어 66% 급등했다.
M&A 효과로 갈수록 성장할 삼성SDS
삼성그룹에서도 IT 계열사의 재무안정성이 높았다. 오너 그룹이 IT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하면서 수혜가 집중되고 있어서다. 삼성 내 당좌비율 1위는 삼성SDS(318.7%)다. 삼성전자는 210.4%다. 삼성SDS는 물류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고, 신성장동력이 클라우드 사업이다. 작년에는 두 사업 모두 좋았으나 올 들어서는 경기 침체 영향에 물류 실적이 다소 둔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2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2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2047억원으로, 1년 전보다 24.2%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7일 주가가 9% 급등한 것이 인수·합병(M&A)과 하반기 실적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삼성SDS는 지난 3월 공급망 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엠로'를 인수했다. 기존 공급망 계획 솔루션 '넥스프라임', 공급망 물류 실행 솔루션 '첼로'에 '엠로'를 더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삼성그룹 내 안정적인 매출에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주주환원도 강화 중이다. 사상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2021년 기준 주당 배당금을 2400원에서 2022년 3200원으로 33.3% 올렸다.
실적 저조에도 재무 탄탄 포스코
포스코그룹은 포스코홀딩스를 중심으로 포스코퓨처엠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DX 포스코엠텍 포스코스틸리온 등 6개 상장사가 포진돼 있다. 이들의 시총은 작년 말 대비 18일 현재 2배로 뛰어올라 합산 시총 86조원을 달성했다. 포스코홀딩스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0조1000억원, 1조3000억원으로 나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3%, 이익은 38%나 감소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저조한 단기 실적에도 포스코홀딩스 주가는 올 들어 80% 이상 급등했다.
포스코홀딩스의 미래 청사진이 주주들의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최근 포스코그룹은 2차전지(배터리) 사업 설명회를 열어 소재 원료 생산능력으로만 2030년 매출 62조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중 배터리 핵심 소재 양극재를 100만t 생산해 매출 36조원을 담당한다는 전략이다. 양극재는 최근 떠오르는 에코프로그룹의 전공 분야이기도 하다.
포스코홀딩스의 당좌비율과 부채비율은 각각 154.2%, 72.9%다. 향후 배터리 관련 대규모 투자를 감당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양극재 전문 포스코퓨처엠은 최근 1년 누적 수주액이 100조원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이 회사는 포스코홀딩스로부터 핵심 원료 리튬을 공급받는 구조다. 포스코그룹 내 수직계열화로 규모의 경제와 가격 경쟁력을 모두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당좌비율
현금 예금 매출채권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당좌자산을 단기차입금 등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유동부채로 나눈 비율이다. 재고자산을 빚 갚는 능력에 포함시키는 유동비율이나 자본 대비 빚 부담을 나타내는 부채비율보다 한층 엄격한 지표다. 신용평가사들은 당좌비율이 80%는 넘어야 우량하다고 판단한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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