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유롭지 못했던 ‘최저임금 1만원’ 프레임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5% 인상된 9860원으로 결정된 뒤 최저임금위원회의 불투명한 정보 공개, 정부가 사실상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정치적 책임은 온전히 지지 않는 문제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3.3%)보다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두고선 노동계 전략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깜깜이’ 최저임금 심의 기초자료
최저임금위는 매년 3월 말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을 받은 뒤 한국통계학회·한국노동연구원 등 연구기관으로부터 심의에 필요한 통계를 제출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비혼 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 분석 보고서’, 유사노동자 임금·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 통계가 담긴 ‘임금실태 등 분석 보고서’다.
이들 보고서는 최저임금위 노·사·공익위원 27명과 전문위원회 위원 등 극소수에게만 공개된다.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수백만명의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은 심의 기간 중 보고서를 확인할 수 없다. 최저임금위가 “공표 전 자료”라는 이유로 대외 공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최저임금 액수가 결정된 이후에야 최저임금위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3개월가량 진행되는 최저임금 심의 기간 중 객관적 통계에 기초한 사회적 토론이 진행되려면 최저임금위가 보고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결정’과 ‘책임’의 불일치
최저임금위에는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이 참여한다. 노사 간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기 때문에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 시 칼자루를 쥐는 구조다. 정부가 추천하는 공익위원들이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정부든 국민의힘 정부든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정부 의지가 매해 최저임금 심의에 일정하게 관철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 구조가 최저임금 결정과 책임의 불일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정부가 공익위원 뒤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최저임금 결정에 관여하지만 이런 맥락이 수면 위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정부 책임이 희석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공익위원을 내세웠을 뿐 정부 의지가 사실상 작용하는 만큼 최저임금 액수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럴 바에야 공익위원 대신 정부위원이 교섭장에 나오게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김 이사장은 “정부위원이 교섭에 나오면 책임 소재는 분명해진다. 하지만 운신의 폭이 약간이라도 있는 공익위원과 달리 정부위원은 입을 닫을 가능성이 커 회의 자체가 잘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며 “현재로선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도 자유롭지 못했던 ‘1만원 프레임’
당초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적어도 5% 이상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됐고 지난해 비혼단신 노동자 실태생계비가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던 점,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커졌다는 점, 윤석열 정부 들어 4분기 연속 실질임금이 감소했다는 점 등이 그 근거였다.
지난 1일 ‘내년 최저임금은 1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 고위 인사 발언이 담긴 보도 뒤 노동계는 이를 “정부 가이드라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노동계조차 이 ‘1만원 프레임’에 갇혀버렸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들이 최종안으로 최초 요구안보다 2000원가량 낮춘 1만원(3.95% 인상)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공익위원 대다수가 9860원(사용자위원 안)에 투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계가 끝까지 ‘1만원 초과’를 고수했어도 내년 최저임금이 9860원보다 더 높아졌을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최종안(1만원)은 노동계 스스로 최저임금 1만원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신호로 읽혔다. 양대노총은 21일 공동성명에서 “정부와 공익위원의 잘 짜인 각본을 깨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혜와 대중적 여론 조성, 투쟁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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