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아와 이준호, 어금니 꽉 깨물고 연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킹더랜드')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3. 7. 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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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더랜드’ 윤아와 준호의 눈물겨운 로맨스 사투, 부끄러움은 시청자 몫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는 거창한 제목을 보면 대작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작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 유행한 로맨스물의 짝퉁 같은 느낌도 드는 드라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사랑을 그대 품안에>나 <호텔>, <호텔리어> 등 호텔, 백화점 등 화려한 배경의 로맨스물은 가난한 여주인공과 호텔, 백화점의 이사님이 주인공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이에 재벌가 세력들끼리의 암투도 끼어든다. 여기에 양념으로 여주인공의 친구인 백화점, 호텔 직원들의 소소한 개그도 들어가기 마련이다.

<킹더랜드>는 혹시 그 시절의 드라마를 재밌게 본 4050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올드하고 익숙하다. 실제로 <킹더랜드>를 보다보면 구원(이준호)과 천사랑(임윤아)의 로맨스 흐름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굉장히 익숙한 코드의 전개여서 어떤 장면에서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어떤 장면 뒤에 두 사람이 키스할지 빤히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킹더랜드>는 TV를 켜놓고 딴짓해도 충분히 내용 짐작이 가능하다. 그것 자체는 사실 그렇게까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KBS 주말드라마가 점점 맥을 추지 못하는 사이에 JTBC <닥터 차정숙>이나 <킹더랜드>처럼 중장년까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익숙하고 편한 로맨스물이 새로운 주말드라마의 패턴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킹더랜드>는 유독 천사랑 캐릭터만은 꽤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킹더랜드> 안에서 천사랑은 킹호텔 본부장이자 킹호텔 기업 핏줄인 구원과의 익숙한 로맨스 플롯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천사랑은 종종 이 플롯의 어설픔을 비웃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천사랑은 과거 재벌남 주인공이 보여준 멋진 행동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구원의 행동에 대해 그것이 사실 민폐남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익숙한 로맨스 플롯을 그려가지만, 여주인공이 그 패턴을 비웃으면서 새로운 그림이 만들어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또 로맨스 관계 못지않게 천사랑의 우정 서사 역시 상당부분을 차지하면서 여주인공의 인간적인 매력을 쌓아가는 부분이 있다.

아울러 임윤아 역시 전형적인 로맨스의 청순한 주인공보다 당차고 씩씩한 여주인공 롤이 원래 적역인 배우다. 영화 <엑시트>에서 보여준 주인공 의주의 매력을 <킹더랜드>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려낸다. 그 때문에 은연 중에 이 로맨스의 리더는 구원이 아닌 천사랑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준호 역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산 역으로 그윽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사극 속 로맨스 남주를 성공적으로 연기한 적 있다. 그리고 <킹더랜드>의 구원은 사극의 이산을 뭔가 현대의 호텔 업계의 재벌남으로 데려온 것 같은 인상이다.

당연히 <킹더랜드>에서 주인공 윤아, 준호는 본인의 장기를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 때문에 두 캐릭터는 생동감을 얻지만 사실 <킹더랜드>의 인상적인 점은 두 주인공들이 그려내는 로맨스 장면의 생동감이 전부다.

<킹더랜드>는 익숙한 서사 방식을 반복하면서 동시에 유치하거나 조잡한 전개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게 킹더랜드 호텔을 둘러싼 재발가의 별 존재감 없는 권력다툼 서사다. 뜬금없는 아랍 왕자의 등장은 유치할 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감성도 읽지 못하는 유머다. 달달한 로맨스 장면의 상황이나 대사들도 가끔은 선을 넘게 '오그라드는' 느낌이 있어, 주인공들도 뭔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연기하는 인상이 들 때도 있다.

결국 <킹더랜드>는 유치한 서사 속에 욱여넣은 남녀 주인공의 눈물겨운 로맨스 사투로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셈이다. <킹더랜드> 속 이야기가 천사랑과 구원의 사랑스러운 장면을 위한 배경에 그치는 게 아니라 조금만 더 흥미롭고 공들인 이야기였다면 어땠을까? 천사랑이 과거의 로맨스 주인공들을 비웃는 방식을 좀 더 발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었을까? 그랬다면 이 로맨스는 1990년대 드라마의 화려한 짝퉁 같은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킹더랜드>는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뭔가 보면서 부끄러움은 시청자의 몫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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